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2012년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추적자>는 권력자들의 추악한 면모와 기업인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절묘하게 그려진 걸작이다. 특히 주옥같은 명대사가 인기를 끈 가운데 극 중 유력 대선 주자로 나오는 강동윤(김상중 분)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힘없는 서민을 짖밟으며 이런 말을 남긴다. "큰 마차가 먼 길을 가다 보면 깔려 죽는 벌레도 있기 마련이다"

8년이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세계는 물론 한국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이는 현재. 먼 길을 가는 거대하고 화려한 마차의 바퀴에 치인 동학개미들의 비명이 끔찍하게 울리고 있다면, 과연 착각일까.

▲ 2012년 드라마 추적자 스틸컷. 출처=갈무리

그들은 왜 분노하나
LG화학이 17일 이사회를 열어 회사 분할안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전문 사업 분야 집중, 즉 배터리 사업을 전담하는 신설 법인을 출범해 기업 가치 및 주주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설명이다. 다음 달 30일 개최되는 임시 주주 총회에서 승인이 떨어진다면, 오는 12월 1일부터 'LG에너지솔루션(가칭)'이 공식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기업공개 과정이 진행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LG화학의 전지사업 분사를 예상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실제 액션플랜이 나오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나아가 시장에서는 LG화학의 전지사업이 분할된다면 진정한 기업가치 제고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감지된다. 

그러나 삼성전자에 이어 LG화학에 주목했던 동학개미, 즉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당장 분사소식이 전해진 후 유가증권시장에서 17일 LG화학은 전날보다 6.11% 떨어진 64만5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또 다른 배터리 3강 중 하나인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전반적인 코스피 하락세의 '기계적 영향'을 받아 전날 대비 각각 -0.89%, -0.32% 내려간 것을 고려하면 편차가 크다.

일반적으로 주가 흐름이 비슷한 배터리 3사의 분위기가 갈린 것은, LG화학 분사안에 반발한 소액주주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퀴를 피해 대거 이탈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소액주주들은 왜 LG화학에서 대거 이탈했을까. LG화학이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을 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일반적으로 인적분할은 분할된 사업부문의 소유권이 기존 주주들에게도 보장되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기업이 분할해도 분할법인에 대한 권리가 기존 주주들에게 있기 때문에 진행 과정에서 심각한 잡음이 벌어지지 않는다. 

물적분할은 상황이 다르다. 기업은 사업부문을 분할한 후 분할법인의 지분을 100% 가져가지만, 소액주주들의 권리는 제한되어 사실상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액주주들의 입장에서 투자한 회사가 인적분할을 할 경우 주식을 팔 수도 있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물적분할이 되면 소액주주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심지어 분할된 회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 등의 과정을 통해 지분을 섞는 일이 벌어지고, 또는 기업공개에 들어가는 순간 모회사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더 큰 문제는 LG화학이 분할하는 전지사업이 말 그대로 LG화학의 알짜배기라는 점이다. 기존 소액주주들 입장에서는 배터리, 즉 전지사업의 미래를 보고 LG화학에 투자했으나 LG화학은 소액주주들의 기대를 받고있는 전지사업을 뚝 떼어내 그들의 권리와 무관한 영역으로 '날려버린' 형국이다. 

추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비약적으로 팽창할 가운데 다른 투자자들의 자금은 물적분할된 기업에 몰릴 것이 '명약관화'며, 기존 LG화학 소액주주들은 물적분할된 회사의 승승장구를 지켜보기만 하며 오히려 알맹이가 떨어져 나간 LG화학의 껍데기만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고민에 빠져 있다. BTS를 보고 빅히트에 투자했는데 BTS가 돌연 YG엔터로 옮겨간 것과 비슷하다.

