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수박은 여름철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겨먹는 대표적인 과일이다. 땡볕도 아랑곳 않고 친구들과 뛰놀다가 덥고 갈증이 날 때 시원한 그늘에서 한 입 베어 물던 수박은 잊지 못할 추억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는 식구들이 많아 얼음과 설탕을 넣어 화채로 즐길 수밖에 없었지만, 한 가족이 옹기종기 둘러 앉아 나눠먹던 정겨운 추억의 과일이기도 하다.

고창 수박은 여름철 수박 출하기에 시장의 모든 수박이 ‘고창수박’으로 탈바꿈 할 정도로 국내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자랑한다. 천혜의 자연 환경과 우수한 토양을 갖춘 덕분이다. 하지만 똑같은 종자를 같은 지역에 심어도 농작물의 품질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 다른 것이 농산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에 따라 맛과 품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북 고창군 무장면 고창수박연구회 신건승 회장(69)은 고창뿐 아니라 전국 수박농가에서는 엄지손가락을 꼽아주는 ‘명품 수박 장인’이다. 고창지역의 질 좋은 황토, 적절한 기후, 국내 유일의 수박시험장에서 개발된 최고의 재배기술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는 전북도농업기술원도 인정하고 있다. ‘명품 수박 장인’은 전북도농기원이 지난 2008년부터 운영해 온 명품수박 스터디그룹 전문가 교육과정을 이수한 농업인 가운데 수박 단일작목으로 1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 사람 중에 선발하며, 신 회장은 지난해 명품 장인으로 선정됐다.

“수박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농산물은 땅이 좋아야 해요. 같은 종자라도 땅의 기운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품질이 되거든요. 수박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물 빠짐도 좋아야 하고, 땅이 고슬고슬해야 열매가 썩지 않고 병충해도 기승을 부리지 못하죠.”

신건승 고창수박연구회장은 수박농사의 비결을 땅의 관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신 회장의 고향은 충남 부여다. 농사꾼인 그가 황토의 매력에 빠져 전북 고창으로 옮겨온 지도 벌써 30년 성상에 이른다. 부여의 땅과 달리 붉은 황토가 많은 고창에 와서 수박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신 회장은 하우스 60여동에서 수박을 재배한다. 하우스는 크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저런 공간을 제외하고 수박 재배하는 면적만 약 1만2000평 정도다. 이는 하우스 내부 면적만 계산 한 것이다. 신 회장은 이곳에서 한해 3만개 정도의 수박을 재배하며, 이중 95% 정도가 상품으로 팔려 나간다. 신 회장이 고창군에서 ‘농민 수박박사’로 불리는 것은 이론적 기반보다는 30여년 수박전업농으로 체득한 산 경험 때문이다.

신 회장은 “식물의 생리를 제대로 알고 그에 맞춰 토양, 영양, 대기환경, 병충해 관리를 종합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며 “너무 덥거나 추우면 동물들은 거기에 맞게 몸을 보호하거나 움직여 피하지만 식물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농부가 일일이 관리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 자식 돌보듯 손 한 번 더 가면 더 좋은 품질의 수박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신 회장은 토양관리에 아주 철저하다. 그가 그동안 연작 피해를 입지 않은 비결은 바로 도가 틀 정도의 토양관리 실력 덕분이다.

“토양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볏짚이지요. 하우스 1동(661㎡·200평)을 기준으로 볏짚 1t에 질소 4㎏, 당밀 20ℓ를 섞어 물을 조금 뿌린 다음 30~40℃를 유지해 발효시켜요. 지푸라기가 힘이 없고 끊어지면서 윗부분에 하얀 곰팡이가 피면 발효가 잘 됐다는 신호지요. 이론상으로는 하우스 1동에 볏짚 500㎏정도가 적당하다지만 1t을 넣었을 때 토양의 상태가 좋아요. 상황에 따라서는 1.5t까지 넣기도 하지요.”

이렇게 관리되는 토양에 그가 한 평생 몸으로 체득한 재배기술이 더해지면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명품 수박을 만들어진다. 고창 수박이 다른 지역 수박보다 씨도 적은 것도 이렇게 토양의 질이 좋기 때문이다. 씨가 많다는 것은 토양이 그만큼 척박하다는 뜻인데, 척박한 토양에서 자란 수박은 씨를 많이 만들어 종족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관리된 토양에서는 땅이 기름져 씨가 적은 편이다.


신 회장이 생산하는 수박의 평균 당도는 12 블릭스(Brix) 정도다. 지난해 한창때는 최고 당도가 13.5 블릭스까지 올라갔다. 당도가 10∼13브릭스로 너무 달지도 않으면서도 청량감이 뛰어나 최고의 맛을 구현한다는 것이 바로 고창수박이 가진 경쟁력의 핵심 포인트다. 당도가 너무 높으면 청량감이 반감되고 당도가 10 블릭스 아래로 떨어지면 맛이 심심해진다. 과즙을 손으로 직접 만졌을 때 끈적거림이 없는 상태의 수박이 명품 수박이라는 것이다. 이런 당도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신 회장이 개발한 특별한 농사법에서 찾을 수 있다 일명 ‘스트레스 농사법’이다.

