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 정부가 중국 SMIC에 대한 제재에 돌입할 전망이다. 중국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을 원천 차단한 상태에서 파운드리 업체인 SMIC까지 압박의 범위를 넓히는 분위기다. 중국 반도체 굴기를 완전히 꺾는 한편 화웨이의 파운드리 가능성까지 차단하며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메시지로도 풀이된다. 

자국 반도체 기업을 위한 250억달러의 보조금을 준비하는 것도 알려졌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파괴하고 자국 반도체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미국의 행보를 기계적인 중국 반도체 굴기 압박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살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미국의 의도는 더욱 내밀한 곳에 집중됐고, 이러한 기조를 한국 기업들이 더욱 빠르게 감지해야 한다는 자성론도 나오는 중이다.

화웨이와 퀄컴의 친구, SMIC에 대한 압박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 상무부가 미국 기업들에게 중국 SMIC에 대한 수출 규제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공문을 보냈으며, 조만간 SMIC에 반도체 장비를 넘어 관련 소프트웨어까지 수출하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에 앞서 미 상무부는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 들어가며 자국의 반도체 기술 및 소프트웨어, 장비와 부품이 들어간 모든 것이 화웨이에 수출되지 않도록 한 바 있다. 화웨이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FT 및 외신에 따르면 SMIC에 대한 제재도 이와 비슷한 동기, 그리고 방식으로 보인다.

SMIC는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있는 파운드리 점유율을 가진 업체며, 현재 화웨이의 물량 20%를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퀄컴의 물량도 상당부분 책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 상무부가 SMIC에 대한 제재에 들어가며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화웨이 및 SMIC를 꼼꼼하게 견제하면서도 자국 반도체 생산 능력 확충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27일 미 연방의회가 자국 반도체 업계의 개발·생산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250억달러 상당의 보조금을 풀 것이라 보도했다. 15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구축해 이를 10년간 운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미국은 중국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미국의 화웨이 압박에 따른 SMIC 제재 가능성, 나아가 자국 기업에 대한 250억달러 상당의 보조금 지급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구석이 많다.

미국 정부의 의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화웨이 압박에 나설 당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국 정부의 전략으로 화웨이에 반입되던 메모리 반도체가 사실상 차단되고 팹리스 기업들의 시스템 반도체도 화웨이에 흘러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 반도체 시장 전반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다만 미국의 화웨이 압박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화웨이를 압박해 중국 반도체 굴기를 꺾겠다는 목표도 중요하지만 그 만큼 5G로 대표되는 차세대 이동통신 시장에서 화웨이의 영향력을 줄이는 목표도 중요하다. 즉, 미국 정부는 화웨이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완전히 차단해 화웨이의 절대적인 5G 이동통신 및 스마트폰 시장 경쟁력을 줄이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화웨이 압박 행간을 이해하려면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보다, 화웨이로 대표되는 중국의 차세대 이동통신시장에 대한 견제라는 측면에 더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화웨이는 5G 통신시장 1위 사업자이자,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3위의 거물이다.

미국의 화웨이 압박이 중국 반도체 굴기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은 메모리 반도체 자력 생산에 방점이 찍혔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화웨이에 팹리스의 시스템 반도체는 물론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가 화웨이에 흘러가지 못하게 만들 경우, 중국은 자국 메모리 반도체 자급정책에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당장 중국 정부는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따라 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계획을 예정대로 추진중이다. YMTC는 그 연장선에서 SSD 'Zhitai 실물까지 판매에 돌입했다.

