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85년 개최된 '라이브 에이드'에서 'Radio Ga Ga'를 부르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 출처=유튜브 캡처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지난 1979년 영국 2인조 그룹 버글스의 노래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히트를 쳤다. 바야흐로 텔레비전 시대가 열리면서 라디오는 위기를 맞이했다는 인식이 부상하던 시절이었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사로잡는 대중 매체의 출현은 소리에만 의존하는 라디오의 종말을 예견케 하기 충분했다. 그러자 전설적인 록밴드 퀸은 1984년 'Radio Ga Ga'라는 노래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라디오, 그저 배경 음악으로 남지 마"라며 "라디오의 최고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어"라고 부르짖었다.

지금은 어떨까. 라디오는 1930년대 주요 선전 도구로 활용될 만큼 독보적인 매스 미디어였으나, 이제 그리 큰 매체 파워를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라디오의 후예가 살아 남았다. 바로 디지털 시대의 오디오 콘텐츠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옷을 입은 오디오 콘텐츠들이 예전의 라디오 매니아들은 물론 뉴미디어 세대까지 불러 들이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팟캐스트'의 등장으로 가능성을 보여 준 오디오 콘텐츠 서비스는 최근 다양한 플랫폼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개화했다는 평가다.

오디오 콘텐츠 서비스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특수'까지 누리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대면이 꺼려지는 상황에서 정보와 소통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오디오 콘텐츠의 'LIVE(Life·Inspiration·Vertical·Entertainment)'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사, 경제, 예능, 힐링 등 오디오 콘텐츠가 주도하는 라이프 스타일 속으로 떠나 보자.

Life: 스마트폰으로 번뇌 말고 '명상'
▲ 출처=마보

지난해부터 명상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면서, '마보'와 '코끼리' 같은 명상 애플리케이션의 이용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경우 코로나 블루 등으로 명상 앱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마보는 마음 보기 7일 기초 훈련과 주의력 집중 훈련, 기분별·상황별 마음 보기 등의 프로그램들을 제공한다. 마보는 지난 9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실의에 빠진 이들을 위한 '희망을 잃지마'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이외 '현명한 희망을 가져라', '희망을 잃지 않기', '극복을 위한 명상' 등의 강화된 명상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마보는 올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귀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1개월 무료 이용권 나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정서적 고립감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다. 이 기간 무료 이용권 1만개가 모두 소진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명상 앱 '코끼리'는 혜민 스님과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 공동으로 창업한 스타트업인 마음수업이 개발한 앱이다. 코끼리는 '매일 명상'과 '자존감 수업', '분노 다스리기' 등 혜민 스님의 수업 뿐 아니라 이해인 수녀의 시 명상 콘텐츠 등도 제공한다. 이외 김미경의 '인간 관계 솔루션', 전수진의 '자존감 수업', 곽정은의 '사랑과 연애 수업' 등도 함께 제공되고 있다. 또 코끼리는 연휴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점심 후 휴식 명상', '핀란드 치유의 숲' 등 ASMR 콘텐츠도 마련했다.

작년 9월 출시된 코끼리는 같은 해 구글 플레이스토어 '올해를 빛낸 숨은 보석 앱'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출시 이후 1년여간 누적 회원 수가 30만명을 넘어서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Inspiration: 내 좁은 방이 뉴질랜드의 대초원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출국이 힘들어지면서, 해외 여행에 대한 향수가 나날이 짙어지고 있다. 이에 스캐터랩의 '블림프'가 제공하는 '사운드 스케이프' 서비스가 주목 받고 있다.

해당 서비스는 '여행의 감정이 교차하는 공항의 대합실', '소나기가 쏟아지는 홍콩의 뒷골목', '설원 위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비행기에 가득한 여행의 설렘' 등의 콘텐츠로 외국 곳곳의 소리를 재현해, 마치 그 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공항 대합실과 비행기 내의 소리가 실감 나게 담겨 잠시나마 출국의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이외 '태평양 자르비스섬의 잔잔한 파도 소리', '뉴질랜드 아오라키 캠핑장의 모닥불 소리', '노르웨이 플뢰엔 숲의 적막한 소리', '캔자스 대초원의 풀밭이 흔들리는 소리' 등 평화로운 자연의 소리들도 휴식을 위해 활용해 봄직하다.

▲ 출처=스캐터랩

블림프란 소형 비행선을 뜻하는 말로, 이용자가 어디서든 오디오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스캐터랩 관계자는 "블림프는 소리와 이야기를 통한 힐링과 삶의 질적인 향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른 서비스들과 유사한 면도 있으나, 적극적인 사색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결을 달리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블림프는 이야기 콘텐츠도 제공한다. 한 평생 우주를 연구한 천문학자의 강의, 도시의 삶을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간 엘리트 청년의 일기, 심각한 우울증을 극복해 낸 어느 작가의 수기 등으로 15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도 깊은 사색에 잠겨들 수 있는 이야기들을 준비했다는 설명이다.

