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카트’를 타는 장애인 골퍼 케이시 마틴 선수.


골프 룰(rule)은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누군가가 나에게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을 할까? “당연하지”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큰 대회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내가 받지 못한 특혜를 받는다면 분명히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테니까. 게다가 프로들이 한 곳에 모인 상금까지 걸려있는 시합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오래 전 미국 PGA에 입성하기 위해 치루는 시험인 남자 퀄리파잉(qualifying) 시합에서 다리 통증을 호소하며 힘들어하는 한 선수가 있었다. 그가 원한 것은 골프카트(골퍼와 골프백을 나르는 전동차)였다. 7살부터 앓았다는 희귀병인 혈액장애 때문인데 피가 통하지 않으며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병이다. 피가 안 통하는 병인데 운동을 한다? 특히 걷는 시간이 매우 긴 골프를 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 텐데, 그는 실력으로 또 피나는 노력으로 이겨낸 인간 승리가 무엇인지 보여준 골퍼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단점을 뒤로 하고 그는 미국 명문대학 스탠포드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타이거우즈와 함께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골프 챔피언십 타이틀을 따내기도 하는 등 남다른 실력을 보여줬다. 1998년 US오픈 예선을 통과하면서 또 다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주인공은 바로 케이시 마틴(오른쪽 사진)이다. 실제 US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23위에 랭크돼 강한 정신력과 훈련으로 장애를 극복한 선수로 골퍼뿐 아니라 청소년 그리고 장애인들에게 우상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같은 해 나이키투어(당시 2부 투어)에서도 우승을 따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던 그는 1998년 법원에 소송을 내면서 또 다른 화제 속 주인공이 됐다. PGA투어에서 골프카트를 타고 다니면서 시합을 하게 해달라는 소송이었는데 다른 선수들의 입장과 생각은 달랐다. PGA투어의 거장인 아놀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까지도 그에게 카트를 주는 것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 이유는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는 룰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걷기를 기본으로 하는 골프의 특성을 잃거나 깨기 싫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선수들의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2001년 5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폴 스티븐스 대법관은 PGA에게 그에게 카트를 내줘야 한다고 손을 들어줌으로써 케이시는 3년 만에 승소했다. 그리고 케이시 선수는 카트를 몰고 다니면서 시합에 참가하게 됐다. 시합을 하는 내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결국 그는 9개 대회를 끝으로 무대를 내려와야 하는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들 기억 속에 사라져가는 듯하던 그가 지난 5일(한국 시간) 미국 오리건주 크레스웰의 에머랄드밸리 골프장 파71(Par 71)에서 열린 US오픈 예선 라운드에서 4언더파를 기록하면서 당당히 1위로 골인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었다. 케이시는 지난 6년간 오리건대학교 골프팀의 감독을 맡아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았고 날카로은 칼날을 다시 세운 것이었다. 포기가 없는 그의 노력과 삶을 계기로 누구를 기준으로 공평함과 불공평함이 평가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회자되고 있다.

필자는 오래 전 LPGA시합에서 만난 아주 특별한 친구가 있었다. 호주에서 온 선수였는데 한 눈에 봐도 비만, 그것도 고도 비만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걸어갈 때면 코끼리 같다고 수근거리기도 했는데 정말 거대한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였다. 1년 내내 시합을 하고 여행을 하던 필자는 우연히 같은 호텔에서 바로 옆방에 묵고 있는 그녀와 이야기 할 시간이 있었다. 그녀는 호텔로비에 있던 당구대 앞에서 당구를 칠 줄 아는지 물어봤고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당구를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하루아침에 필자의 당구 코치가 된 그녀에게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한 후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 왜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지를 물어봤다.

“혹시 당뇨병을 앓고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 했다.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정상적이라면 땀이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그녀의 몸은 배출되지 않은 채 그대로 땀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희귀한 병이라는 설명이었다. 의사는 절대 땀을 흘리지 말 것을 권고했고 운동 자체를 자제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녀의 골프 사랑은 막을 수 없었다. 골프 선수로 호주를 대표하는 프로 골퍼가 됐고 미국 무대에서 멋지게 선수로 선 것이다.

대부분의 시합은 한여름 때라서 등 뒤에 땀이 마르지 않는 날이 더 많다. 바닷가 해녀들이 입는 옷처럼 꽉 끼는 슈트를 입고 다니고 시합을 해야만 했는데 너무 더운 나머지 그녀는 슈트를 벗어 던졌고 몸은 더욱 더 그녀를 괴롭혔다. 필자는 물었다. 그렇게 골프가 좋으냐고. 그녀는 너무나 순진하고 천진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예스(YES)! Minny(필자의 영어 이름)." 내가 좋아서 골프를 치더라도 몸이 코끼리처럼 불어나고 땀이 밖으로 배출되지 않는 힘든 상황에도 계속 골프를 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 날부터 필자는 그녀를 당구 스승으로 모셨고 그 누구에게도 단순히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 속 깊이 다짐을 했었다. 이후에도 골프장이나 그 어떤 장소에서도 그녀를 코끼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그녀는 진정한 골퍼이고 골프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는 몸이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몸을 갖고도 정신의 장애를 겪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진정한 승리와 용기는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케이시 선수. 또 모든 힘든 장애와 어려움을 딛고 선 그들에게 뜨거운 격력의 박수를 보낸다.

여민선 프로 minnywear@gmail.com
LPGA멤버, KLPGA정회원, 라이프스포츠클럽 골프 제너럴 매니저,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