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이 책은 2002년 영국에서 처음 출판됐다. 한국에서는 부키가 2004년 번역 출간해 그간 7만5000부 팔렸다. 이번 책은 전면 개정판이다. 부키 박윤우 대표가 각 언론사에 보낸 A4 용지 6매 분량의 ‘편지’에 따르면, 첫 출간 때는 편집 소프트웨어의 한계로 본문의 보충 사항을 각주(脚註)로 달지 못했다. 장 교수의 저술은 일반 서적과 달리 주(註)의 분량이 많았다. 할 수 없이 책 뒷 부분에 따로 몰아 미주(尾註)로 처리하여 독자들이 해당 본문을 제때 이해하는 데 불편을 줬다. 이번에는 각각의 본문 밑으로 옮겨 실었다. 표지 디자인도 바꿨고, 오랜 세월 견딜 수 있도록 양장본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성실했으나 훌륭하다고 하기 어렵던” 번역을 바꾸었다.

이 책은 세계화 물결 속에서 개발도상국이 진정한 경제 발전을 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정책과 제도는 과연 어떤 것이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개도국이 자기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정책과 제도를 사용할 수 있으려면 신자유주의적 국제경제 질서는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하는 지를 모색한다. 이에 앞서 신자유주의의 내용과 전개과정을 살피고, 선진국들의 이중적 행태를 분석한다.

신자유주의는 자유 무역, 자본시장 개방을 비롯한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들과 지적 재산권의 강화, 노동권 및 환경권의 약화 등 ‘사유재산권’을 극대화하는 제도들에 기초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영미계 선진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1990년대 초반 동구 사회주의 몰락으로 더 확산되었고, 1995년 WTO 출범으로 제도적으로 공고화된 주류 담론이다.

이 책은 선진국들이 ‘경제 발전의 공식’이라고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제도가 개도국 경제 발전을 돕기는커녕 대부분 해로운 것이라고 맞선다. 무엇보다 선진국 스스로도 과거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경제 발전을 이뤄낸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선진국들은 지금 후진국들에게 자유무역을 채택하고 보조금을 철폐하라고 강요하지만 과거 자기들은 보호 관세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켰다. 후진국들에게는 지적재산권을 선진국 수준으로 보호하라고 압력을 행사하지만 자기들이 경제 발전을 도모하던 시기에는 다른 나라의 특허권과 상표권을 밥 먹듯이 침해했다.

장 교수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지금 개도국에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쓰라고 설교하는 것은 마치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이 남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Kiking away the Ladder)과 같다고 비판한다.

이와 함께 경제학적으로 통념 내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과감하게 매스를 들이댄다. 예를 들면, 재산권 보호가 경제 발전에 있어서 과연 대전제에 해당하는 것인지, 적극적 산업진흥책이 경제 발전에 진정 마이너스 요인인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실제로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 반문한다.

장하준 교수는 16년만에 나온 개정판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신자유주의가 영구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2000년대 초에 집필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뿌리채 흔들리는 상황이지만 국제 경제 질서의 개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의 주장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드는 데에도 대부분 유효한 것들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