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computerized tomography) 즉, 컴퓨터 단층촬영 검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CT라는 진단 기법은 인류의 건강에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 몸 속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중요한 장기의 암과 질병뿐만 아니라, 뼈, 근육 및 관절 등의 골절이나 질환들을 진단하고 치료계획을 세우는데 필수적이다. MRI(자기공명영상)에게 일정 부분 챔피언의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CT의 위력은 대단하다. 앨런 맥클라우드 코맥과 갓프리 하운스필드는 인체에 적용되는 CT 개발의 업적을 인정받아 197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얼마 전 광대뼈수술과 돌출입수술을 하고 싶어서 여기 저기 알아보는 중인 환자가, 여러 가지 질문을 꼼꼼히 준비해서 필자를 재차 찾아왔다. 궁금한 게 많은 환자들은 과거에는 소위 기자수첩(스프링노트)을 꺼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에 질문을 메모해 온다. 그녀의 질문 중 핵심은 “다른 곳에서는 모두 CT 촬영이 필수적이라고 하는데, 원장님은 왜 CT를 안 찍고 수술하시나요?”였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왠지 헛헛한 웃음부터 났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어라, 그러네, 왜 난 CT를 안 찍고 수술하지?

근본적인 문제부터 따져보자. CT를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CT나 MRI와 같은 영상을 찍는 이유는, 첫째, 질병을 진단해내기 위해서이고, 둘째, 그 질병의 치료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다. 가령 폐암이 CT에서 발견되었다면, 폐암 제거 수술을 할 때 어느 부위까지 절제를 할 것이며, 주위의 흉막, 임파조직(림프절), 주위 장기에 어느 정도까지 퍼져있는지를 CT로 평가하여 암의 병기(stage)를 정하고, 수술 계획과 그 이후의 방사선치료 및 항암제 치료여부를 결정한다. 이처럼, CT는 질병을 진단하고 건강을 지키는데 중요하고 필수적인 검사다.

그런데 사실, CT를 찍을때 방사선 피폭의 양은 단순 엑스레이 촬영시의 수십에서 수백 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을 진단하거나 암수술을 할 환자에게 CT 촬영으로 얻는 진단과 치료의 이득은, 방사선 피폭의 유해성을 훨씬 상회하므로, CT 촬영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성형외과의 경우 나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필자는 지난 20년간,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 양악수술을 하면서 통상적으로 수술 전 CT를 찍지 않고 있다. CT를 안 찍어서 수술이 힘들거나 막힌 적은 없었다. CT를 찍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하고 후회가 된 적도 없다. 물론 재수술인 경우는 정상 해부학이 아니기 때문에 CT가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필자의 경우 CT 안 찍고도 수술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를 생애 처음으로 정리해보았다. 내게 질문을 던진 그 환자 덕이다.

첫째, 필자를 찾는 환자는 정상 해부학을 가지고 있다.

돌출입이나 윤곽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예외없이 모두 정상적인 해부학을 가지고 있다. CT를 찍으면 당연히 ‘깨끗’하다. 질병을 발견하기 위한 검사가 아니니 당연하다. 외계인이 아니라면 해부학적인 기본적인 틀이 완벽하게 동일하다. 크기나 위치가 다른 것은 CT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

만약 광대뼈나 사각턱, 돌출입수술 환자에게 루틴(routine)으로 CT나 3-D(three dimensional CT)을 찍고 그 결과를 본다면, ‘음, 역시 정상 해부학이고 깨끗하군’ 이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방사선 피폭의 유해성을 상회하는 정도의 유용한 정보일까? 적어도 내게는 영상의 대부분이 돌출입, 윤곽수술을 하는데 불필요한 TMI(too much information)이다.  수술에 꼭 필요한 정보들, 이를테면, 신경의 주행 경로, 치아뿌리의 위치, 뼈의 모양, 비대칭 여부 등은 사실상 단순 엑스레이, 시진(눈으로 보는 진찰), 혹은 여러각도의 사진촬영으로도 알 수 있다.

여담이지만 S대 의대 본과 1학년 1학기 때, 필자는 7학점짜리 해부학 과목에서 A플러스를 받았다. 우리 몸의 정상적인 해부학에 대해서는 훤히 알고 있을뿐더러, 얼굴뼈 수술을 할 때마다 크기나 돌출 정도는 다를지언정 기본적인 해부학은 동일한 환자들의 얼굴뼈를 쉬지 않고 다시 리뷰하고 있는 셈이다. CT를 찍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가끔씩만 얼굴뼈 수술을 하는 집도의의 불안을 줄여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아무래도 필자에게는 TMI다

둘째, 수술에 들어가면 다 보인다.

