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LA의 윌셔 그랜드 센터. 출처=대한항공.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대한항공(003490)이 미국 LA 월셔 그랜드 센터를 운영하는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HIC)에 1조1000여억원을 긴급 수혈하기로 했다. 매해 적자를 기록하며 밑 빠진 독이란 평가를 받던 호텔사업을 정리하지 않고 살리기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시장에서는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지만 한진그룹이 호텔 사업의 활로를 찾지 못할 경우 결국에는 대한항공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 보고 있다. 

대한항공, 한진인터내셔널에 1조원 긴급 수혈

대한항공은 16일 오후 서울시 중구 소재 서소문 사옥에서 이사회를 열고, 자회사인 한진인터내셔널에 대한 9억5000만달러(한화 약 1조1000억원) 상당의 자금 대여안을 심의·의결했다고 17일 밝혔다.

한진인터내셔널은 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된 회사로,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지난 1989년 미국 현지 법인인 한진인터내셔널을 통해 LA 랜드마크인 윌셔 그랜드 호텔을 인수, 재건축해 2017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회사는 9억달러는 한진인터내셔널의 차입금 상환에, 5000만달러는 호텔산업 경색에 따른 운영자금 충당에 활용할 예정이다. 

금번 결정은 한진인터내셔널의 차입금 만기도래에 따른 것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진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은 이달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받은 3600여억원과 다음달 모건스탠리 등 해외 금융기관에서 받은 7100억원 등 약 1조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호텔과 오피스 수요가 직격타를 맞으면서 재융자가 지연됐다. 이에 모회사인 대한항공이 우선적으로 일시적인 금전 대여를 제공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이 이달 말 수출입은행으로부터 3억달러 대출을 받아 한진인터내셔널에 대출하는 식이다. 

또한 미국 현지 투자자와 한진인터내셔널 지분의 일부 매각과 연계해 브릿지론(단기차입 등에 의해 필요자금을 일시적으로 조달하는 대출)을 협의 중이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한진인터내셔널 지분의 일부 매각도 논의 중이다. 이를 통해 다음 달 중으로 3억달러를 상환받을 예정이다. 나머지 3억달러는 내년 호텔·부동산 시장 위축 해소 및 금융시장이 안정화 되는 시점에 한진인터내셔널이 담보대출을 받아 돌려받을 계획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한진인터내셔널에 제공하는 대여금은 1년 이내에 대부분 회수된다”며 “대한항공은 대출금을 전달하는 구조로써 사실상 대한항공의 유동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이번 결정을 두고 윌셔 그랜드 센터의 상징적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고(故) 조양호 회장의 숙원 사업이었다는 점에서다. 

한진그룹은 2009년 4월 LA 윌셔 그랜드 호텔을 최첨단 호텔·오피스 건물로 변모시키는 윌셔 그랜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후 8년 간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와 지급보증 등을 통해 총 10억달러 이상을 투입, LA의 랜드마크로 재탄생시켰다. 당시 과다 투자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사내외 목소리를 물리치고 전면 개발에 나서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 최근 대한항공 호텔사업 영업이익 추이.출처=이코노믹리뷰 이가영 기자

호텔사업, 대한항공 재무 개선 작업 발목 잡나

대한항공이 윌셔 그랜드 센터를 지키기로 함에 따라 그룹차원에서 호텔사업을 정리하지 않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셈이 됐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은 올 2월 이사회를 통해 재무 구조와 지배 구조 개선을 토대로 호텔·레저 사업 구조 개편, 저수익 자산 및 비주력 사업 매각 및 그룹 핵심 사업 역량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발표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올해 초 한진칼 자회사 칼호텔네트워크가 소유한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부지 매각을 시작으로 호텔·레저 사업에 칼을 들이댔다. 그랜드 하얏트 인천과 제주칼호텔은 물론 윌셔 그랜드 센터의 등 매각 가능성도 흘러나왔다. 

코로나19에 따른 유동성 마련 차원인 동시에 3자 주주연합으로 돌아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흔적 지우기 차원이었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땅콩회항으로 경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그룹의 호텔을 총괄하는 칼호텔네트워크와 왕산레저개발에서 모두 대표이사직을 맡아왔다. 

긴급 수혈로 한진인터내셔날은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업황이 언제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한진인터내셔널로 인해 대한항공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간 호텔사업은 대한항공의 골칫덩이로 평가받아왔다. 한진인터내셔널은 자산규모가 1조원을 웃도는 등 큰 규모를 자랑하지만 투자 대비 수익성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재무구조를 악화의 주범으로 꼽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올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4조432억원, 영업이익 91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3.4% 줄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6.4% 증가하며 흑자를 달성했다. 

화물 운송에 집중한 경영 전략과 직원들의 유급휴직 등 뼈를 깎는 자구노력의 결과였다. 하지만 호텔사업부문의 대규모 적자가 반영되면서 영업이익 개선 폭을 제한했다. 실제 대한항공의 호텔사업부문은 올 상반기 40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대한항공의 호텔사업부는 수년째 적자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2016년 6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호텔 사업부는 2017년 501억원, 2018년 566억원, 2019년 562억원으로 적자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올해 적자폭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대한항공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대한항공 8월 말 기준 2조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7월 유상증자로 1조1300억원을 마련했고, 8월 한앤컴퍼니에 기내면세품·기내식 사업 매각을 실시하면서 9900억원의 추가 실탄도 확보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2분기 실적을 견인한 항공 화물 또한 한치 앞날을 알 수 없다. 과거처럼 항공운송사업 실적이 호텔사업 부진을 감싸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송현동 부지 매각은 서울시와의 입장차를 줄이지 못해 지지부진한 상태다. 

상황이 이쯤 되면서 한진인터내셔널이 대한항공의 재무 개선 작업 완료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은 ‘BBB+’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업황이 악화되면서 나이스신용평가는 ‘부정적’ 전망을 부여하고 있으며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부정적 검토 대상’을 유지하고 있다. 신용도가 하락하면 추가 이자비용이 발생한다. 

앞서 지난해 초 사모펀드 KCGI도 “대한항공은 신용등급이 A0에서 BBB+로 하락하면서 2017년 하반기부터 연간 이자비용으로 1200억원을 추가로 지불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이코노믹리뷰>와의 통화에서 “대한항공이 현재로써는 충분한 현금성 자산을 갖추고 있고 정부에서 풀서비스캐리어(FSC)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신용도 하락에 충분히 대응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차환 및 지분 매매 협의 결과와 현금 유입 여부 등에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