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에게 무심코 한 농담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려 맹비난을 받고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퍼지젤러(오른쪽).


끝없이 반복되는 라운드와 시합 그리고 그 뒷 이야기들은 늘 많은 화제를 낳는다. 어떤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루머로 번질 때도 있다. 수많은 말, 말, 말. 그중에서 지워지지 않는 망언. 그리고 그런 말이 나오게 된 뒷 배경을 살펴보자. 먼저 날아가는 새도 잡는다는, 아니 매번 새(버디)를 잡는 타이거 우즈에게 농담을 한다는 게 결국 극단적인 망언으로 치부돼 인생을 망쳐버린 한 골퍼가 있다.

바로 퍼지젤러가 그 주인공이다. 퍼지젤러는 1997년 마스터즈대회에서 우승을 한 타이거 우즈에게 한마디를 던져 곤욕을 치렀다. 1998년 마스터즈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만찬에 초대받아 가게 된 퍼지젤러는 우즈를 향해 "그럼 오늘 저녁은 프라이드 치킨과 워터 멜론이겠군(fried chicken and watermelon)“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어찌보면 평범해보이는 이 한마디로 그는 최악의 망언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흑인들이 좋아하고 또 많이 즐겨먹는다는 프라이드 치킨은 왠지 그의 농담에 뼈가 있는 것 같아 오해를 살만 했는데 문제는 순식간에 언론을 통해 이 말이 퍼지면서 퍼지젤러는 졸지에 인종차별주의자로 내몰리게 됐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퍼지젤러가 쌓아온 각종 골프투어에서의 명성도 함께 추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그를 후원한 모든 스폰서들이 그와의 결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한 마디 실수로 게도 구럭도 모두 잃는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퍼지젤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즉시 타이거 우즈를 찾아가 사과하려 했으나 타이거 우즈는 그를 절대 만나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필자는 다시 한 번 그 당시 인터뷰를 찾아봤다. 과연 그가 실제로 인종차별적인 생각으로 말을 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타이거 우즈를 타깃으로 무시하는 마음을 담아 이야기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시간이 꽤 지난 오늘에서야 냉정하게 복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참으로 의외인 것은 그가 진정으로 별다른 뜻없이 농담으로 던진 말처럼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때와 장소를 못 가린 게 실책이자 잘못이기는 했을 터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농담을 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안다. 하지만 농담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적절하지 못한 자리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요즘 다행히 퍼지젤러의 얼굴이 가끔 TV에서 보인다. 하지만 그를 다시 보게 될 때까지는 10년이 넘은 긴세월이 속절없이 지나고 난 후였다.

두번째 사례로는 미국 여자프로에서 벌어진 일을 꼽을 수 있다. 한국선수를 염두에 두고 젠 스티븐슨을 비롯해 일부 선수와 미국협회가 나서 앞으로는 영어 시험을 봐야 한다, 영어만 써야한다는 망언을 해 골프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터졌다. 이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하나는 동양 선수를 무시하는 망언이라며 불공평하다,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첫번째였다. 일각에서 반대 서명운동까지 펼친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몇몇 선수는 환영의 입장을 표시하면서 오히려 우리들을 혼란에 빠뜨려버리기도 했다. 스티븐슨 선수는 왜 그런 망언을 했을까.

젠 스티븐슨 선수의 설명은 이렇다. 프로암(프로와 아마추어가 플레이를 함께 하는 것)대회에 출전한 한국인 프로선수가 아마추어 골퍼 4명과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오직 두 마디만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하이(Hi) 그리고 바이(Bye)였다는 얘기다. 4시간이 훌쩍 넘는 라운딩을 하면서 대화 다운 대화가 아예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던 셈이다.

프로암 대회에 나온 미국인 아마추어들이 한국인 프로선수와 아무런 대화 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 화가 나서 불만을 토로하다보니 외국인 프로들을 대상으로영어시험을 치르도록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모양이다. 물론 일부 아시아계 선수가 영어를 못해서 그같은 얘기가 나왔을수도 있다. 하지만 선수와 캐디간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하이, 바이 보다 대부분 훨씬 나은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2007 캘리포니아 팜대저트에서 열린 삼성월드 챔피언십에서 한 선수의 부모가 연습장에서 쫓겨나는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연습장은 오직 선수와 캐디 그리고 코치만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습장 땅바닥에 앉아 마치 연습 볼이 나오는 기계처럼 볼을 놔주다 쫓겨난 일도 있다. 그 분은 그 전에도 선수만 입장할수 있는 라커에 무단으로 들어와 식사를 하다가 쫓겨난 적이 있다. 단순히 영어를 못해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게다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쌓이면 고의적이거나 이기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케 된다. 사실 대다수 선수나 부모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일부 미꾸라지 처럼 물을 흐리는 몇몇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른다는 얘기다.

필자가 미 LPGA시합에 참가하고 있을 당시, 프로암 파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디펜딩 챔피언(전년도 및 전 대회의 우승자가 다음 경기에서 타이틀을 방어하는 것)이었던 김미현 선수가 자리를 함께 했고, 김 선수가 많은 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유창한 영어는 아니었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분명히 보였고, 실수를 해도 열심히 이야기를 하려는 모습이 참 귀엽다는 느낌이 들어 모든 갤러리가 일어나 박수를 친 기억이 난다. 맞다.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달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안다. 진심인지 아닌지를, 성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노력하는지 아닌지를 말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타이거 우즈의 캐디 스티브 윌리엄에 관한 것이다. 타이거 우즈에게 일방적으로 해고당한 뒤 타이거 우즈를 ‘'흑인 멍청이(Black Asshole)’라고 했다가 비난과 질타가 비 오듯이 쏟아지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대적으로 사과를 한 후 겨우 마무리했던 일도 있었다. 분명 망언이다. 하루 아침에 이해나 설명의 말 한마디 없이 단칼에 잘린 윌리엄이 상처와 배신감이 컸을 것이라는 입장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그런 망언은 피하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했을 것이다.

최근의 망언 중에는 로리 맥킬로이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에 기고한 글 가운데 "현재 우즈의 성적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가 타이거 우즈라고 볼 때는 나쁘다"고 언급한 것이 망언으로 지목된 사례가 있다. 이 발언에 대해 질타가 이어지자 그의 절친한 친구인 리 웨스트우드가 아직 어려서 그런다며 자신이 타일러보겠다는 인터뷰로 마무리를 짓기도 했다. 이 역시 로리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거르지 않고 내뱉은 실수 아닌 실수다.

사실 타이거 우즈가 추락하고 있다느니 이젠 한 물 간 것 같다느니 스캔들 이후 컴백(come back)이 힘들 것 같다느니 별별 기사가 다 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선수가 개인적으로 볼 때 과거보다 성적이 안 나온다고 말한 뜻을 망언이라고 할 정도인가.
얼마 전 골프 해설자 타운센드가 맥킬로이의 코스 공략이 미흡하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 그는 한마디로 응수한 적도 있다. "닥쳐"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하는 말은 예민하면서 남에게는 생각없이 이야기한 것에 대한 책임이 질타를 받을 수 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같은 말이지만 말이라는 것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솔직한 것도 좋지만 어떤 때는 차라리 말 수를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여민선 프로 minnywear@gmail.com
LPGA멤버, KLPGA정회원, 라이프스포츠클럽 골프 제너럴 매니저,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