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국내 바이오기업 헬릭스미스(084990)가 또다시 대규모 유상증자로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진행된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의 3상 임상시험이 실패로 결론나자 주가 하락을 막고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향후 2년간 추가적인 유상증자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난 17일 헬릭스미스가 약 2817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히면서 1년 만에 깨지고 말았다.

1년 만에 또 대규모 유상증자

18일 헬릭스미스에 따르면 이번 유상증자는 시설자금과 운영자금, 채무상환 등을 위해 2817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이뤄진다.

1주당 신주배정주식수는 0.28주이며, 증자 전 발행주식 총수 대비 약 28%에 해당하는 75만주가 새로 발행된다. 발행가액은 3만8150원으로 오는 11월 30일에 확정된다. 신주배정 기준일은 10월 12일이며, 청약예정일은 오는 12월 3~4일이다.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인 김선영 대표는 이번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는 지난 2018년부터 유상증자뿐만 아니라 전환사채(CB)를 통해서도 대규모 자금을 마련해왔다. 2018년 9월 1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발행을 시작으로 2019년 8월 1496억원(유상증자), 올해 2월 800억원(전환사채), 9월 2817억원(유상증자) 등 시장에서 약 6113억원을 조달했다.

매년 반복되는 자금 조달에 대한 실망감은 주가에 그대로 나타났다. 이날 헬릭스미스는 전 거래일 대비 1만400원(19.92%) 폭락한 4만18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장 초반 20.59%까지 떨어지며 52주 신저가를 새로 썼다.

기본적으로 유상증자는 회사의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진행된다. 투자자들도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이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 및 신사업 확장 등으로 활용된다면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하지만 헬릭스미스의 경우 유상증자의 목적이 미래 가치보다 채무상환 등 급한 불을 끄는데 있어 보인다. 실제로 조달한 자금 중 700억원을 채무상환에 사용할 예정이다. 헬릭스미스의 올 상반기 차입금은 1343억원에 이른다.

게다가 이 회사는 내년까지 추가 유상증자는 없을 것이라는 주주들과의 약속까지 뒤엎어버렸다. 나한익 헬릭스미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해 9월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추가 유상증자 계획을 묻는 주주들의 질문에 "향후 2년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시 주주들을 안심시켰던 나 CFO는 헬릭스미스를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엔젠시스 임상 프로그램. 출처=헬릭스미스

'약물 혼용'에서 '아니다'…임상 실패 원인도 말 바꿔

이 회사의 말 바꾸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핵심 파이프라인인 ‘엔젠시스’의 임상 3상 실패 원인도 5개월 뒤에 말을 바꿨다.

앞서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엔젠시스’의 당뇨병성 신경병증 임상 3상 실패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한때 20만원대를 넘어섰던 주가가 순식간에 바닥을 치면서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겼다. 당시 헬릭스미스는 약물 혼용이라는 뜻밖의 변수로 ‘엔젠시스’의 임상 3상 결과 도출에 실패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5개월 뒤 임상 실패에 대한 후폭풍이 주춤해지자 기존 발표와 다른 입장을 내놨다. 헬릭스미스는 지난 2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과 한국에서 조사팀을 조직하고 임상 3상에서 발견됐던 약동학 분석에 대한 이상현상을 조사·완료했다”며 “그 결과, 환자 간 약물 혼용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임상시험의 흔한 실패 원인인 디자인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회사 측은 결론을 내렸다.

현재 헬릭스미스는 엔젠시스’의 주지표 세부기준을 바꿔 재임상에 나서고 있다. 이달 16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 3-3상 계획서를 제출하며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개발에 지속적으로 도전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불리할 때마다 말을 바꾸는 기업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 투자의 최대 가치는 신뢰"라면서 "개운치 않은 임상 결과 발표에 이어 무리한 유상증자까지 강행하는 헬릭스미스의 행보에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