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강판으로 세계시장 달린다

올 초 철강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일본으로부터 날아들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자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도요타와 소니가 잇달아 포스코의 철강재를 도입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언뜻 들으면 일본 업체 두 군데서 포스코의 제품을 쓰기로 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금방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럼 이렇게 얘기를 해보자. 일본에는 세계 2~3위의 철강사 신일본제철과 JFE가 버티고 있으며 포스코는 설립 초기 때에 일본의 철강업계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워’왔다.

도요타와 소니는 일본이 해외에서 자국을 알릴 때 가장 선봉장에 서왔던 ‘자존심’ 같은 기업이다.

이런 도요타와 소니가 자국에도 이미 세계 톱클래스 철강사가 두 곳이나 있음에도 포스코의 제품을 쓰기로 한 것은 철강업계에서도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일 만한 ‘사건’이다.

40년 전 아무것도 없던 맨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포스코가 ‘원조 철강 대국’이었던 일본의 심장부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포스코의 지속적인 품질관리와 기술개발이 사상 초유의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었다.

포스코 제철소의 고로에서 쉿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철강업계에서는 이 과정을 ‘출선’이라고 한다.

소니와 도요타는 납품되는 철강재를 꼼꼼하다 못해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까다롭게 검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가격이 저렴함에도 불구하고 포스코 제품을 쓰지 않고 자국 내 철강사 제품만 고집했던 것도 믿을 수 있는 품질과 제품의 균일성 때문이다.

특히 도요타는 자동차에 사용할 강판들을 확대경까지 동원해 표면 검사를 할 정도로 제품의 완성도에 살인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포스코는 이런 장벽을 뚫기 위해 무려 27년간이나 문을 두드려왔다. 도요타는 기존에 신일본제철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어왔지만 이제부터는 포스코의 제품을 사용하게 된다.

특히 일본 내 공장뿐 아니라 북미에서도 포스코 제품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소니도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검사를 거쳐 포스코 제품이 품질과 서비스에서 손색이 없음을 확인했다.

물론 여기에는 환율 효과 때문에 포스코 제품가격이 10% 이상 저렴해진 것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제품에 대한 신뢰성이 가장 선행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포스코가 일본 시장 진입에 성공한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하늘에서 갑자기 성공이 떨어지지 않듯이 포스코는 이미 세계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에 차 강판을 공급해 왔으며 끝없는 기술개발로 차 설계 당시부터 참여해 최적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도 오랜 시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광양에서 완성된 포스코의 자동차용 고급강판. 완벽한 공정관리로 품질 향상을 극대화하고 있다.


글로벌 명차들, 포스코 앞에 줄서다
지난해 1월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는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굴지의 자동차 메이커과 부품업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어두컴컴한 컨벤션홀에서 숨을 죽인 채 신중한 눈빛으로 단상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중인 포스코(POSCO)의 자동차 강판 관련 자료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GM, 크라이슬러, 도요타 등 세계 굴지 자동차 메이커의 구매담당 혹은 기술 담당 임원들이었다.

이들이 한국에서 열린 포스코의 EVI(Early Vendor Involvement)포럼에 참석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자동차 강판 공급 확대를 요청하고, 기술 협력 확대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자동차 강판은 철강재 중에서 생산공정이 가장 까다롭고 복잡해 고급강으로 분류된다. 가벼워야 하고, 부식되지 않아야 하며, 모양을 만들 때는 부드럽고, 한번 만들면 변하지 않아야 하는 등 기술적으로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 난이도 때문에 급속하게 성장하는 자동차시장에도 불구하고 강판을 생산하는 철강사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한마디로 자동차용 강판시장은 전 세계 모든 철강사들이 진출하고 싶어하고 탐내는 시장이지만 결코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시장이기도 하다.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 생산능력은 이미 세계 최고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에 필적하는 세계적 수준이다. 특히 일부 기술에서는 미탈을 능가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포스코는 세계 톱클래스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이다.

