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는 100만개의 털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100만개의 털 중 10만개는 머리털이다. 그 밖에 얼굴 부위에는 수염, 눈썹, 코털, 속눈썹 등이 있다. 몸에는 겨드랑이를 비롯한 팔, 다리, 발, 손 등에 털이 있다. 안 난 부위를 꼽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신체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털. 필요한 곳에 적당히 나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없었으면 좋으련만.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은 많으면 좋고, 그 외의 털은 대부분 쓸모(毛)없는, 즉 ‘불청객’으로 치부된다. 머리카락은 빠짐없이, 몸의 털은 남김없이 관리하고 싶은 사람들. 그들의 욕구에 따라 피고 지는 ‘탈모’와 ‘제모’ 시장을 발로 뛰며 들여다봤다.

한 올의 머리털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들고 훅 분다. 그러자 그 한 올이 새가 되기도 하고 범이 되기도 한다. ‘머털도사’ 이야기다. 그에게 머리카락 한 올의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삼손’은 또 어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돌기둥을 뽑아드는 삼손의 힘은 다름아닌 머리카락에서 나온다. 머리카락이 특별하다는 것은 비단 머털도사와 삼손만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항상 곁에 있어줄 것만 같던 머리카락이 어느 순간 영영 이별을 고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허탈감과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허무함, 아니 허모(虛毛)함을 겪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11년 3월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피부 부속기의 장애’로 분류되는 ‘탈모질환’의 진료환자는 2009년 기준 18만 1000명으로 집계됐다. 진료환자는 2005년부터 꾸준히 증가했다. 2005년 14만 5000명이었던 환자는 2009년 18만 1000명으로 늘었다. 최근 5년간 24.8% 증가한 셈이다. 진료비도 자연히 증가세를 띠고 있다. 2005년 102억 원에 그친 탈모 진료비는 2009년 153억 원으로, 50%의 증가치를 기록했다.

탈모가 ‘남성위주’의 질환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성별 진료환자(실인원)는 2009년 기준으로 남성 9만 3000명, 여성 8만 8000명으로 별반 차이가 없다. 연령대별 성별 분포를 살펴보면 20~30대에서는 남성 진료환자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반면, 40대 이상은 여성 진료환자가 더 많았다. 진료 연령대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전체 진료환자 중 20~30대 진료환자의 비율이 8만 8000명으로 전체의 48.4%를 차지했을 정도다. 심지어 20세 미만 진료환자도 2만 5000명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젊은이들한테도 털이 공포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18만 1000명. 얼핏 ‘그러려니’ 할 만한 수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병원에 가서 ‘실제로’ 진찰을 받은 인원일 뿐이다. 즉,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혹은 탈모가 의심되는 인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 업계관계자들의 공통된 추산에 따르면 2012년 잠재탈모 인구는 1000만 명에 이른다. 국민 5명 중 1명이 ‘탈모’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송재진 해들인 한의원장은 “탈모인구 1000만명은 어디까지나 ‘추산’일 뿐이며 실제로는 1000만 명을 훨씬 웃돌 수도 있다”면서 “25세 이후부터는 피부 노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20대 또한 탈모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탈모’의 기준은 뭘까. 의학에서는 하루 빠지는 모발이 100개 이상일 경우 탈모로 친다. 100개 이상이 빠지지 않는다고 결코 방심할 일은 아니다. 탈모 자가진단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모발이 집중적으로 빠지는 부위의 모발을 당겼을 때 5개 이상 모발이 빠지고, 머리카락이 전체적으로 가늘고 약한 편이라면 ‘탈모 예방’에 들어가기를 권장한다. 또 최근 들어 비듬이 많아졌다거나 두피가 많이 간지럽다고 해도 한번쯤 의심해 볼법하다. 그 밖에 염색이나 파마를 1년에 3회 이상 지속적으로 하거나 술이나 담배를 즐기고 스트레스를 자주 받는 사람도 향후 탈모가 의심되는 집단에 속한다.

