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5일. 양재동 엘타워 6층 ‘부부은퇴학교’ 현장. 머리가 희끗희끗한 부부들이 한 쌍, 두 쌍 강의실로 들어섰다. 강의실 입구에는 방명록이 마련돼 있었다. 부부은퇴학교 참가를 기념하는 글귀 중 뭔가가 눈에 확 들어왔다. “60세 이후는 행복한 소풍 시간이다.” 익명의 부인이 남긴 글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집단 은퇴’로 은퇴 사업이 활황을 맞고 있다. 은퇴. ‘치열한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로이 지내는 시간’을 일컫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은퇴자금이 없는데 어떻게 한가로울 수 있겠는가. 이러한 현실 앞에서 은퇴는 은빛이라기보다 잿빛에 가깝다. ‘부부은퇴학교’는 은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또는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준비됐다.

100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한 이날 행사에는 김홍신 건국대 언론대학원 교수의 ‘은퇴 인생사용설명서’, 김병준 변호사, 김숙기 나누미가족문화연구원장의 ‘부부의 소통과 이해’, 김진영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장의 ‘은퇴자산관리의 솔루션’까지 총 3개의 귀한 강의가 마련됐다. 강의는 각각 1시간 동안 이어졌으며 중간 중간에는 별도의 룸에서 은퇴전문 PB들이 은퇴설계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원활한 협업시스템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증권사의 ‘재무설계’ 노하우, 은퇴 영역에 접목
‘부부은퇴학교’는 부부가 함께 은퇴와 삶을 조망하고, 은퇴 전후의 자산 관리를 계획하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삼성증권이 마련한 행사다. ‘은퇴설계’라고 하면 사실 ‘보험상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때문에 증권사에서 은퇴설계를 한다는 것이 다소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삼성증권에서는 2010년 12월 은퇴설계연구소를 설립하고 약 2년간 전사 역량을 은퇴사업에 쏟고 있지만 아직까지 갸우뚱하는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증권의 자산관리 솔루션을 은퇴에 적용한 겁니다. 보험사와 은행의 은퇴사업을 살펴보면 ‘현역’에 있는 계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선에서 물러난 베이비부머들은 어떡합니까. 이들에게는 자산관리의 툴이 필요한 거죠.” 김진영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장은 ‘은퇴’에 있어 증권사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은퇴를 설계하는 시기는 각자 다 다르다”면서 “개개인에 맞는 솔루션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은행, 보험, 증권 등에서 다양한 선택권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은퇴 설계가 호랑이 약처럼 만병통치는 아닙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죠. 삼성증권의 경우, 자산관리 경력만 10년입니다. 그만큼 익숙하다는 거죠. 이 같은 노하우를 은퇴에까지 확대 적용시켰다고 보면 됩니다. 오늘 부부은퇴학교는 증권사에서는 은퇴를 어떤 각도에서 보고 있으며, 어떠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가를 알리는 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 소장은 이어 기존의 은퇴 설계가 ‘상품 홍보 및 판매’에 다소 초점이 맞춰져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설계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서 “상품하나 만들고, 시스템 만들어 일괄적으로 적용시키는 데 급급하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삼성증권이 은퇴학교에 ‘부부’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도 이 같은 차원에서다.

“은퇴설계를 하다보면, 재무상황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고객이 거의 없습니다. 보험이 있냐고 질문하면 ‘부인이 몇 개 든 것 같던데…’라는 대답이 돌아오고요, 남편의 퇴직금을 물어보면 ‘남편한테 전화해 봐야 안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확실한 설계가 될 수 없어요. 마치 사주를 보러가서 생년월일을 잘못 말하는 경우와 같죠. ‘부부은퇴설계’란 결국 종합 자산관리를 표방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셈입니다.”

삼성증권의 ‘부부은퇴학교’는 지난 6월 5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서울, 대구, 대전에서 4회에 걸쳐 개최된다. 오는 12일에는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2회가 개최되며, 15일과 19일에는 각각 대구 제이스호텔 그랜드볼룸, 대전 리베라호텔에서 3, 4회 막을 올리게 된다. 이에 앞서 삼성증권은 지난 5월 22~23일 강원도 힐리언스 휴양단지에서 ‘1박2일 은퇴학교’를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은퇴전용계좌 ‘플랜R’을 출시하는 등 은퇴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인터뷰 | 김진영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장
“은퇴준비 시작 45세는 넘지말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은퇴 준비, 언제부터 하는 게 좋을까? 통상 빠를수록 좋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넌센스다. 예를 들어 30대 초반이고, 미혼인 상태인 사람이 가족관계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엇을 설계할 수 있을까. 무턱대고 저축하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게 올바른 은퇴설계인가 묻고 싶다. 기본적으로 40대는 넘어야 한다고 본다. 이직이나 승진 등의 청사진이 어느 정도 형성되고, 향후 가족관계가 파악이 될 나이가 이때다. 단, 너무 늦으면 안 된다. 45세는 넘지 마라. 자산관리에 있어 선택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은퇴준비자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는? 크게 두 가지다. 은퇴 자금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과 부동산 문제다. 상담을 하다보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일컫는 준비자들이 많다. 한데 은퇴자금은 없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은퇴자금을 가족들에게 다 쓰고 ‘남은 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퇴자산을 챙기면 이기적인 부모라는 인식이 그만큼 팽배해 있다. 은퇴 자산에 대한 인식과 개념 정립이 다시 돼야 할 때다.
베이비부머들의 가장 큰 문제가 선택권(자산)이 대부분 ‘집’밖에 없다는 거다. 집이라는 부동산을 어떻게 처분하느냐가 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유럽과 호주 등에서도 부동산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그들은 부동산을 현금화할 수 있는 제도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주택금융 역모기지 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 외에는 되파는 것 밖에 방도가 없으니 시장상황에 맡겨버리게 된다. 부동산 문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의사결정을 시의 적절하게 하라는 것이다.

순탄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젊게 생각하라.’ 이게 키워드다. 순탄치 못한 노후를 보내는 이들은 대부분 ‘다 끝났다. 있는 것 가지고 살다가 가는 거지’라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마인드를 가졌다. 산에 오르고, 또 내려오고, 실의 매듭을 짓고, 또 푸는 것처럼 노후도 이러한 ‘역(易)의 흐름’ 중 하나다. 삶의 ‘모드’가 변환되는 시점이다. 이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물론 환갑이 지나서도 댄스학원에서 비보이를 배우는 은퇴자들도 있다.
하지만 신체를 젊게 유지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른 살, 여든 살이 돼서도 뭔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부부은퇴학교에 ‘학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사실은 이 같은 차원에서다. 은퇴는 또 다른 인생이라는 의미와 함께 모든 인생은 배움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은퇴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다. 은퇴 준비자들에게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박지현 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