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덕 소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유시덕 소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이코노믹리뷰=권일구 기자] 지난 2005년부터 약 10년간 아이들의 그림으로 심리를 분석하는 SBS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전문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유시덕 심리미술창의연구소장을 만났다. 유시덕 소장은 ‘엄마, 아빠 내 그림이 말을 해요’를 출간해 당시 학부모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한 광고의 문구대로, 한국의 전통적인 색상을 찾아 천연물감을 만드는 사업가이자 화가로 인생 2막을 연 것이다. 한국천연염색연구회가 선정한 13명의 천연염색명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한 그가 <이코노믹리뷰>를 통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그림분석’


유시덕 소장은 중앙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2002년 어머니께서 운명을 달리하시기 전 간병을 하면서 학원을 운영했던 경험을 기록에 남겼다. 아이들과 자신의 이야기 등을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하면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시덕 소장은 “보육교사, 어린이집·유치원, 심지어 그룹에서 까지 그림을 분석하고 상담하는 요령 등을 배우기 위해 나를 찾았다”고 회고했다. 당시만 해도 해방 전후로 일본에서 배우셨던 분들이 심리분석 등 일본책을 번역해 사용했다. 대외적으로 오픈한 것이 아닌 자신만을 위한 계산이었다.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 서점을 돌아다니며 정리를 시작했고 그러면서 하나씩 배워나갔다. 소위 ‘맨 땅에 헤딩’이었다.

유 소장은 “우리와는 정서가 많이 다른 외국의 정신분석 자료를 사용하다 보니 안 맞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문제는 이런 책들이 그림분석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보니 해석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차이가 발생했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 번은 방송국에 왜 나를 찾는지 물어봤다. 나름 전문가라고 하시는 분들이 섭외가 안된다고 하더라.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아닌 남이 사용한 것을 베끼다 보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유 소장은 강조했다. “그림분석은 말 그대로 아이의 성향 등을 그림을 보고 분석해 주고 상담하는 것이지, 치료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점을.


정체성 문제… 인식의 전환 필요할 때


최근 유 소장은 천연물감을 만들고 있다. 그 동안에도 안전한 어린이 용품 개발에 나섰지만 중국산 물량공세로 버티지 못해 사업을 접었다. 제품에 대한 선호도는 굉장했다. 그러나 저가 상품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남이 따라 올 수 없는 무엇인가를 찾았고, 그것이 바로 ‘천연물감’이다.

천연물감 개발과정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다. 옛 문헌을 찾아봐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없었다. 그는 천연물감 개발 동기에 대해 “천연염색을 배운지 약 9년 됐는데, 화학물감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색감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어떻게 해서든 물감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천연물감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온전한 문서는 없었다. 다만, 조각조각 찢어져 있는 단서들을 모아 거꾸로 되새겨 보았다. 그는 “치자는 노란색을 띤다. 문헌에는 일주일에 1번씩 모두 3번을 끓여 염색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아! 옛 분들은 발효를 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천연물감의 개발은 시작됐다. 염료라는 것은 쉽게 얘기하면 ‘즙’이다. 우려내거나 끓여서 낸 것인데, 이것을 덩어리로 만드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색소 함량이 엄청 높아야 한다.

그러나 만드는 방법이 없으니 일본에서 주로 수입해 사용해 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유 소장은 “너무 일본 것을 사용하다 보니, 이게 한국화냐 일본화냐 하는 정체성 문제가 발생했다”며 “업체들은 천연물감에 대한 수요가 없을 것으로 판단해 수입해서 쓰게 됐다”며 일갈했다. 더한 것은 “일본에서 천연물감을 만드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재기까지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천연물감, 총 14개지의 색상이 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천연물감, 총 14개지의 색상이 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뚝심과 인내심으로 만들어 낸 천연물감


천연물감은 발효시키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다. 재료마다 가진 특성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꽃을 심고 이것을 발효해 봤다가 전부 버린 적도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열매마다 재료마다 발효과정이 다 달랐다. 나는 이걸 몰랐다. 꽃도 열매도 많이 버렸다. 고생도 엄청했고 금전적으로도 손해가 많았지만, 참고 또 참았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천연물감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 소장은 이런 천연물감을 일본에서 수입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으로 수출 하려고 한다. 일본도 분명히 천연물감을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역발상인 것이다. 유 소장에 따르면 동양화 전공자들이나 아시아권에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은 천연재료로 색감을 내거나 색칠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만약 우리나라 작가들이 천연물감으로 그린 그림 전시 또는 발표회를 갖는다면, 이건 얘기가 달라진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다 보니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천연물감의 장점은 색감의 품위가 있는 고급스럽고 차분한, 은은한 색이다. 대신 화학물감처럼 화려하진 않다. 유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자연적인 재료로 꽃, 이파리, 열매, 뿌리 등으로 색소를 추출해 만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너무 화학적인 것보다는 천연이라는 것, 예로부터 사용해왔던 전통의 색깔들을 물감처럼 마음대로 썼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천연물감으로 표현한 다양한 그림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천연물감으로 표현한 다양한 그림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과거 우리의 전통 문화인 청자·백자 등의 도자기 기술은 맥이 끊어 졌다. 유 소장이 전문가들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천시 받았던 직업이기에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일본이나 중국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오히려 대접을 잘 받았다고 한다. 천연물감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유 소장은 “맥이 끊어지고 아니고를 떠나 만드는 과정, 실패과정 등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며 “잘 못 만들 수도,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대가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 시대에 맞게 흐름에 맞게 변형시켜야 하는 것. 이런 일들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유시덕 소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유시덕 소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