“수박이 맛있으려면 약간의 스트레스를 주는 게 좋아요. 식물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이론과는 맞지 않지만 제 경험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싶을 때 식물도 활발한 작용을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수박이 활발한 작용을 할 수 있게 살짝 스트레스를 주는 정도로 부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보통 수박 착과 후 20일이 지나면 당이 축적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수확 때까지 수박에 온도 등을 조절해 부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밤에 하우스 온도를 식물이 생육할 수 있는 최저 온도보다 조금 낮은 10~12℃에 맞춰요. 이론상으로는 13~14℃를 유지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적정온도를 맞춰 주면 낮에 받아들인 양분을 밤 동안 밖으로 내뿜기 때문에 활동을 정지시켜 양분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생육 한계 온도보다 조금 더 낮춰 주는 것이지요. 또 해가 지기 직전인 초저녁 3~4시간 동안은 17~18℃를 유지해 줍니다.”

신 회장은 또한 당도를 높이기 위해 습도 관리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다. “습도도 적정 기준보다 조금 낮을 때에 식물이 활발한 작용을 하지요. 하우스 내부가 지나치게 건조하면 잎 면적이 좁아지고, 지나치게 습하면 잎 면적이 넓어지는데 수분이 약간 부족한 상태를 유지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또 착과 후 20일 전후 토양에 양분이 떨어질 즈음에 미량요소를 1회 정도 뿌려 주고 있지요.”

신 회장의 하우스는 낮에도 심하게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철저한 바람 관리 때문이다. 원래 고창지역은 바람이 잘 부는 동네이기도 하다. 때문에 비가 자주 와도 바람이 불어 통풍이 잘 되기 때문에 병충해도 적다.

“원래 바람을 이용해서 통풍을 시키는 게 중요해요. 이는 습도관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때문에 우리 하우스에는 상단부에 팬을 달아서 혹시 바람이 없을 때는 인위적으로 바람을 만들어요. 그래야 잎에서 수분이 빨리 날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수박이 한창 익어가는 여름철 고창의 낮 기온은 27∼30도까지 오르고, 밤에는 16도 전후로 내려가는 등 기온차가 10도 이상 난다. 큰 기온 차는 수박의 속살을 단단하게 만들고 당도를 높여 준다. 이처럼 흙과 바람, 햇볕 삼박자를 고루 갖추어져 있고 그 환경을 제대로 활용할지 아는 재배기술이 있기에 오늘날 고창수박의 명성이 완성된 것이다. 신 회장의 이런 노하우는 고창의 천혜적인 자연 요건을 감안해 서른 해 넘게 농사를 지으면서 몸으로 익힌 것이다.

“혼자 할 때는 잘 몰랐어요. 그냥 하나라도 더 잘해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많은 시도를 했지요. 그랬더니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날씨와 기후를 유심히 살피다 보니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조절이 되더라고요. 나중에 농기원 등에 가서 보니 학문적으로도 들어맞는 거예요.”

신 회장의 말처럼 그의 노하우는 책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땀 흘리며 얻어 낸 재배기술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기도 하다. 신 회장은 한 해 3억5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린다. 수박 전업농으로서는 적지 않은 소득이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농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리 넉넉한 살림이 아니지요. 마흔다섯 살의 아들과 같이 하기 때문에 두 가정이 먹고 살아야 해요. 말이 그렇지 1만2000평의 농사를 지으려면 일용직도 불러야 하고…. 예전과 달리 농사짓는데 들어가는 제 비용들이 만만치 않아요. 이것저것 계산하면 연봉 5000만 원짜리 두 가장의 생활 정도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신 회장의 걱정은 이런 수익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다. 젊은 사람들이 점점 비어가는 농촌의 현실에 대한 근심이 그의 고민거리였다.
“같이 농사짓는 친구들끼리 그래요. 우리는 이제 사회에 부담만 주지 않아도 된다고요. 결국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농업을 하게 할 것인가가 문제지요. 이런 것은 정부가 보조금을 주고 지원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현금으로 보조하고 지원하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배불렀다고 욕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보조금이나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들을 보면 정작 농민에게는 별 도움이 되는 게 없어요. 사업주체로 선정 되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좋은 일이지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별로 없어요. 아직 방만한 것도 많고요. 정작 도움이 돼야 할 것보다 낭비가 되는 것도 현장에 있으면 눈에 자주 들어오지요.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해도 사업비의 20% 이상은 절감할 수 있을 텐데 고쳐지지 않는 게 너무 많아요.”

젊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명확한 선을 그었다. “젊은 사람들이 농업을 이어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농촌에서 농사를 지을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놓게 도와줘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도 도시에 나가 생활하면서 잘 안 되면 ‘고향 가서 농사나 짓지’ 하는 태도는 잘못 된 것입니다. 도시에서 열심히 살지 않던 사람이 고향에 돌아온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들보다 이곳에서 공부하고 꿈을 키우는 젊은 친구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서라도 우리 농업을 지키게 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아요.”

여름 대표과일 수박 이런 효능이…

더위를 식히는데 그만인 여름 과일 수박은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들여와 개성에 옮겨 심은 것이 처음이다. 중국에서는 수박씨를 간식용으로 먹고 아프리카에서는 수박씨에서 짠 기름을 식용유로 쓰기도 한다.

수박은 오래 두면 맛이 변하기 때문에 구입한 뒤 가능한 한 빨리 먹는 게 좋다. 남은 수박은 랩으로 밀봉한 뒤 작은 접시에 받쳐 냉장 보관해야 한다. 수박의 색을 붉게 하는 리코펜 성분은 몸속의 유해산소를 제거해 항암 효과가 있고, 비타민 C가 풍부해 피부 미용에도 좋다. 수박껍질을 삶은 물로 입안을 헹구면 입속 염증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주고, 수박씨의 쿠쿠르비틴이라는 성분은 구충 작용도 한다.

한상오 기자 hanso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