[이코노믹리뷰=김진욱 편집국장] ‘이러니 개콘이 망하지…’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이던 KBS2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이후 SNS나 기사 댓글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개콘보다 더 재밌는 콘텐츠를 발견할 때의 반응이지만 때로는 ‘웃픈 상황’에 대한 반어적 화법으로 통한다.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둘러싼 한 편의 ‘블랙코미디’에 대해서도 이런 반응 일색이다. 임대인이자 임차인인 홍 부총리가 ‘전세난민’이 된 이야기다.

홍 부총리는 2005년 경기 의왕에 아파트 한 채를 매입했다. 그리고 2017년말 공무원 특별공급으로 세종시에도 아파트 분양권을 받았다. 1가구 2주택자가 된 것이다. 이후 2018년 12월 부총리로 취임했고 서울을 오갈 일이 많아지자 지난해 1월 서울 마포에 전셋집을 따로 구했다.

하지만 올 여름 청와대를 중심으로 다주택자 공직자들에게 주택을 정리하라는 지침이 내려왔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그는 지난 8월 의왕 아파트를 9억2000만원에 팔았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의왕 아파트에 전세로 있던 임차인이 “2년 더 살겠다”며 새로 적용된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고, 이로 인해 매매가 불발될 처지에 몰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울 마포 전셋집에선 주인이 “실거주 하겠다”며 전세계약이 끝나는 내년 1월까지 집을 비워달라고 통보했다. 전세 시세가 2억원이나 더 뛰었고 물량도 많지 않아 홍 부총리로선 ‘전세난민’ 처지가 됐다.

금전적 타격도 만만치 않다. 의왕 아파트에 임차인이 계속 거주하게 되면 매입자로서는 입주가 불가능해져, 홍 부총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걸 수 있다. 이 경우 홍 부총리는 계약금의 2배(2억원 추산)를 물어줘야 한다. 더군다나 세종시에 홍 부총리가 분양권을 갖고 있어 소송이 장기화되면 ‘일시적 1가구2주택’ 요건을 충족하는 기간이 만료된다. 이렇게 되면 징벌적 양도소득세까지 내야 한다.

경제정책의 수장이자 부동산 정책을 지휘한 홍 부총리가 전셋집에서 ‘쫓겨나고’ 본인 집도 ‘못 파는’ 처지가 됐으니 그야말로 블랙코미디의 주인공인 셈이다. 이 상황이 안쓰러웠는지, 전세난의 피해 당사자가 된 홍 부총리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전세를 제공하겠다”는 청원 글도 등장했다.

당초 주택 임대차보호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은 법안통과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많았다. 지난 7월 여당의 주도 속에 이 법안은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며 불과 3일 만에 초고속 처리됐다. 당시에도 전세 품귀 현상과 임대인과 임차인간 분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초’를 다투며 법안 통과에만 열을 올렸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그 후폭풍에 ‘전세난민 홍씨’를 비롯한 다수의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은 자그마치 23차례나 나왔다. 단순한 얘기지만 ‘훌륭한 법안’이었다면 이렇게 추가 대책이 많이 나왔을 리 없고, 다수의 국민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을 터다.

“2개월 정도면 임대차 3법의 효력이 나지 않겠냐 했는데 아직까지 전세시장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아픔’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나서야 홍 부총리는 정책의 ‘실수’를 스스로 인정했다.

서울 전셋값이 57주째 상승세다. 전셋집을 보기 위해 아파트 복도에 줄을 서야 하고 ‘제비뽑기’로 계약자가 뽑힌다. 세입자가 이사비용으로 수천만원을 요구하는가 하면, 집주인이 ‘집을 보여주는 비용’으로 건당 5만원을 받는 풍경도 보인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한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그렇게까지 걱정의 목소리를 낼 때 정부와 여당은 도대체 왜 귀를 막았을까. 법안의 실효성에 대해, 그리고 혹시나 모를 부작용에 대해 왜 디테일하지 못했을까. 더 이상은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