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월스트리트저널(WSJ) 및 중국 정취안바오 등 외신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인 인텔과 AMD에 화웨이와 거래를 재개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전격 발급했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압박이 호흡조절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자연스럽게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도 화웨이와 거래를 재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 미국이 잠시 숨을 고르는 것에 불과하며, 또 자국 기업의 활로를 찾아주기 위한 임시방편을 마련했을 뿐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사정없이 내려치더니?
미국 상무부는 지난 15일(현지시간)부터 중국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원천 차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자국 기업과 화웨이와의 거래를 차단하는 조치에 이어 제3국을 통한 반도체 조달까지 막아버린 강력한 압박정책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기술이 들어간 모든 반도체 장비 및 납품 계약을 막아버렸기 때문에 화웨이 입장에서는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미 확보한 재고는 내년 초 모두 소진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당장 글로벌 통신장비 및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대만의 TSMC마저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한 상태에서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완전히 막아버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미국의 기술을 사용하는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기업들도 당장 화웨이와의 거래가 차단됐다. 이들은 미 상무부에 즉각 화웨이와 거래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요청했으나 현 상황에서 뚜렷한 반응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반전이 나왔다. 미국 정부가 돌연 인텔 및 AMD에 화웨이와 거래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발급했기 때문이다.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인텔과 AMD는 미국 상무부로부터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 허가를 받았다.

인텔 측은 화웨이의 노트북 사업과 관련해 공급체인을 가동할 계획이라 밝혔으며 AMD는 자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수출 제한 리스트'에 있는 일부 회사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받을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왜 그럴까? 세 가지 이유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려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키우던 미국 정부가 돌연 일부 자국 기업에 화웨이와 거래를 허용한 이유에 시선이 집중된다.

먼저 중국의 반발이 거론된다.

중국은 틱톡 인수전에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끝내 빼앗기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의 반도체 압박도 앉아서 당할 생각이 없다. 당장 18일 중국 상무부는 미국 일부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 규정'이라는 블랙리스트에 올려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제재는 중국 국가, 기업, 개인의 합법적 이익을 해치는 외국기업과 개인의 대중 무역·투자활동을 제한·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만약 미국 기업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대중 무역활동이 금지되고 중국 내 투자 제한 또는 금지가 이뤄진다.

첫 타깃은 시스코와 애플이 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말도 나온다. WSJ는 21일(현지시간) 시스코가 오랫동안 거래하던 중국 국영통신사와의 관계가 차단됐으며, 이는 중국 매출 비중이 높은 시스코에 엄청난 타격이 될 수 있다 보도했다. 이 외에도 중국 정부는 애플과 퀄컴, 보잉 등 많은 미국 기업들에 대한 보복을 시사하며 군불을 피우는 중이다. 

다만 중국 정부도 해당 블랙리스트를 당장 가동할 생각이 없다. 자칫 미국 정부의 더 큰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내부에서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블랙리스트는 미 대선 즈음인 11월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반발에 따른 숨 고르기다. 결론적으로 중국이 크게 반발하면서도 '미국과의 직접적인 맞받아치기'를 조율하는 현재, 미국이 인텔 및 AMD와 화웨이의 거래를 허용한 것은 나름의 강온전략을 구사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으로는 미국 기업의 타격이다.

21일 세계무역기구(WTO) 국제무역센터(ITC)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전세계에서 수입한 반도체는 약 3059억9783만달러(약 355조원)에 이른다. 전년 3127억달러에 비하면 2.2% 소폭 감소했으나 여전히 막대한 반도체를 빨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 시장의 30%에 달하는 큰 손이다.

당연히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키울수록 미국 기업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브로드컴의 연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8.7%(20억달러)며, 인텔은 최소 15억달러의 데이터센터 칩을 매년 화웨이에 판매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화웨이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미국 반도체 시장의 화웨이 의존도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화웨이의 존재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화웨이는 매년 200억달러 이상의 반도체를 구매하며 이는 전체의 약 5%(4000억원)에 이른다. 당연히 미국 정부의 도치에 따른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 감소는 곧 미국을 포함한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컨설팅 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중국과의 무역 제한이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리더십을 어떻게 종식시키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5월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한 이후 미국의 25개 상위 반도체 회사는 매분기 각각에 4%에서 9% 사이의 평균 매출이 감소했으며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향후 3~5년내 8% 포인트의 시장점유율 하락과 16%의 매출 감소를 겪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반도체 산업 내 일자리 감소 규모는 최소 1만5000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 출처=BCG