장기적 관점으로 봤을때 미국의 화웨이 압박은 오히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자력갱생에 자극을 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 중앙정치국(中央政治局) 회의에서 "경제 자력갱생"을 기치로 내 건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자급율을 올리라는 점을 강조한 것처럼, 이미 중국은 미국의 자극에 반응해 움직이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의 화웨이 압박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타격을 주려는 것도 있지만, 그 보다는 화웨이의 차세대 이동통신시장에 대한 존재감을 깎는 쪽에 더 무게를 둔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력을 떨어트리는 전략을 가동해야 하지만, 아직 미국의 압박에 이러한 기조는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 두 번째 공장을 건설하는 TSMC와의 협력, 나아가 전체 소화 물량에서 화웨이와 관련해 무려 20%에 달하는 점유율을 가진 SMIC를 제재하는 것도 비슷한 연장선에 있다는 설명이다. 화웨이와 거래를 차단한 TSMC, 그리고 미국의 SMIC 제재는 중국 파운드리 점유율을 떨어트려 중국 반도체 굴기를 타격하기 위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한편, 화웨이의 제품 생산력을 크게 떨어트리는 작업으로도 풀이되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은 화웨이에 대합 압박으로 피해를 보는 미국 기업을 달래는 한편, 자국 팹리스와 새로운 친구인 TSMC와의 시너지 창출을 적극 노리기 위해 250억달러 상당의 보조금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화웨이 압박의 목표 중 하나인 중국 차세대 이동통신시장 점유율 견제를 넘어, 미국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칙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 의도를 세밀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미국이 코로나19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무너지며 큰 피해를 봤던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의 시스템 반도체 생산량을 키워나가는 쪽으로 정책 육성 방안을 정한 분위기다. 이 역시 메모리 반도체가 아니기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자급을 노리는 중국의 '굴기'에는 생각보다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무엇보다 미국은 환경문제로 인해 메모리 반도체 육성을 스스로 포기한 역사도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최근 보여지는 미국의 압박이 중국 반도체 굴기 압박도 염두에 두고 있으나, 그 보다는 중국 차세대 이동통신시장 존재감 압박과 자국의 시스템 반도체 물량 확보에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순간이다. 차세대 이동통신시장에서의 중국 경쟁력 차단은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클린 네트워크와도 관련이 있고, 자국 시스템 반도체 물량 확보는 TSMC와의 시너지에 힌트가 있다는 분석이다. 엔비디아의 암 인수도 미국 정부의 큰 그림이 될 수 있는 이유다.

한국은 대리전에 몰린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이 이어지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어떤 상황에 내몰릴까.

최근 미국 정부가 인텔 등 자국 기업에 화웨이와의 거래를 일부 승인하며 한국 기업들도 크게 고무된 일이 있었다. 상황에 따라 미국 기술 일부를 쓰는 한국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업들도 화웨이와의 거래가 일부 재개될 수 있다는 희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장미빛 전망보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더 우세하다.

일단 미국 정부는 중국의 화웨이 압박에 있어 일부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중국의 기세를 꺾겠다는 의지를 단 한 번도 버린 적 없다. 그런 이유로 이번 조치도 화웨이와의 거래를 차단해 손해를 보는 국내 사정 등을 고려한 임시방편이라는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자국 기업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인텔 및 AMD에 대한 화웨이와의 거래 라이선스를 허용한 상태에서, 미국 정부가 갑자기 한국 기업들에게 동일한 선의를 베풀 가능성은 더욱 낮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화웨이 압박이 중국 메모리 반도체 굴기 압박이 아니라 물량 옥죄기에 집중될 경우,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더욱 큰 고통을 당할 여지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250억달러 보조금 등으로 자국 팹리스 기업과 TSMC의 시너지에 더욱 집중한다면, 최근 IBM 및 엔비디아와 퀄컴의 물량을 일부 수주했던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확장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의 압박으로 중국 반도체 확보 물량이 줄어드는 한편, 이를 통해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완성품 물량이 떨어지는 점은 국내 세트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부품 업체도 중국의 제조 능력이 떨어지며 큰 타격을 받는 가운데, 중국의 중저가 제품을 제대로 수급받지 못하는 국내 세트 업계도 고민이 깊어지는 중이다.

정치적인 문제도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중국과의 경제동맹을 강화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으나, 이는 미국의 입장도 면밀히 살펴야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 연장선에서 절묘한 국제정치 협상력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