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등포역에서 롯데백화점으로 연결되는 입구. 이 입구로 들어서면 백화점 3층으로 이어진다. 사진= 편은지 기자

[이코노믹리뷰=편은지 기자] #. 21일 오후 12시 롯데백화점(023530) 영등포점 3층. 영등포역에서 백화점으로 연결되는 입구부터 짙은 향수 냄새가 풍긴다. 디올, 에스티로더, 샤넬 등 럭셔리 화장품 매장으로 가득찬 내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향이다. 통상 1층에는 화장품 매장이, 3층에는 여성복 매장이 줄지어 있는 여타 백화점 내부 구조와는 다른 모습이다.

화장품관으로 탈바꿈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3층은 기존 1층에 있던 화장품관보다 더 화려해졌다. 특히, 럭셔리 향수 제품이 매우 세분화됐다. 일례로 기존 백화점에 입점한 여타 샤넬 매장과 달리 매장을 넓게 빼고 별개로 한 곳에 '레조드 샤넬' 존을 마련됐다. '레조드 샤넬'은 샤넬 브랜드 안에서도 소수의 매장에서만 판매되는 고가 향수다. 

명품 브랜드 디올도 스테디 셀러인 '자도르' 제품을 특화한 존을 따로 만들었고, 디올 남자향수인 '소바쥬' 존을 특화했다. 최근 럭셔리 향수에 과감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 MZ세대 트렌드를 접목, 고가 향수 제품군에 신경을 쓴 분위기다. 

콧대높던 백화점이 과거의 틀을 과감히 깨고 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1층=명품 화장품관' 공식마저 버렸다. 이 점포는 지난 18일 1층 명품화장품관을 3층에 통째로 옮겼다. 기존 통상적으로 '백화점 1층'이 맡고 있던 얼굴 역할을 3층에 내어준 것이다. 

롯데백화점은 영등포점을 젊은 층이 많은 홍대나 상수 등에 자리잡은 편집숍과 같은 분위기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쇼핑이 목적이 아닌 '지나가다 구경해보고 싶은 매장'으로 탈바꿈 하는 게 핵심이다. 

3층으로 옮겨간 롯데백 영등포점 명품화장품 매장, 체험형으로 소비자 유혹하다 

변화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3층 내부에 자리한 화장품 테스트 존도 눈에 띈다. 통상 백화점 화장품관은 매장을 줄지어 나열해놓는데, 매장 하나가 족히 들어갈 만한 공간을 테스트 존으로 구성했다. 테스트 존은 약 1m 간격으로 10개 가량 거울들을 두 줄로 세웠다. 제품 테스트를 원하면 직원의 도움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된 것이다.

▲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3층이 화장품 매장으로 꾸며진 모습. 사진=편은지 기자

헤라, 설화수 등 아모레퍼시픽 매장들이 모여있는 '아모레 특화관'에는 한 방문객이 자신의 피부 상태와 어울리는 톤을 직원에게 상담받고 있었다. 고객 피부상태를 살펴보고 조언하는 직원의 모습은 백화점이 아닌 마치 화장품 체험공간(?)을 연상시킨다. 

A직원은 "테스트 해보고 싶은 제품을 자유롭게 발라볼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며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매장구성은 소비자들에게 친근감을 유도했다. 피부 상담을 마친 방문객 B씨는 "백화점이란 부담감이 적어져 화장품 테스트나 궁금한 상품이 있을 때 더 자주 올 것 같다"며 "로드샵이나 H&B에서 주로 테스트 했었는데, 백화점에서도 혼자 테스트를 하고싶을 때는 혼자 하고, 상담이 필요하면 꼼꼼하게 조언해준다"고 감탄했다.

화장품관이 없어진 1층은 어떻게 꾸며졌을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자 '리뉴얼 오픈 준비 중'이라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12월 오픈을 앞둔 1층에는 스니커즈 리셀(resell) 플랫폼인 '아웃오브 스탁'과 한정판 풋볼 레플리카 유니폼 전문점 '오버더피치', 신개념 감성편의점 '고잉메리'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MZ세대 사이에서 쇼핑 목적이 아닌 구경이 목적인 홍대, 상수의 편집샵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며 "이 트렌드에 맞춰 백화점 1층 공간을 넓게 비우고 전시를 목적한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라고 말했다. 

▲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1층이 리뉴얼 공사 중이다. 1층은 오는 12월 재오픈한다. 사진=편은지 기자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의 변화는 백화점의 얼굴로 여겨졌던 1층을 더이상 쇼핑 공간이 아닌 '체험형 공간'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영등포점의 경우 건물 특성상 제품 구매를 하는 고객이 1층이 아니라 역과 연결된 3층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1층은 길거리에서 백화점 내부를 보고 '구경하고 가자'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게 주된 전략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실제 지난 30년 간 1층을 백화점의 얼굴로 생각하고 매장을 운영했으나 구입동선은 3층 역사를 통해 들어오는 인원이 많았다"며 "이번 리뉴얼을 통해 3층을 메인 층으로 잡고 1층은 전시형 매장, 큐레이션 매장으로 꾸밀 예정이다. 쇼핑공간보다는 고객이 쉽게 체험하거나 체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백화점 업계 부는 변화... "변해야 살아남는다"

백화점업계의 이 같은 파격 변신은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신세계백화점(004170)은 영등포점을 36년만에 타임스퀘어점으로 재개장하고, 지하 1층에 있던 식품관을 백화점 얼굴인 1층으로 옮겼다. 특히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은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 불과 200m도 안되는 거리에 있다. 같은 서부상권이라 하더라도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이 1층을 편집샵으로 꾸미는 것과 전혀 다른 전략이다. 

주변 입지 차이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은 1층으로 입장하는 고객이 많고 신선식품류 매출 비중이 높은 점을 노렸다. 이에 1층 전체를 식품관으로 꾸며 신선식품 외에도 베이커리, 카페 등을 한 곳에 모았다. 

롯데백화점 주요 입구가 영등포역에서 이어지는 백화점 3층인 반면, 신세계는 1층이 주 출입구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백화점에 들어서면 펼쳐지던 화장품 냄새는 고소한 빵냄새와 맛있는 음식 냄새로 바뀌었고, 소비자들에게 '장보는 공간', '맛집'과 같은 이미지를 주고자 했다. 

반면, 롯데백화점은 체험형 매장으로의 전환이 포인트인 만큼 'MZ세대 놀이터'로 자리잡겠다는 전략이다. 구매자들의 출입이 3층으로 이뤄지는 만큼 기존 얼굴 역할을 하던 1층은 3층으로 옮기고, 3층을 얼굴로 내세운다. 동시에 1층은 길거리에 지나가는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구경하는 공간'으로 전환한다. 

체험형 매장의 경우 기존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아모레 체험형 매장에서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 실제 청량리점은 MZ세대 구매 빈도가 짧아지고 체험 후 구매하는 고객들 구매 단가가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각 사마다 전략엔 차이가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변화의 필요성을 공통으로 꼽는다. 또 코로나19로 언택트 쇼핑이 각광받는 만큼, 단순한 쇼핑을 넘어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백화점이 기존 틀을 깨지 않고서는 새로운 고객들을 끌어들이는데 한계가 있다”며 “오프라인에서 구경하고 구매는 온라인으로 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고, 이같은 소비 패턴을 잡으려면 백화점도 파격적인 변화를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