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전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며 전기요금의 인상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산업계는 답답하기만 하다. 전기료 인상에 대해 우려스러운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해 온 사실을 감안하면 산업계는 한전의 요구대로 두자릿수의 인상은 어렵더라도 한자릿수는 불가피하지 않냐는 관측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한전의 ‘밀고 당기기’가 결국은 인상합의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전은 지난 4월 평균 13.1%의 인상안을 제출했다 퇴짜를 맞았다. 그 후 10.7%의 즉시 인상 및 연료비 연동제를 통한 6.1% 미수금 확보안으로 수정 의결해 제출했지만 다시금 반려됐다. 정부가 인상 가능 수준을 3~5%로 판단하고 있어 평균 인상률 폭도 한자릿수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한전은 8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평균 9.4% 인상, 산업용 전기요금이 12.6% 상승했다. 30년 만에 가장 높은 인상폭이었다. 이번에 반려된 평균 10.7%의 전기료 인상방안도 산업용 기준으로는 평균 12.6%다. 연료비 연동제에 의한 6.1%를 미수금 충당을 더하면 산업용 전기료의 실질 인상률은 18%를 훌쩍 넘어선다.

산업계는 ‘벙어리 냉가슴’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의 분위기가 이른바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대선정국에서 ‘대기업 때리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이 공공재의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국민 동의가 필요함에도 정부의 인상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떠한 역풍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 몫하고 있다. 그래서 인상의 불가피성은 강조하면서 적용시기와 유예기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절감대책에 부심한 산업계는 “마른 수건도 다시 짜야겠지만 한전의 자구책도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계는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OECD 대비 저렴하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전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오해가 있으나, 실제로 우리 기업의 에너지 효율은 절대 낮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지난 10년간 제조업의 실질 GDP는 2000년 155.9조원에서 2010년 287.6조원으로 84.5% 성장했지만, 같은 기간 제조업의 전력 사용량은 125,972GW에서 211,447GW로 67.9% 밖에 증가하지 않을 정도로 효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석유, 석유화학, 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효율은 경쟁국과 비교해도 충분히 높은 수준이다.

원가회수율 고려한 효과반영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3차례나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조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요금을 인상한 효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또다시 요금 인상카드를 내놓은 것은 한전의 무리한 발상이라는 의견 때문이다.


현재도 산업용 전기요금이 절대 저렴하지 않으며 요금인상을 논의하기에 앞서 기존에 인상된 전기료의 원가회수율 효과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산업계는 이번에 전기요금이 추가로 인상되면 연간 수백억원에 달하는 원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기료가 매출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달하기에 국내 전력소비량 중 9.6%, 총전력 판매액 중 8.5%를 차지할 정도로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원가 부담이 건설, 자동차, 조선, 전자 등 주요 산업 분야로 파급됨에 따라 결국 인상분은 최종 소비자에게까지 미치게 되고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모든 경제주체가 불황 탈출을 위해 극한의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입장이다.

산업계가 무작정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전력낭비 해소 차원에서의 전반적인 요금 인상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항상 일정량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료 인상이 해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전이 6.1%를 연료비 연동제 변경을 통해 충당하겠다는 방안을 새롭게 꺼내 든 점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료비 연동제는 산업계가 지속해서 주장해 왔던 방안이다.

한전이 이번에 제시한 것은 본래의 제도 취지와는 달리 요금 인상을 위한 방편이지만, 산업계는 향후 전기요금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의 전력수급조절 요청 시 생산 차질은 물론 매출 피해도 감소하면서 전력사용을 줄였고 비싼 연료를 사용하는 LNG 발전소의 추가 건설비를 절약하는 등 국가 전력수급에 기여했지만 오히려 산업계가 전기를 많이 쓴다는 비난만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는 대안을 내놓고 일정을 맞춰 인상시기를 조절하자는 입장이다.

인상 최소화시켜 경쟁력 높여야
산업용 전기에 대한 기여도를 정부나 한전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3개월의 유예기간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함께 내놓고 있다. 산업용 전기는 부하패턴이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공장보수시간을 피크타임에 실시하는 등 정부의 전기수요 피크관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산업용이 주택용이나 일반용처럼 피크조절 기능을 갖지 못한다면 발전소를 지금보다 수십 개 더 준비해야 할 것이므로 요금산정 시 이러한 기여도가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산업용 전기는 가정용 전기와는 달리 사용하면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라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산업용 전기는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국가경제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쟁력 있는 요금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내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두 차례에 걸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총 12.6%)으로 수출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다”며 “수출계약은 통상 3개월 전에 체결되므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갑자기 인상 시 3개월분의 수출계약이 적자화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득이 전기요금을 인상할 경우 산업용뿐만 아니라 모든 용도의 전기요금을 인상하되, 산업용은 최근의 인상분을 고려해 추가 인상을 최소화하고 인상시점도 최소한 3개월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는 중국,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도 시행하지 않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등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비계획적인 전기요금 인상은 국가 경쟁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조윤성 기자 korea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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