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다가온다. 순국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나라의 소중함을 깨닫고자 하는 6월. 유독 1년 중 이달에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는 한 사람이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6·25전쟁의 실상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월드피스 밀레니엄파크 건립위원회(이하 월드피스)의 안재철 위원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5년 전 설립된 월드피스는 한국전에 참전한 UN군에 대한 추모와 참전 각국에 평화공원을 건립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삼는 NGO. 안 위원장은 6·25 관련 책 출간과 사진전 개최 등을 중심으로 월드피스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2003년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을 실었던 미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이야기를 다룬 《마리너스의 기적의 배》를 번역,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 6월에는 1200페이지에 걸쳐 UN군들의 생명구출작전 의미를 담은 《생명의 항해》를 출간했고 서울 청계천을 비롯해 수원, 의정부, 제주도 등에서 두 달에 한 번꼴로‘6·25전쟁 사진전’도 개최해 오고 있다.

특히 작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행사 당시에는 청와대 본관에도 그의‘6·25전쟁 사진전’이 열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국내외 정·관계 인사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청계천·제주도 등 ‘6·25 사진전’ 개최

안재철 위원장의 지인인 박경현(왼쪽) 월드종합라이센스 대표와 로버트 러니(가운데) 박사

이같은 활동 탓인지 안 위원장은 주변으로부터‘6·25 전도사’라는 평을 받는다.
“전쟁을 체험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젊은 세대 간에 6·25전쟁을 바라보는 시각과 국가관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에 있어 6·25전쟁은 마치 하나의 전쟁놀이 정도로만 여기진 채 점차 잊혀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안 위원장의 월드피스가 6·25전쟁사 바로 알리기의 ‘첨병’으로 삼는 방법은 사진전 개최다. 사진전을 통해 한반도에서 있었던 고통의 역사에 대한 진실을 알려 대한민국의 앞날을 책임질 청소년들을 곧바로 세우고자 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비주얼 시대입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사진으로 (6·25전쟁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면 보는 이들의 감동 또한 더하지 않겠습니까?”

사진전 개최를 위한 안 위원장의 사진 확보 노력은 가히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정열적이다.

60점에서 시작한 6·25전쟁 관련 사진이 120점, 현재의 150여점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도 미군 자료보관청에서 자비를 털어 사진을 구매하거나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을 미국 현지에서 수소문을 통해 직접 찾아가 사진을 얻은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시회에 쓸 사진을 모으는 데만도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그의 이런 열의에도 불구하고 사진전 개최 과정에서 불미스런 일을 겪기도 했다.

이념 다른 시위자들, 전시사진 불태우기도

작년 8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6.25 사진전’

작년 여름 청계천에서‘6·25전쟁 사진회’를 개최했을 당시 전시된 138점의 사진들이 광우병 관련 촛불시위자들에 의해 전부 불태워지게 된 것이다.

“6·25 전쟁 사진이니까 맥아더나 트루만, 이승만 등의 사진이 있었는데 시위대들이 ‘이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 통일이 안 됐다’며 138점의 사진을 빼앗아 불태웠습니다. 너무 슬펐지요. 우리가 단지 사진전을 통해 바라고 원했던 것은 ‘역사 바로 알리기’와 ‘한미동맹과 UN 54개 지원국과의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뿐이었는데 말이죠.”
‘열혈 평화주의자’인 안 위원장의 본직은 사실 사업가다. 미국 MBA 출신으로 원자재를 유통하면서 나름대로 명망 높은 사업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그가 6·25전쟁에 대한 ‘홍보 전도사’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생활 당시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인을 만난 것이 계기.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6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미네소타주립대의 경영학 석사(MBA)와 병원행정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2001년 10월, 성가대 대장으로 있는 아내와 함께 미사를 드리기 위해 한인성당을 들렀을 때였다.

그 자리에서 6·25전쟁 당시 빅토리아호 상급선원인 로버트 러니를 만났고 그를 통해 ‘흥남철수작전(중공군의 가세로 국군과 연합군의 후퇴를 명한 작전)’에 대해 알게 되면서 ‘6·25전쟁 전도사’로서의 운명적인 길을 걷게 됐다.

안 위원장에 따르면 1950년 12월, 함경남도의 흥남에서는 대규모 피란민들이 남한의 부산까지 내려가게 되는데 당시 12월15일부터 24일까지 10여일에 걸쳐 10만명의 UN과 국군, 피란민들이 후퇴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흥남철수작전에 참가해 물이나 먹을거리, 화장실도 없는 배에서 3일간의 항해 끝에 1만4000명의 북한 피란민을 구출했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의 역사 사랑은 지난 2000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을 때도 표현됐다.

월드종합라이센스는 그에게 ‘버팀목’

당시 뉴욕 시내에 가로 15m, 세로 4.5m에 해당하는 대형 빌보드(남북한 정상들이 만나 악수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를 3만6000달러(당시 환율로 계산할 때 약 3600만원)의 자비를 털어 걸어 놓기도 했다.

컴퓨터 공학박사인 아내와 1남1녀의 가족들은 미국 뉴저지주에 거주하고 있지만 가족들의 얼굴을 본 지도 벌써 4개월째라는 안 위원장. 그는 지난 7년의 세월 동안 한국에 와서도 1년에 서너 번만 가족을 볼 정도로 ‘6·25전쟁 알리기’외길만 걸어왔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최근 3년간은 서서히 그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사진전에 참가하고 또 그 수가 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활동 반경이 넓어진 것은 불황기에도 불구하고 그를 서포트해 준 숨은 공신이 따로 있다고 안 위원장은 귀띔한다.

“사실 최고의 숨은 공신은 월드종합라이센스(주)의 박경현 대표 이하 직원, 그리고 회원들입니다. 이분들의 노력 없이는 책을 편찬하거나 사진전을 개최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죠. 단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잖아요. 특히 박 대표님은 마치 내게 빚이라도 진 사람인 양 경제적인 지원을 끊임없이 해주고 계시는데, 이런 사실조차 외부에 알리기를 꺼릴 만큼 겸손해하셔서 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월드종합라이센스의 박 대표가 흥남철수의 영웅인 로버트 러니 박사를 한국에 초청해 올 때마다 지속적인 후원을 해줬다고 말하는 안 위원장. 그가 힘들어도 지금의 일을 계속할 수 있던 것은 그의 이 같은 ‘따뜻한’ 지인들과 7년 넘게 자신을 밀어준 가족의 힘이 크기 때문인 듯하다. ‘역사 전도사’ 안 위원장에게 곧 올 6월은 유독 훈훈해 보인다.

김진욱 기자 actio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