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공정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입법 추진에 대한 정치권의 의지에 경제계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간 경제계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던 야당이 입법 추진을 찬성하는 등 의외의 행보를 보여줌에 따라 경제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그간 각 경제단체별 공식 의견으로만 제시됐던 경제계의 목소리는 이제 각 단체 리더들의 강한 목소리를 통해 정치권에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외면하는 듯한 분위기다.

지난 22일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는 국내 경제단체들을 대표해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재검토 요청 의견을 정리한 ‘주요 입법현안에 대한 의견 리포트’를 국회에 전달했다. 이 리포트에는 국내 대기업들에 대한 규제 강화의 성격이 강한 각종 법안들이 현업에 미칠 영향과 경제계가 제시하는 대안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21대 국회는 개원 후 3개월 동안 기업에 대한 부담법안은 총 284건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경제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공정경제 3법’으로 불리는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이다. 상법 개정의 주된 내용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이원 분리선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등이며 공정거래법 개정의 주된 내용은 불공정거래행위 피해자의 직접 금지청구제도 도입, 경성담합에 대한 전속고발제 폐지, 공정거래위반 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상한의 상향 등이다. 끝으로 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은 자산 5조원 이상의 비(非)지주 금융그룹을 감독대상으로 지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개정의 논의를 앞두고 관련 법안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경제 주체들의 의견을 수합했다. 이에 경제계는 개정안의 세부 내용들이 각 기업들에게 불리한 것을 지적하면서 개정안 적용이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들을 분석해 정치권에 수차례 전달했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은 경제계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고 개정안을 발의한 내용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은 22일 공정 3법에 대한 경제계의 합치된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재계를 대표해 박 회장은 재계를 대표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 공정3법에 대한 의견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게 전달하고 있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출처= 대한상공회의소

박 회장은 각 대표 모두에게 “정치권이 경제 문제에 대해 눈과 귀를 닫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정 3법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을 압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정치권이 경제계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불만의 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대해 이낙연 대표와 김종인 위원장은 “재계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법안의 세부 내용을 조율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경제계는 정치권이 주도하는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당장 막은 것에 대해 우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렇듯 강한 경제계의 메시지 전달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반응은 여전히 미지근하다. 여야 각 정당의 대표들은 법안의 통과에 대한 의지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은 박용만 회장에게 “공정 3법의 규제는 지난 정권에서 추진하고자 했던 법안의 개정보다 훨씬 강도가 약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23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의 손경식 회장을 포함한 국내 4개 경제단체의 리더들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해 간담회를 열고 현안 법안에 대한 경제계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전달했다. 이 간담회에는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 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수석부회장이 함께 참석했다.

간담회에서 손경식 회장은 박용만 회장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위기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지금은 각 기업들은 당면한 경영위기 극복에 전력투구해야 하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시기에 정치권이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안들을 다루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덧붙여 손 회장은 “국회가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의 논의를 보류하거나 혹은 위기 속에 있는 경제계의 입장을 우선 반영하고 근본적 경제제도 개선과 관련된 사안들은 경제가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화된 이후에 중장기적으로 다뤄 줄 것을 정치권에 간곡하게 요청한다”라고 의견을 전달했다.  

공정경제 3법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경제계는 극명한 의견차를 보이며 서로 대립하고 있다. 경제계 중에서도 일부 급진적 견해를 표방하는 이들에게서는 “정치권이 자신들의 정쟁에 경제계를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라면서 정치권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 정국 속에서 의견을 합치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정치권과 경제계의 관계가 묘하게 틀어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걱정은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