업계에서도 LG화학의 물적분할을 두고 이견이 엇갈린다. 전지사업의 비전을 높이 평가하던 소액주주들이 뒷통수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LG화학이 상황에 맞는 선택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LG화학은 전지사업의 미래가 열리는 상황에서 퀀텀점프를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승부수를 던져야 하나 코로나19 등으로 내부의 자금을 투자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결국 상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벌어져야 하기에 분할된 회사의 주도권을 온전히 가져갈 수 있는 물적분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말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LG화학의 내부에 속해있기 때문에 오히려 저평가된 전지사업부의 기업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 신학철 부회장. 출처=LG화학

소액주주는 애초 고려대상이 아니었나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논란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LG화학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최강자로 향하는 거대한 길을 질주하는 큰 마차다.

오래전부터 준비한 사업이다. 실제로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1995년 리튬이온전지 개발을 시작으로 1997년 파일럿 생산라인 완공 및 시제품 생산으로 기지개를 켰다. 1998년 국내최초 리튬이온전지 상업화 및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했고 1999년에는 한 달에 100만셀 리튬이온전지를 생산할 수 있는 청주공장이 건설됐다. 2004년에는 청주공장에 LEV(Light Electric Vehicle)용 전지를 최초로 생산했고 2007년 세계 최초 삼성분계 NCM 배터리 양산에 성공한 바 있다. 

2015년에는 중국 남경 전기차 배터리 1공장을 준공했고 2018년 폴란드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준공했다. 이어 2019년 미국 제너럴모터스와 전기차배터리 JV 설립에 나섰으며 2019년 중국 남경의 전기차 배터리 2공장을 준공했다. 나아가 테슬라와의 연대를 강화하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로 자리매김했다.

LG화학의 주요 고객사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 유럽의 폭스바겐, 르노, 볼보, 아우디, 다임러, 메르세데스벤츠, 재규어, 포르쉐 등이다. 그 연장선에서 LG화학은 2017년말 기준 전기차 배터리 수주잔고 42조원, 2018년 상반기말 기준 60조원, 2018년말 기준 78조원, 2019년 1분기말 기준 110조원을 돌파했으며 최근 수주잔고(2019년말 기준)는 150조원 수준에 달할 정도로 몸집을 불린 바 있다.

여세를 몰아 2020년말까지 4각 생산체제의 총 배터리 생산 능력을 100GWh 이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는 1회 충전시 380km를 주행할 수 있는 고성능 순수 전기차를 165만대나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또한 2023년까지는 200GWh 이상으로 확장할 예정으로 고성능 순수 전기차를 330만대나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그 연장선에서 물적분할을 통해 세계최고 에너지 솔루션 기업의 비전을 선명하게 내보이고 있다. 당장 LG화학은 이번 물적분할을 통해 대규모 투자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고, 사업부문별 독립적인 재무구조 체제를 확립해 재무 부담을 완화할 기회를 잡았다. 나아가 배터리 사업을 비롯해 각 사업분야의 적정한 사업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행보로 볼 수 있지만, 그 아름다운 행보에 과연 소액주주들의 '지분'이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심지어 '최소한의 고려라도 있었는가'라는 회의감도 나온다.

실제로 LG화학은 올해 초부터 전지사업 분사설이 끊임없이 나왔고, 이 과정에서 물적분할 가능성에 동학개미들은 벌벌 떨어야 했다. 지난 실적설명회에서 분할계획이 있다고 밝혔으나 그 이상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LG화학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기습적인 물적분할을 택하며 동학개미들의 비명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만들었다. 최소한 이사회 결정 전 분할계획을 구체화시켰다면 나름의 명분이라도 확보할 수 있으나 LG화학은 '깜깜이' 전략만 남발하고 있다.

가뜩이나 주주친화적 행보에 미온적인 국내 기업 정서상 동학개미들은 또 당하고, 울고있다는 말이 나온다. 전지사업에 대한 비전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소액주주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일각에서 10월 30일 개최되는 임시주주총회의 이변을 주관적인 측면에서 '소원'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다. 대주주들이야 물적분할을 관철시킬 가능성이 높지만 만약 국민연금 및 기타 소액주주들의 집단행동이 벌어질 경우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현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낮지만, 업계에서는 "오죽하면 이런 소원이 회자되겠느냐"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