탈모인 1000만 명, 올해 탈모시장 3조원 시대 활짝
‘5명 중 1명이 탈모는 너무 많은데?’라며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친인척 또는 직장동료, 그것도 아니면 길거리를 가다 머리카락 사이로 허연 ‘속알머리’를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 한 둘은 봤을 터이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사람이 눈에 띌수록 덩달아 자라는 시장이 있다. 바로 ‘탈모시장’이다.

국내 탈모시장은 2004년 4000억 규모에서 꾸준히 성장했다. 2008년 최초로 조단위에 접어든 이래 올해는 시장규모가 3조원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탈모와 관련된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기 꺼림칙해 하기 때문에 시장 자체도 수년 간 답보상태에 머물러온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다가 2000년도 들어 ‘두피관리’라는 차원에서 탈모에 접근한 제품라인이 하나둘씩 증가하면서 탈모 제품군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출현한 한방 샴푸는 실제로 그간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던 수요자가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케 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모레퍼시픽의 한방샴푸 ‘려(呂)’. 2009년 6월 첫 선을 보인 이 샴푸는 같은 해 3분기 한방 샴푸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대 탈모사이트 탈모닷컴의 홍보담당자는 해당 시장의 요구가 상당하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말을 보탰다. 그는 “정확한 비율을 밝히기는 힘들지만 2006년 상반기 사이트 오픈 이래 지속적인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현재 사이트에서 다루고 있는 샴푸 및 토닉 브랜드만 약 100가지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탈모인들이 고민을 공유하고 제품 후기를 올리는 한 포털사이트의 ‘탈모 카페’도 10만명의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는 등 시장의 규모를 방증하고 있다.

작년도 첫회로 개최된 서울국제가발탈모방지 전시회.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람회장에서 두피관리를 받고 있는 참관객, 가발쇼가 진행되는 모습과 개막식.


탈모는 자가면역성질환이다. ‘완치’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제품들이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예방하기에는 이미 늦은 ‘만성’ 탈모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모발이식 전문병원이나 가발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된다. 국내 가발시장은 2004년 500억원 시장에서 2010년 6000억원 규모로 신장했다. 이 가운데 패션가발을 제외한 맞춤 가발은 4000억원 시장으로 추산되는 등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모발이식술을 시행하는 병원 또한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강남의 한 모발전문병원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탈모환자의 급증으로 현재 수 백 군데의 병원에서 모발이식을 시술하고 있다”면서 “이 중에서는 수익성만을 좇아 비전문적인 시술을 자행하는 곳도 많으니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활발해지는 산업간 연계 비약적 성장 예고
탈모인 1000만명 시대를 맞이해 이를 주제로 한 박람회도 생겨나 주목된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서울국제 가발 탈모방지전시회(Kohair)’가 그런 사례다. Kohair를 주관하고 있는 (주)젠코리아 이인근 전시기획자는 “국내 탈모인구증가와 그에 따른 두피·모발시장 내수가 증가한다는 데 착안했다”면서 박람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이 기획자는 “매년 탈모 인원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감추고 싶어 하는 인식 때문에 그 동안 침체 국면을 겪었다”면서 “이러한 시장 자체를 수면위로 올렸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고 언급했다. 박람회의 슬로건도 ‘1000만 탈모인들의 희망’으로 정했다. 이 기획자에 따르면 현재 탈모 시장은 과도기에 처해 있다. 현재까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극복해야 할 부분도 많다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그는 “샴푸 같은 경우에는 화장품 대기업에서 헤어라인 중 하나로 출시하고 있고, 꾸준한 반응도 이끌고 있지만 파이 자체를 지속적으로 키우지는 않고 있다”면서 “중소기업의 제품 같은 경우에는 홍보부족으로 인해 판매 촉진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뿐 만이 아니다. 정확한 탈모 원인 분석과 포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는 “탈모방지 샴푸 및 탈모예방약의 시장 규모가 매년 증가하고 많은 두피관리실이 생겨나고 있지만 사실상 어떤 제품이나 방법이 탈모치료나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입증된 것은 없다”면서 “두피관리사나 가모관리사 등 직업군에 대한 인식 및 홍보 또한 요구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른 타개책으로 그는 ‘해당 산업의 업체 간 제휴’를 제안했다.