사람의 해부학이 일정하고 필자의 수술도 일정하다. CT로 미리 봤건 보지 않았건, 절개선을 따라 들어가서 수술 시야에서 보이는 뼈는 원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게 마련이다. 늘 같은 곳을 절제하고 들어가 거의 같은 곳을 절골한다. 개선시켜줄 얼굴 라인의 특성, 치아뿌리의 각도 등에 따라서 절골선의 각도나 위치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것을 CT로 미리 보고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CT에서 본 그 지점에 무슨 표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수술 시야에서 직접 보면서 절골선을 결정하고 디자인하는 것이다. 영상검사보다 실제 수술시야에서 보는 해부학이 더욱 생생하고 정확한 것은 물론이다.

셋째, 우리가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결국 뼈가 아니라 살이다.

성형수술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결국은 뼈의 모양이 아니라 그 위를 덮은 살의 윤곽선이다. 가령, 환자가 수술결과에 불만족하는데 ‘자 수술 후의 이 CT를 보세요. 뼈가 정말 잘 절골되고 예쁘게 고정되어 있잖아요?’ 따위의 변명은 쓸모없을 것이다.

CT상 얼굴뼈의 크기나 길이, 이를테면 광대뼈의 크기나 광대뼈 간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논문을 위해서 필요하거나 환자에게 수술 전 비대칭이 있다는 것을 설득하는데 유용할지는 모르나 실제 환자를 수술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안된다. 비대칭의 정도는 눈으로도 보인다. 도공이 아름다운 선을 가진 도자기를 만들 때, 그 곡선을 자로 재가면서 하지는 않는다. CT가 집도의에게 미적 감각을 불어넣어주지는 못한다.

넷째, 결국은 손이다.

수술 전에 CT로 해부학을 낱낱이 머릿속에 넣고, 실제로 수술부위를 열어서 CT에서 본 해부학적 구조를 잘 확인했다고 치자. 그러면 뭐하나? 손이 거칠거나 무디면 CT에서 봤든, 지금 보고 있든, 신경, 혈관과 같은 중요한 구조물을 다칠 수 있다. 지도를 펴놓든 네비게이션을 켜놓든, 운전 실력이 서툴다면 사고 내기 십상이다.

다섯째, CT를 찍어도 사실상 CT를 열심히 보는 것도 아니다.

모 학회에서 얼굴뼈수술, 즉 안면윤곽수술과 양악, 돌출입수술을 주로 하는 의사들이 모였다. 얼굴뼈 수술 좀 한다는 친한 후배에게 물었다.

-얼굴뼈 수술하는 환자한테 CT는 도대체 왜 찍는거야?

후배의 답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실 별 필요 없죠. 근데, 찍으면 환자들이 좋아해요.

자, 이쯤 되면, 필자도 CT 한 대 들여놔야할 것인가? 환자가 좋아한다면 의사도 행복한 일 아닌가?

필자가 지난 20년간 CT도 찍지 않고 헛수술을 해온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이제부터라도 환자들로 하여금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신뢰감을 높이는 CT 촬영 정도 못해줄 것 또한 없지 않은가?

그러나 필자는 여전히 수술 들어가면 훤히 보일 환자의 정상 해부학을, 미리 환자에게 방사선 피폭을 해가며 확인하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필자도 재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수술 전 CT를 찍는다. 정상 해부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 자신도 건강검진을 할 때 저선량 CT 검사로 폐암여부를 꼭 확인 받는다. 즉, CT 검사 자체는 노벨상이 말해주듯 훌륭한 영상 검사 기법이다. 다만, 얼굴뼈 수술을 하는데 있어서 수술 전 루틴으로 CT 검사를 해서 얻는 이득이 매우 큰 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물론 성형 수술 전 CT 검사를 하는 것이 병원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을 듯하다. 비용 면에서도 최소한 잃는 것이 없을 것이다. 성형수술을 원하는 환자에게 CT를 무료로 찍어주는 곳도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의 신뢰와 선택을 얻고 제대로 된 병원이라는 어필도 되니, CT 기계를 구입한 비용 이상으로 제 값을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라는 효심 깊은 며느리의 나레이션으로 끝나는 1991년도의 한 보일러 회사 TV광고는 아직도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도 패러디가 계속되고 있다.

필자도 병원에 CT 한 대 들여놓아야할 것인가?

앞으로 나를 찾아오는 환자 중에, 이 글을 읽고 꼭 CT를 찍은 후 수술하고 싶다는 환자가 세 명 이상 되면, 지체 없이 최신형 CT를 구입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