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지현기자]


세상의 가장 단맛을 표현할 때 우리는 ‘꿀맛’이라고 얘기한다. 세상이 살만 할 때도 그렇고 서로가 좋아서 죽을 만큼 행복한 ‘신혼’ 생활을 애기할 때도 꿀맛을 들먹인다. 이렇듯 세상의 가장 행복한 맛이 바로 꿀이다. 그런 꿀맛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기까지는 산으로 들로 벌통을 옮겨가면서 꿀을 채취하는 양봉사업자의 수고가 뒤따른다.
세상에 ‘꿀맛’을 전달하는 아이비영농조합 양경열 회장을 만났다.

“양이 적더라도 최고의 품질만을 약속합니다. 최고의 품질이 아니면 인정받을 수 없어요. 그래야만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그 신뢰가 있을 때 우리는 지속 가능한 양봉과 농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기도 양평군 아이비영농조합 양경열 회장은 조합에서 만든 상품들은 ‘최고’가 아니면 내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는 양 회장이 ‘머리 아픈 세상을 떠나 벌이나 치며 살겠다’고 귀농을 시작한 이래 단 한 차례도 꺾이지 않은 삶의 철학이다.
일반 속설로 세상에서 가장 가짜가 많다는 것이 참기름과 꿀이다. 대부분 이렇게 ‘가짜’로 불리는 것은 적은 양을 늘리기 위해 편법을 쓴 제품들을 일컫는다. 참기름에 다른 기름을 섞어 판다거나 꿀의 농도를 묽게 해서 양을 늘리는 방법이다.

양 회장은 이런 문제는 아이비영농조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손 사레를 친다.
“우리 조합은 이런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관리감독을 해요. 꿀을 딸 때만 감독하는 게 아니라 여왕벌 육종 보급부터 모든 양봉 전 단계에 걸쳐 매뉴얼로 되어 있어요. 만약 이런 규정을 어기는 경우엔 강제 탈퇴를 시켜요. 조합원 전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아이비영농조합은 경기도 양봉연구회 회원 농가들이 모여 만든 영농조합이다. 때문에 양봉연구회와 영농조합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회원 농가가 벌써 300여명에 이르는 큰 조직이다. 이렇게 안정적인 조직을 갖추기까지 양 회장의 노력이 큰 밑받침이 됐다.

“우리나라 양봉사업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해마다 꿀 생산량이 줄고 있어요. 때문에 대체 수입원을 개발해야 하지요. 그래서 경기도 양봉연구회에서 발 벗고 나선 겁니다. 적어도 경기도 내에 있는 양봉사업자들만이라도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자는 것이었지요.”

지난 2005년을 전후해서 우리나라 양봉사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상기온으로 꿀 채취가 불가능했다. 한 철 농사가 한 해 농사인 양봉사업은 이렇게 2~3년 연이은 타격으로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양봉이라는 게 꿀을 따야 소득이 생기는데 이상기온으로 꿀 채취가 불가능한 겁니다. 예전에는 제주에서부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벌통을 옮겨 싣고 북으로 이동을 하면서 꿀을 얻었지요. 그런데 제주에서 꽃이 피고 2~3일 후에 서울에서 꽃이 피는 고온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벌통을 옮겨 봐야 차 기름 값도 나오지 않는 상황인 것이지요.”

양 회장이 이런 위기를 타개하고자 고안해 낸 것이 ‘봉침액’이다. 벌이 공격할 때 쓰는 침에는 염증 치료에 탁월한 봉침액이 있는데 이를 채취하는 것이다. “벌이 침을 쏘면 죽지만 디지털 봉침액 채집기는 전기적 자극으로 벌이 침을 쏘지 않으면서도 봉침액을 조금씩 채집할 수 있습니다.”

아이비영농조합에서는 양봉농가들이 스테인리스 용기에 꿀을 모아오면 수분측정 등을 한후 농축과정을 거쳐 포장 출하한다.


이는 양 회장이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봉침을 이용해 양축농가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결과다. “원래 축산농가에서는 살아있는 벌을 이용해 질병도 치료하고 예방하는 목적으로 봉침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일일이 가축에 봉침을 놓기가 불편하고 벌에 쏘이는 위험도 있어 기피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을 편리하게 주사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게 디지털 봉침액 채집기입니다.”

양봉농가에 봉침액 채집기를 보급해서 봉침액을 모았다. 꿀 채취량이 줄어든 부분을 봉침액으로 수입원을 대체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과거 양봉농가 소득구조는 꿀이 70~80%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화분과 프로폴리스, 로얄제리 등이 나머지 소득원 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꿀 50%, 봉침액 30%, 화분·프로폴리스·로얄제리 20%로 소득구조가 바뀌었다. 꿀이 줄어든 만큼 봉침액으로 수입을 대신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았어요. 당시 한 제약사에서 미국의 봉침액을 수입하고 있었는데 우리 봉침액은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에요. 미국 벌에서 채취한 것은 되지만 우리 것은 실험 데이터 등이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 것이 40%정도 가격이 더 저렴하고 우리 몸에 맞는 것인 데도요. 그래서 농진청과 농업기술개발원 등을 뛰어다니면서 연구 의뢰하고 데이터를 모았지요. 결국 우리 봉침액을 경기도 양돈연구회 ‘아이포크’ 무항생제 돼지에 사용하면서 인정을 받아 판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아이비영농조합에서 모은 봉침액이 800g이었다. 이 봉침액을 1000~5000배 희석해서 돼지에 주사하면 항생제를 놓지 않아도 건강한 돼지를 키울 수 있다. 또한 봉침액은 소의 유방염 치료 등에도 뛰어난 효능을 나타낸다. 축산농가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항생제 투여를 줄이고 맛 좋은 육질을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된 것이다.

