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1일 여야에 쓴소리를 해 눈길을 끕니다.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에서 입법을 논의 중인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우려하며 "국회가 경제에 눈과 귀를 닫았다"면서 "자기 정치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작심비판을 했습니다.

 

박 회장의 장탄식
박 회장이 우려하는 것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가 경제계와 충분한 의견조율도 없이 진행되는 지점입니다. 

현재 국회서 논의중인 다중대표 소송제도 도입을 비롯해 감사위원 분리 선임 및 대주주 3% 의결권 제한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 사익편취 규제대상 확대·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기업들에게 모두 민감한 사안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이슈를 두고 국회가 경제계와의 기본적인 논의도 하지 않으니, 평소 원만하고 합리적인 마인드로 여야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박 회장도 '이건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보입니다.

박 회장은 이어 "여야 가리지 않고 기업에 부담이 되는 법안을 추진해 기업들이 사면초가"라면서 "기업들은 매일 생사 절벽에서 발버둥치고 있는데 정치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장탄식을 내뱉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국내 IT 스타트업 업계도 비슷한 장탄식을 내뱉었습니다. 구글의 파괴적인 횡포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기업들은 매일 생사 절벽에서 발버둥치고 있는데 정치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절망만 잔뜩 피어납니다.

▲ 박용만 상의회장. 출처=대한상의

IT 스타트업의 장탄식
구글의 인앱결제 수수료 인상이 국내 IT 스타트업 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키는 가운데,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1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인앱 결제를 강제하려는 구글과 디지털 주권'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최근 구글은 게임에만 인앱 결제를 강제하던 기존 정책을 변경해 ‘디지털 컨텐츠 전체에 인앱 결제를 강제’하며 30%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구글의 움직임에 대해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적 시장 지배력 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애플은 이전부터 모든 앱에 대해 인앱 결제를 강제하고 있었는데, 구글의 이번 정책 변경 추진으로 함께 공론화되는 중입니다.

구글과 애플의 인앱 결제 수수료 30%는 PG사가 제공하는 외부 결제 방식(신용카드, 휴대폰 결제 등)이 주로 2~3%인 것에 비해 매우 비싼 편입니다. 게다가 앱 설치 뿐 아니라 앱 내 모든 결제 매출에 대해 30% 수수료를 부과합니다. 따라서 구글이 이 결제 정책을 강행할 경우 디지털 컨텐츠의 가격이 상승할 것이며, 그에 따르는 추가 부담은 대부분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애플, 구글의 수수료 정책과 관련한 분쟁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9년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업체인 스웨덴의 스포티파이는 EC(유럽집행위원회) 경쟁 당국에 애플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며 애플을 제소했으며 세계적 인기 게임인 포트나이트의 제작ㆍ유통사인 에픽게임즈는 지난 8월, 애플과 구글의 인앱 결제를 우회하는 결제 방식을 제공했고 애플과 구글은 약관 위반을 이유로 포트나이트를 앱스토어, 구글플레이에서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맞서 에픽게임즈 역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애플과 구글을 제소한 바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토론회는 그 적나라한 구글 약탈의 문제점을 집중 성토하는 자리로 마련됐습니다. 이태희 국민대학교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장(교수)는 국내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컴투스의 사례를 통해 구글의 약탈적 행위를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4대 모바일 게임사의 지난해 기준 매출 규모는 4조9230억원 규모"라면서 "앱 수수료로 구글과 애플에 지불한 수수료는 무려 1조4761억원에 달한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물론 구글플레이를 무료로 쓸 수 없지만, 수수료 과금이 너무 심각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교수는 "구글과 애플의 앱 수수료는 국내로 들어오지 않고 글로벌 사업자의 아일랜드 자회사로 간다"면서 "국내 모바일 게임산업 생태계 선순환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구조"라 지적했습니다.

정윤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구글 수수료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앱 마켓 유료 결제를 한 경험이 있는 국민 508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 결과 구글 및 애플의 수수료가 '매우 높다' 응답한 이는 30.3%, 34.4%가 '높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IT 스타트업 업계는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최재필 미시간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정위 개입이 필수"라 주장했고 정종채 법무법인 에스엔 변호사도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조사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성진 코스포 대표도 "규제 당국의 명확한 판단이 선행되고, 향후 공정위에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 출처=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정부가 나서라
국내 앱 시장에서 구글플레이는 무려 63.4%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구글은 국내의 자산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한편, 수수료 인상 등으로 파괴적인 압박을 서슴치않고 있습니다. 글로벌 사업자의 횡포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치권은 요지부동입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쓴소리가, IT 스타트업 업계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합니다. 정말 들리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외면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정치적 포석일까요?

이제 정부가 제자리를 찾아갈 시간입니다. 민간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직접 사업을 하며 기존 사업자를 압박하려는 괴랄한 마인드를 버리고, 경제계의 생각 따위는 무시하는 불통의 강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에 무엇이 절실히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 인지해야 할 순간이 왔습니다. 이번이 정말,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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