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 하원이 6일(현지시간) 보고서를 발행하며 아마존과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에 제동을 걸었다. 

실제로 하원 법사위 산하 반(反)독점소위가 공개한 449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는 각 빅테크 기업들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을 우려하는 한편, 필요하다면 플랫폼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파격적인 내용도 담겨있다.

미 민주당이 다수인 미 하원에서 빅테크 기업에 대한 압박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일각에서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미 하원이 본격적인 실리콘밸리 옥죄기에 나섰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가오는 대선과 함께 치뤄질 선거 지형, 실리콘밸리와 미 정치권의 상관관계,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 공화당 중심의 미온적인 움직임 등 입체적으로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독점, 감독의 대상
미 하원의 보고서는 반독점소위가 16개월간 진행한 조사를 바탕으로 아마존 및 애플, 페이스북, 구글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에 방점을 찍었다. 이들이 인터넷 시장의 패권을 과도하게 행사하며 시장 독과점 횡포를 통해 새로운 사업자의 발목을 원천봉쇄한다는 주장이다.

시장 독과점의 폐혜로는 페이스북과 구글이 보고서에 이름을 올렸다.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페이스북의 사례를 비중있게 거론하며 다양한 SNS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주장하는 한편, 구글에 대해서는 경쟁자의 서비스를 자사 플랫폼에서 밀어낸 사례에 주목했다. 지난 6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네이버의 사례와 비슷하다.

애플과 아마존은 시장 독과점에 따른 감독의 대상으로 분류했다. 아마존은 이커머스의 강자로 군림하며 많은 사업자들에 대한 횡포를 부렸으며, 애플은 앱스토어의 중립성을 부정하고 자사 서비스 중심의 새로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는 비판이 담겼다. 

최근 포트나이트 사태로 앱스토어 수수료 분쟁이 뜨거워지는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급진적인 정책?
최근까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미 민주당은 물론 미 공화당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은 바 있다. 민주당은 실리콘밸리 기업의 IT 정신이 자유로운 미국의 문화를 상징한다고 봤고, 이러한 분위기는 오바마 행정부 당시 극대화됐다. 당시 공화당도 실리콘밸리를 통해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려고 했다.

변화가 생긴 것은 2016년 대선이다. 

트럼프 대통령 등장 즈음, 소위 가짜뉴스 사태가 터지며 ICT 플랫폼 기업에 대한 책임론이 일었고 이를 기점으로 민주당은 실리콘밸리와 불편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동시에 블루컬러 백인 중심 러스트벨트서 지지를 얻은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공화당도 실리콘밸리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실리콘밸리를 증오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강력한 압박 일변도를 보여줬고, 대선 전후에는 많은 실리콘밸리 인사들과 날선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연장선에서 가짜뉴스의 탄생과 ICT 기업의 책임론을 제기하던 민주당은 지난해 초부터 본격적인 실리콘밸리 견제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번 보고서의 탄생을 끌어낸 하원 법사위 산하 반(反)독점소위가 플랫폼 기업들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을 조사하는 한편 급진적인 '플랫폼 쪼개기'를 위한 군불떼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 때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이 전면에 섰다. 그는 지난해 3월 SXSW에 참여해 “시장은 경쟁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 해체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ICT 기업들의 강력한 플랫폼 경쟁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시장의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 일부 기업을 강제로 ‘쪼개야 한다’는 뜻이다.

워런 의원은 또 “아마존과 구글 등은 우리의 경제와 사회, 문화에서 너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경쟁을 거부하며 우리의 개인정보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맹비난에 나서기도 했다.

워런 의원은 플랫폼 독과점을 막기 위해 ‘판매자와 플랫폼의 분리’도 주장하고 있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특정 플랫폼이 내부 플랫폼에서 판매자처럼 동일한 비즈니스를 한다면 공정경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워런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애플은 앱스토어를 분리해야 한다.

미국은 플랫폼 쪼개기에 있어 이미 전적을 가지고 있다. 한 때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했던 스탠다드오일을 무려 30개의 회사로 쪼갰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국 워런 의원의 발언과 트럼프 대통령의 실리콘밸리에 대한 악감정, 미국에서 커지고 있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시장 독과점 논란 등이 결합되면 예상하지 못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한편 워런 의원의 플랫폼 쪼개기 주장이 나오는 한편 미 하원의 반독점 조사도 날카로우졌다. 지난해 9월 뉴욕타임즈(NYT)는 미 하원이 최근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글로벌 ICT 업체를 대상으로 내부 이메일과 금융 정보 등 민감한 정보를 요구했으며 이는 주요 CEO의 이메일 내역과 금융 정보라 보도했다. 반독점을 겨냥하기 위한 원런 의원과 미 하원의 칼날이 빅테크 기업들의 숨통을 겨누는 순간이다.