이 기획자는 “예를 들어 모발이식센터와 두피관리실, 또는 두피모발산업과 피부미용산업 등 상호 간 연계를 통한다면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2회 Kohair는 오는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간 코엑스에서 열린다. 전시품목은 가발관, 탈모치료관, 기기관, 두피케어관, 정보관까지 다섯 가지로 나눴다. 이 기획자는 “다양한 전시 품목을 개설한 만큼 현장에서 산업 간 연계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 김영배 사단법인 국제두피모발협회 이사장
“탈모, 이젠 ‘관리’보다 ‘예방’에 초점 맞춰야”

2012년 잠재 탈모인구 1000만 명, 탈모시장 규모는 3조원으로 추산된다. 2004년 이래 급격히 신장한 수치인데?
탈모에 관한 고민을 안고 있는 인구가 1000만 명이라고 보면 된다. 이 중 관리센터, 병원 등에서 관리를 받고 있는 인구는 15%로 추산된다. 제품 구매를 통해 가정에서 셀프케어를 하고 있는 인구 약 30%를 합하면 1000만 명중 40~45%의 인구가 탈모시장의 실질적 수요자인 셈이다. 2004년 탈모시장은 4000억원 규모에 불과했다. 해가 거듭할수록 증가 추이를 보여 현재는 3조원으로 추산된다. 시장 확대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우선은 ‘고령화’와 ‘외모에 대한 관심 급증’을 들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외모를 유지하려는 노년층이 증가한 점, 과도한 다이어트 및 스트레스로 인한 젊은 여성들의 탈모가 급증한 점 등이 시장 확대에 기여했다고 판단된다.

큰 폭으로 신장했지만 시장 성장의 걸림돌은 여전히 존재하는 듯한데?
아무래도 탈모에 대한 인식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겉으로 드러내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1000만 탈모인 시대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전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하다. 탈모는 한 번 발병하면 치료가 힘든 질환이다. 때문에 ‘관리’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에 따라 ‘탈모예방운동’을 제안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두피의 각질은 탈모 발생의 요인이 된다. 생체리듬은 28일 주기로 바뀌는 데 두피의 각질을 28일 주기로 제거해 주기만 해도 큰 예방효과를 누릴 수 있다. 사후관리보다 예방차원에서 접근했을 때,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인 관심이 모일 때 비로소 안정적인 시장 성장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탈모시장이 향후 어디까지 발전할 것으로 보이나?
문헌상 자료에 따르면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탈모관리를 가장 먼저 시작한 민족이다. 1100년 전 고려사에 보면 단오날 창포물 머리감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창포에는 두피를 건강하게 해 주는 성분이 있다. 단오는 양기, 즉 자외선이 가장 강한 날이다. 자외선은 탈모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머리카락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근래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에 발표된 모발 관련 논문만 600편이 넘는 등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협회 또한 2002년 발족 이래, G7 국가와 협력하여 탈모원인을 비롯한 관리기법 등 연구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또, 두피모발 전문 인력 배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시장이 활성화 되려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많아야 한다. 탈모 시장의 수요층은 충분히 형성된 상태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산학연의 협력이 활발히 이뤄진다면 2017년 탈모시장은 현재보다 30%성장한 3억9000억원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머리카락 한 올의 경제적 가치는 어느 정도로 보는가?
우선 연령에 따라 그 가치는 다르다. 통상 머리카락을 이식할 때는 시술 병원에 따라 비용이 다양하지만 저렴한 경우 한 올 당 2000원이다. 여기서 머리카락의 실질적 가치가 단순히 2000원이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건강한 머리카락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발이 건강한 연령대의 머리카락 한 올은 2000원에서 60%를 더한 5000원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박지현 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