이미 오디오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윌라·밀리의 서재·스토리텔 등도 이처럼 영감을 주는 스토리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스토리텔은 최근 유명 안무가 리아킴의 첫 포토북 '리얼리티, 노 리얼리티'를 오디오북으로 제작, 출시했다. 리아킴의 춤과 인생, 인간 관계와 자기 관리 등에 대한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성우 장세윤과 김은경의 목소리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다. 앞서 스토리텔은 지난 5월 가수 양준일의 에세이 '양준일 MAYBE'도 오디오북으로 출시한 바 있다.

이외에도 스토리텔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심신이 지친 사람들을 위해, 저명한 심리학자와 정신과 전문의들의 저서를 완독 오디오북으로 제작해 모아 놓은 '정신과 상담의 방' 큐레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Vertical: 공포·스릴러·경제 등 전문 콘텐츠도 인기

버티컬 콘텐츠들에서도 오디오 서비스의 인기가 두드러진다. 공포·스릴러·경제 등 영역이 대표적이다.

팟빵에는 공포·미스터리 관련 방송이 100개 이상 운영되고 있다. 전체 순위에서도 '왓섭! 공포 라디오'가 10위권, '브레이든의 무서운 라디오'와 '80 스튜디오 무서운 이야기 공포 라디오'가 50위권 내에 자리하고 있다. 

팟빵 공포·미스터리 분야 방송의 올해 1~8월 재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23% 가량 증가했다. 이에 팟빵은 공포 콘텐츠의 인기에 주목, 지난 8월 오리지널 유료 콘텐츠로 '오디오 괴담 제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 출처=팟빵

또 팟빵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스릴러 콘텐츠인 '검은방'을 선보인다. 검은방은 범죄 심리 분석 전문가인 권일용 교수가 주요 살인 사건들을 직접 소개하고 범인들의 심리를 프로파일링 관점으로 파헤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방송되는 검은방 시즌 2는 한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다.

‘프로파일러 배상훈의 CRIME’ 역시 인기를 끌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경찰청 1기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박사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범죄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현재 6만1000명이 넘는 팟빵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한편 최근 세대를 불문하고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경제 전문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인 '페이지2'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오전 7시 30분과 오후 6시 두 차례에 걸쳐 생방송을 진행하는 페이지2는 경제 정보를 가장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서비스라는 호평을 받는다. 특히 각 분야의 경제 전문가들과 함께 대담하는 ‘김동환 이진우 정영진의 신과함께’가 현재 약 10만명의 팟빵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은 미술 전문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O의 찬열과 세훈이 진행하는 '[오디오 도슨트] 장 미쉘 바스키아 전(展)'은 현재 진행 중인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예술·영웅' 전시회와 관련해 바스키아의 작품 설명 및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 준다.

Entertainment: '중년 취향 저격' 인포테인먼트에 10대 모으는 셀럽쇼까지

요즘 웃기기로 입소문이 난 오디오 콘텐츠 서비스는 팟빵 '정영진과 최욱의 매불쇼'다. 매불쇼는 2014년 '정영진과 최욱의 불금쇼'로 시작해 2018년부터 매일 방송하는 고정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구독자 12만4000여명을 보유한 매불쇼는 '종합 버라이어티 예능쇼'를 표방하는 만큼 시사·정치·경제·국제·과학·역사·영화·음악·연애 등의 영역을 폭 넓게 망라하고 있다. 매불쇼에는 '배철수의 음악 캠프'의 배순탁 작가와 베이시스트 이태윤, 술탄오브더디스코의 김간지 등이 출연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 학교 급식계의 슈퍼스타 김민지 영양사가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출처=네이버

네이버가 2019년 9월부터 시작한 라이브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나우'는 출시 1년여 만에 2000만명의 누적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특히 10대 시청자의 파워가 만만치 않다. 해당 연령층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1년 동안 2배 이상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송민호와 피오가 호스트로 출연하는 '브르르르르 프렌즈'와 하성운의 '심야 아이돌' 등이 10대 시청자 비중이 높은 프로그램이다.

나우는 추석 특집 오리지널 쇼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개그맨 박나래는 '대외비 - 나 혼자 추석 쇤다 특집'을 통해 싱글들이 명절에 겪는 고민에 대한 사연들을 소개하면서 추석을 혼자 보내는 청취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즐거움을 선사했다. 정형돈과 데프콘의 '네이놈 - 추석 영화 특집'에서는 추석에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영화들을 소개했다.

이외 나우는 꾸준히 사랑 받는 록 명곡을 모은 '올타임 패이벌릿 록', 집에서 파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클럽 음악을 스트리밍하는 '방구석 클러버', 요즘 핫한 트로트 노래 모음 '올타임 패이벌릿 트로트' 등을 추석 연휴 콘텐츠로 준비했다.

이 밖에도 여행·스포츠·연애·유머 등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들에 대한 소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블림프를 서비스하는 스캐터랩의 김종윤 대표는 "유튜브도 틀어 놓고 듣기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 만큼, 오디오 서비스에 대한 니즈는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특정 목적과 전문성에 맞는 오디오 콘텐츠들은 계속 팬덤을 형성하며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