나아가 미 하원의 독과점 조사가 본격화되는 한편 워런 의원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자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 

한 숨 돌리다?
상황은 다시 반전을 맞이한다. 부자들에 대한 부유세 부과를 비롯해 플랫폼 기업 쪼개기에 나섰던 워런 의원이 경선에서 하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런 의원은 지난 3월 5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경선 하차를 선언했다. 한 때 민주당 경선 후보군 중 인물 호감도 1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했으나 지난 3월 3일 14개 주에서 동시에 경선이 진행되는 수퍼 화요일에서 참패한 영향이 컸다. 이어 지역구인 매사추세츠주마저 3위에 이름을 올리며 체면을 구겼고, 결국 경선 하차를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2월 민주당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밴드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에 이어 세 번째다. 

한 차례 연기된 후 우여곡절 끝에 열린 빅테크 기업 하원 청문회가 사실상 흥행에 실패하는 일도 벌어졌다. 

실제로 페이스북과 애플, 아마존 및 구글 등 미국의 4대 기술 기업 최고 경영자(CEO)들이 7월 29일(현지 시각) 온라인으로 열린 미 하원 청문회에 나서며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독과점 논란이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으나, 이러한 전망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시실린 위원장이 4대 IT 기업들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며 비판한 것은 나쁘지 않았으나, 이후로는 각 CEO들이 소위 애국심을 증명하는 사상검증의 시간만 이어졌다. 실제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이날 청문회에서 "전 세계인들이 우리 제품을 쓰지만 페이스북은 자랑스러운 미국 기업"이라고 말했으며 "중국은 매우 다른 구상에 초점을 둔 자신들 버전의 인터넷을 구축해 이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피차이 구글 CEO는 "구글은 검색과 관련해 이 영역의 전문가인 여러 기업들과의 강한 경쟁을 마주하고 있다"며 자사의 어려움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나아가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는 청문회 서면증언을 통해 “아마존은 현재 100만명의 미국인을 고용하고 있다"고 강조했으며 쿡 애플 CEO는 서면 증언에서 "애플은 우리가 사업을 하는 어떤 시장에서도 독점적 점유율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독과점 폐혜를 지적하는 자리가, 오히려 미중 갈등의 균열속에서 '변명의 파티'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다시 날카로워진 칼, 그러나
워런 의원의 퇴장, 나아가 7월 열린 미 하원 청문회의 흥행 실패로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제재 동력이 급속도로 상실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미 하원이 보고서를 통해 빅테크 기업들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을 강하게 질타하며,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긴장감은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다만 이번 보고서가 빅테크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가 아닌, 일종의 경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WP는 "보고서에 빅테크 기업을 당장 분할해야 한다는 말이 없다"고 보도했다. 

보고서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빅테크 기업의 인수합병 사업을 검증하며 반독점으로 인한 폐혜의 입증 책임주체를 빅테크 기업으로 설정하며,유사사업을 벌일 경우 구조적 분할을 강제하는 한편 자사 우선의 서비스 금지 및 경쟁사에 대한 약탈적 가격 설정 금지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독점법인 클레이튼법 제 7조와 셔먼법 제2조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유사사업을 벌일 경우 구조적 분할을 강제한다'는 대목은 워런 의원이 주장했던 플랫폼 쪼개기와 비슷하지만, 그 강도에 있어서는 다소 후퇴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인수합병 사업을 검증하며 반독점으로 인한 폐혜의 입증 책임주체'와 연결할 경우 빅테크 기업들이 추후 인수합병에 나설 때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의 인수합병 상황을 가정한 것이며, 현재의 플랫폼 쪼개기를 주문했던 워런 의원의 주장과는 온도 차이가 있다. 보고서가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를 집중적으로 다룬 배경이다.

로이터는 "당장 미 정부가 빅테크 기업의 분할을 시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평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이번 보고서는 권고의 형태인데다 당장 빅테크 기업의 분할을 요구하지 않지만, 추후 미 하원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당장의 액션플랜과는 별도로 빅테크 기업에 대한 시장 독과점 우려가 위험수위에 오르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어떤 방식으로든 빅테크 기업들은 타격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추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현재의 보고서가 민주당이 다수인 미 하원에서 나왔으나, 현재 공화당 일각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민주당의 주장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이유다. 실제로 하원 반독점 소위원회 소속인 켄 벅 공화당 하원 의원은 언론을 통해 "톱이 아닌 수술용 메스로 진행하는 것이 더 좋다"는 입장을 냈다.

입법 및 발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만약 보고서가 입법의 방식으로 체계적인 로드맵을 밟을 경우 미 하원 통과는 확실해 보이지만, 거부권을 가진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 관련 행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11월 미 대선 및 상하원 선거 결과에 따라 미 의회 지형도가 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나아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중국과 기술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11월 이후 출범할 미 행정부와 의회가 실리콘밸리 기업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실리콘밸리 기업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고 있으나 최근 수위 조절에 나서는 분위기도 연출된다. 미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에 연이어 나서는 가운데, 조 바이든 후보의 캠프에도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대거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NYT는 지난 8월 조 바이든 후보캠프의 ‘혁신정책위원회(Innovation Policy Committee)’에 페이스북 및 애플 등 빅테크 기업 인사가 무려 8명이나 포진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후보의 런닝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슨을 발탁하는데 기여한 신시아 호건은 애플의 대관 담당 부사장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