자동차 강판공장의 품질검사 장면(왼쪽), 철저한 표면검사로 결점을 완전히 없앤다.(오른쪽)


오랜 준비기간, 기술이 꽃피다
포스코가 광양에 자동차 강판공장을 세운 것은 지난 1987년, 지금으로부터 딱 22년 전이다. 그러나 처음은 물론 미미했다.

초창기인 1990년대에는 겨울 고속도로 결빙 방지를 위해 뿌려진 염화칼슘을 견뎌낼 수 있는 고급강판 생산도 힘들었다.

그러나 자동차 회사들은 당연히 염화칼슘에 대한 내식성이 뛰어난 강판을 원했기 때문에 포스코는 반드시 이 숙제를 풀어내야 했다.

1990년대 초반 포스코는 드디어 전기의 반응을 이용한 아연 도금기술을 획득하면서 염화칼슘에 부식되지 않는 강판 개발에 성공한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방법을 이용한 차 강판은 품질은 훌륭했지만 생산원가가 너무 비싸다는 게 단점.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포스코는 드디어 용융된 아연을 냉연강판이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코팅이 되는 용융아연도금강판 생산에 성공하면서 싸고 생산성이 높으며 품질까지 우수한 차강판을 만들어 내게 된다.

특히 199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포스코는 용접성이 우수한 합금아연도금까지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명실상부 글로벌 시장을 향한 본격적인 도약의 날개를 펼쳤다.

열연공정라인(왼쪽), 포스코의 냉연제품(가운데), 열연코일이 나오고 있다.(오른쪽)


전 세계 100여개 완성차업체에 공급
포스코가 생산량과 기술력에서 세계 수준에 도달하면서 세계적인 명차 메이커들이 포스코의 제품을 인정하기 시작하고 있다.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폭스바겐, GM 등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유명 완성차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을 자사 모델에 쓰고 있으며 이렇게 생산된 차들은 전 세계의 대륙을 달리고 있다.

현재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은 전 세계 100여개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에 공급되고 있으며, 판매량은 2001년 170만t에서 2007년에는 3배 이상 늘어난 570만t에 달했다.

이는 세계 굴지의 회사들이 모두 포스코의 제품 완성도에 신뢰를 보냈기에 가능했다.
포스코는 이미 미국 3대 자동차사의 하나인 포드(Ford)와 다임러크라이슬러로부터 까다롭기로 유명한 Q1 품질 인증을 획득했다.

폭스바겐·다임러크라이슬러·혼다·닛산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사로부터도 잇달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폭스바겐그룹으로부터 세계 철강사 중 유일하게 우수 공급사 상을 수상하는 등 연달아 명차 회사들로부터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포스코가 효과적인 차 강판시장 공략을 위해 만든 EVI 전략은 간단히 말해, 특정 자동차 회사가 특정 모델을 개발할 때 초기 단계부터 포스코가 참여해 차 강판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강판의 품질을 검사중이다.(왼쪽), 냉연공장의 운전실(오른족)


신차 개발단계부터 참여 강판시장 공략
단순히 원하는 제품을 공급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신차 개발에까지 관여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열린 포스코의 EVI 포럼에 참석한 혼다자동차 태국생산법인 구매담당 임원인 쓰치야 고지 씨는 “혼다 태국공장에서 생산하는 어코드 신형에 포스코 강판을 쓰고 있다”며 “포스코 강판 품질이 개선되면서 본사에서 포스코 제품 사용을 늘리자는 게 본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 10위권에 드는 자동차 회사인 하얼빈 자동차는 포스코에게 신차 개발에 참여해 강판 개발에 대한 협력을 부탁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세계적인 부품회사 2곳과도 EVI 활동 강화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GM의 한 기술담당 임원은 “포스코가 신차 개발 단계부터 참여하게 되면 우리 엔지니어들과 협의를 통해 빠른 시간 내에 문제 해결과 개발을 끝마칠 수 있다”며 “품질 향상과 비용절감 등 많은 장점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승현 기자 zirokoo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