미국 정부가 8월 17일(현지시간) 화웨이에 대한 제재 강화안을 발표한 가운데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입장문을 통해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국가 안보를 달성하려는 기존의 부분적인 제한 입장에서 갑자기 선회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당황스럽다"면서 "중국에 민감하지 않은 상용 반도체를 판매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반도체 연구와 혁신을 촉진하고, 이것이 미국의 경제력과 국가 안보에 핵심이라는 견해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고 우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 반도체 업계는 아예 자국 정부 설득을 위해 총공세에 나서기도 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최근 미국 상무부 고위관리자 3명이 주요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대정부 로비 업무를 맡는 것으로 확인됐다. 

패트릭 윌슨 전 상무부 비즈니스 연락 담당 이사가 미디어텍의 대관부서 부사장으로, 존 쿠니 국제무역국 부차관보는 스카이 워터 대관업무를, 리치 애쉬우 전 산업보안국 차관보가 반도체 공급 업체 램 리서치의 글로벌 대관업무 부문 부사장으로 이동했다. 미국 기업들 입장에서도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이 큰 타격이기 때문에 자국 정부를 향한 로비 총공세에 들어갔음을 의미하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전격적으로 인텔과 AMD에 화웨이와의 거래를 열어주며 자국 기업들의 불만을 달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선이 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이번 인텔 및 AMD에 대한 조치가 중국 반도체 굴기 압박의 현실적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미국의 중국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 미국 기업에 대한 피해로 돌아오는 한편,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현실적인 압박과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자국 중심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는 한편 TSMC의 미국 공장 건설 유치를 끌어내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화웨이에 대한 압박으로 대표되는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공격도 매섭게 벌어지는 한편 추가 제재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엔비디아는 영국의 암을 품었다.

다만 미국의 압박이 이어져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단기간에 꺾일 가능성이 낮다는 회의론이 팽배하다. 당장 중국 정부는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따라 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방침을 세웠고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27일(현지시간) WSJ은 중국이 34조원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은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중앙정치국(中央政治局) 회의에서 "경제 자력갱생"을 기치로 내 걸었다. 코로나19로 초유의 고립경제 가능성이 타진되는 가운데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를 기점으로 미국 등 서방과의 대립이 격렬해지자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에도 시선을 돌린 셈이다. YMTC는 그 연장선에서 SSD 'Zhitai 실물까지 판매에 돌입했다.

미국의 압박이 반도체 수급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며 오히려 자강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자 미국 정부가 인텔과 AMD에 화웨이와의 거래를 열어주는 '배려'를 통해 실익을 추구하려는 전략이 가동된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가 인텔 및 AMD에 화웨이와의 거래를 열어주자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화웨이 매출 비중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3.2%(7조3000억원), SK하이닉스가 11.4%(3조원)를 차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SK하이닉스의 최대 파트너는 화웨이다. 

최근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등은 화웨이와의 거래가 차단되자 울며 겨자먹기로 판로 다변화에 내몰리는 실정이다. 만약 다시 거래 라이선스가 발급된다면 국내 전자 기업들은 큰 고비를 넘기게 된다.

다만 장미빛 전망보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더 우세하다.

일단 미국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 압박에 있어 일부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중국의 기세를 꺾겠다는 의지를 단 한 번도 버린 적 없다. 그런 이유로 이번 조치도 국내 사정 등을 고려한 임시방편이라는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자국 기업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인텔 및 AMD에 대한 화웨이와의 거래 라이선스를 허용한 상태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들에게 동일한 선의를 베풀 가능성은 더욱 낮다는 분석이다.

지금의 정책변화는 큰 목표인 중국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기 위해 압박을 하던 중 자국 기업의 피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속도조절을 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화웨이 거래를 승인할 동기는 적다는 분석이다.

다만 한국 정부가 나서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의미있는 정치력을 발휘하거나 국내 기업들이 그 이상의 새로운 파트너십을 창출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GSL경영연구협회 박태현 부소장은 "미국의 이번 조치는 오로지 미국을 위한 유연한 전략일 뿐이며, 미국 정부가 만약 SMIC에 대한 제재까지 나선다면 미국의 큰 목표인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압박이 여전하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민관합동으로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