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은 채무 불이행 위험과 코로나 대유행으로 더욱 취약해진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신흥 시장으로 다시 몰려오고 있다.      출처= Corporate Finance Institut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유럽과 미국의 채권 수익률이 무너지면서, 투자자들이 높은 채무 불이행 위험과 코로나 대유행으로 더욱 취약해진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흥 시장으로 다시 몰려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흥시장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EPFR글로벌(EPFR Global)의 자료에 따르면, 7월 초부터 10주 연속 신흥시장 채권펀드에 개인 및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이는 2017년 말 이후 가장 긴 기간이다. 특히 8월 말과 9월 초 3주 동안 80억 달러(9조 3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JP모건 체이스 채권 지수(JPMorgan Chase Bond Index)에 따르면, 투자등급 이하로 평가된 신흥시장 채권 수익률은 현재 약 7.6%로, 이는 지난 3월의 11.5%에 비해 크게 안정됐지만 코로나 이전보다 여전히 1%p 높은 수준이다. 반면 블룸버그 바클레이즈 지수(Bloomberg Barclays Index)에 따르면 미국의 투자등급 이하 회사채 수익률은 이미 5.5%를 기록하며 코로나바이러스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채권 가격이 상승하면 수익률은 하락한다.

퍼시픽투자운용(Pacific Investment Management)의 야코프 아르노폴린 신흥시장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신흥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선진국에 비해 아직 가격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에 경험했던 수익률 기근(yield starvation) 시대를 다시 맞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신흥국 경제가 성장할 때 더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해 신흥시장을 찾는 경우가 많지만, 침체기에는 급격한 손실을 볼 수 있다. 신흥시장 펀드는 이미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에 인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등의 원자재 가격 하락과 높은 채무 불이행 때문이다.

코로나가 대유행하면서 상당량의 자금이 신흥국을 빠져나갔지만, 미국과 유럽에 마땅히 매력적인 수익률을 내는 채권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다시 신흥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고 애널리스트와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은 설명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신흥국 경제에 더욱 타격을 주면서 디폴트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개인과 기관들은 지난 3월부터 6월말까지 신흥시장 채권 뮤추얼펀드와 ETF(상장지수펀드)에서 약 530억달러(60조원)를 인출했다.

신흥국에 대한 채무 재조정이 크게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은 선진국 시장의 고지금까지 제한되어 왔지만 투자자들은 수익률이 느렸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그들이 선진 시장에서 다른 종류의 부채를 사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고수익 정크 본드에 눈길을 돌리면서 신흥시장을 외면했다. 3월부터 6월까지 투자자들은 미국 정크 본드를 330억 달러(40조원) 어치나 사들였다.

그러나 7월부터 신흥시장 채권 펀드에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이후 약 15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신흥시장 채권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익률이 떨어졌지만 신흥시장 채권은 중앙은행들의 개입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선진국 채권의 랠리를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미중 무역긴장에서 미국의 대선까지 이어지는 위험 요인으로 선진국 채권의 랠리는 단기간에 끝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또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여전히 현지 통화로 발행되는 채권은 매입을 꺼리고 있는데, 그런 채권의 상당수가 외환시장의 변동성으로 인해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씨티그룹(Citi Group)의 에릭 올롬 전략가는 투자자들이 신흥시장 채권 매수세가 지속함에 따라 전체 신흥시장 채권 수익률은 연말까지 0.30%포인트 더 하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롬 전략가는 "개발도상국 가운데 투자등급의 신용등급을 가진 나라와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에서는 이미 상당한 손실액이 발생했지만 투자등급 이하의 고수익 채권 발행자들은 여전히 좋은 먹이감"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금융정보회사 마켓액세스(MarketAxess)의 데이터에 따르면, 멕시코의 석유회사 페트로레오스 멕시칸소스의 6.48%의 금리로 발행한 2030년 만기 채권은 이번 주에 7.5%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2월 중순의 약 5.5%에 비해 크게 올랐다.

"위기가 닥쳤을 때 투자자들은 '이제 신흥시장 요리는 질렸으니 집 밥을 먹고 싶다’(신흥 시장 투자에 흥미가 떨어지고 국내 투자에 눈을 돌린다는 의미)고 말하더니, 이제 다시 ‘집 밥이 질려 다시 신흥시장 요리를 먹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