양 회장은 “양봉사업자는 봉침액으로 또 다른 수입원을 찾아서 행복하고, 축산농가에서는 문제 많은 항생제를 쓰지 않고도 봉침액 주사로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좋다”라면서 “또한 소비자는 안전한 축산물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양봉농가에 수익도 가져다주었다. 또한 내년부터 16개 시군에 시범사업으로 봉침액을 활용한 사업도 개시한다. 지난해에는 구제역으로 주춤했지만 올해 조합에서 8억여원의 매출은 거뜬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에는 그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양 회장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양봉을 활용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골몰하고 있다. 최근 그가 새로 심혈을 기울인 것은 ‘허니와인’이다. 꿀을 이용한 와인인 것이다. 이는 유럽에 ‘허니문’의 유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신혼여행을 길게 간다고 해요. 우리처럼 3박4일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한 달 또는 몇 개월씩 장기여행을 하는 경우도 많답니다. 이때 꿀이 들어간 음료와 술을 마시는데 부부금슬에도 좋고 여행에 대한 피로회복에도 그만이랍니다. 새로운 환경을 적응할 때 필요한 꿀의 면역력 증가나 소독 효과도 도움이 됐겠지요. 그래서 꿀을 이용한 와인을 개발 했어요. 지금은 적은 양만 생산하기 때문에 예식장 등에서 타깃판매를 합니다.”

아이비에서 만든 ‘허니와인’은 천연물질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냉장 보관해야 하고 유통 기간도 8개월 정도로 짧다. 하지만 화학물질이 전혀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믿고 마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다. 꿀벌아교라 불리는 프로폴리스를 이용한 상품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원래 프로폴리스는 ‘도시 전체를 안전하게 지킨다’는 뜻으로 벌집의 봉군을 안정하게 지키는 물질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프로폴리스는 끈적이는 교질성 물질로 꿀벌들이 수목류의 생장점 보호 물질이나 진액을 수집, 타액의 효소와 혼합해 만드는 것으로 벌통 내부에 발라 그들의 안전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물질이다. 이런 프로폴리스를 이용해 건강식품을 만들기도 하고 치아염증과 치통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치약으로 만들기도 했다. 특히 프로폴리스를 넣은 치약은 입에서 입으로 그 효능이 번지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양 회장은 “양봉농가들을 위해 보다 다양한 부가가치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양봉사업이 왜 지속돼야 하는지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국내 양봉산업을 규모로 얘기하면 아주 미약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양봉 사업이 존재하지 못할 때 들어갈 사회적 비용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벌이 없어지면 수분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참외나 수박 농사는 물론이거니와 화훼 산업 등 전 농업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꿀벌의 수분활동 등 가치가 4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때문에 양봉사업을 전체 생태계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지원 육성해야 합니다.”

꿀벌의 가치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농약 등 환경오염에 민감한 꿀벌은 환경오염의 척도를 나타내는 표본으로도 활용가치가 크다.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벌이 사라지고 그래서 더 이상 식물들의 수분(受粉)이 없게 되면 식물들이 사라지고, 그 땅에서는 더 이상 동물들이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지구 표면에서 꿀벌이 사라지고 나면 그 뒤 인간이 살아남을 기간은 딱 4년밖에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양 회장은 “거창한 지원 사업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의 나대지나 유휴지 등에 꽃이나 밀원수를 심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1인 1양봉장 사업을 위해 양봉사업자에게 작은 땅이라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사실 양봉업을 위해 그리 넓은 땅이 필요하지는 않다. 벌통 몇 개만이라도 놓을 수 있는 땅이면 족하다. 보통 벌이 그 인근 5km 근방을 다니며 수분활동을 하고 꽃가루를 채취하며 꿀을 만들어낸다. 수도작이나 다른 작목을 농사짓는 이들처럼 넓은 땅이 아니어도 인근 농가에 도움을 주면서 하는 농업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

양 회장은 이제 조합일이나 연구회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다고 애기한다. 아직 주위에서는 몇 년 동안은 더 해야 한다고 만류하지만 이제 좀 쉬면서 자신의 사업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양 회장은 자신의 거취보다는 양봉 후계자들이 없다는 게 더 걱정이다.

“해마다 꿀벌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는 양봉업을 잇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소득이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양봉업을 안 할 수도 없잖아요. 그나마 꿀벌이 사라지면 농업도 그렇고 우리 환경이 더 나빠질 게 자명한데….”
양 회장은 젊은 사람들이 양봉사업을 할 수 있게 하는 대안으로 ‘잘 사는 양봉농업’을 제안했다.

“해마다 6~7월쯤에 ‘우수 여왕벌 콘테스트’를 해요. 우수 육종을 개발하고 보급하자는 취지입니다. 또 꿀벌 사료도 개발했어요. 해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꽃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지요. 대체효과만 있는 게 아니라 각종 유해충이나 바이러스의 유입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수입을 늘리는 것입니다. 힘들고 험한 일만 있는 게 아니라 보람도 있고 그에 따른 수입도 보장되는 양봉농업을 만든다면 젊은 사람들도 참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상오 기자 hanso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