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가 올해 플래그십 모델로 내세우는 만큼 그 어느 차량보다 ‘K9’ 시승에 기대가 컸다. 숱한 티저마케팅과 지난 2일 대대적인 제품발표회 등으로 세몰이에는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전략 차량이기도 하다.
대형 세단을 표방함에도 외관, 특히 뒷모습과 옆 라인은 생각보다 커보이지 않았다. 유려한 곡선이 깊게 반영됐기 때문으로. 실제 차량 앞·뒤좌석을 포함해 전체 실내 공간은 생각 외로 넓었다. K9의 전체길이(전장)가 5090mm인데다, 초대형 휠베이스(앞·뒷바퀴 간 길이) 3045mm로 뒷좌석까지 배려한 여유로운 실내공간이 돋보였다.

‘사장님’의 위상을 배려한 듯 뒷좌석은 공간감뿐 아니라, 다양한 편의시설로도 눈길을 끌었다. 듀얼 모니터를 통해 대시보드 디스플레이와 동일한 멀티미디어를 즐길 수 있으며, 뒷좌석 자체 조작도 가능하다. 중간에 다양하게 놓인 다기능 버튼들도 다채로운 기능을 뽐냈다.

양양에서 옥계까지 왕복 90분 거리를 시험 주행했다. 과속 방지턱을 넘어설 때 미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넘었을 때도 충격을 바로 잡아주는 드라이빙감(感)이 만족스러웠다. 차선 침범 등의 경우, 위반 위치대로 왼쪽 혹은 오른쪽에서 떨림이 전달되는 운전석 진동시트는 운전 내내 제법 ‘감각적’이었다.

무엇보다 강점은 K9의 정숙성이다. 일부 고속주행 시 노면소음이 차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속도를 최고로 높여도 음악을 듣거나 대화하는 데 방해는 없었다. 실내소음이나 스티어링 휠(핸들) 진동, 가속엔진 소음, 앞·뒷좌석의 로드노이즈, 앞좌석의 바람소리 모두 측정결과 1순위로, 경쟁사를 앞선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고속으로 달릴 때 착 가라앉는 느낌과 제법 묵직한 스티어링 휠의 변화, 단단한 서스펜션은 차체 떨림을 최소화했다. “잘 세팅된 느낌”이라는 게 동행자의 평가다. 급가속과 급제동 또한 원활했다. 정지상태에서 100km까지 이르는 데(제로백) 불과 5, 6초면 충분했다. 고속에서 최고속으로 높이는 것 역시 탄력적이었다.

왠만큼 속도를 내도 3000~4000rpm에서 잡아줘 힘을 비축했다. 브레이크는 내가 원하는 지점에서, 부드럽게 차의 속도를 떨어뜨려줬으며, 코너를 돌 때에도 차체 바닥에 붙는 느낌으로 몸의 쏠림을 최소화했다. 스티어링 휠에 적용한 햅틱 리모컨도 K9의 자랑거리. 12.3인치 대화면 풀칼라 TFT-LCD 클러스터 화면과 연동, 운전자 손끝으로 다양한 기능을 설정토록 해 차별화된 조작감을 제공한다. 편리하지만 익숙해질 필요성이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HUD(Head Up Display)다. 낮에도 선명한 운전석 앞 유리창의 다양한 정보 제공(속도, 남은 거리, 옆차 접근 등)이 제법 편하다는 건 경험 후 더 또렷해졌다. 경쟁사 기능 대비 색감을 더했다. 왕복 평균 연비는 6.8~7.3km/ℓ였다. 회사측이 밝힌 연비는 3.8ℓ모델의 경우, 10.3km/ℓ로 경쟁 BMW 7시리즈와 벤츠 S클래스의 8.5km/ℓ, 9.1km/ℓ보다 높다. 후륜구동 V6 GDI엔진과 8단 AT의 최적 튜닝으로 우수한 연비 및 탁월한 변속감을 구현한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출력 역시 334ps(마력)으로, 7시리즈와 S클래스의 326ps, 306ps보다 높다.

짧은 시운전이었지만, 전체적으로 ‘공들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계급장(브랜드) 떼면 자신 있다’는 기아차 자신감이 공연한 게 아닌 듯 싶을 정도. 가격 대비 성능을 원하는 실속파들을 어떻게 공략할지는 이제 대형세단 분야 ‘아이덴티티’를 확립해야 하는 기아차의 몫이다.

몇 가지, 안전벨트를 안 매도 경고음 없다는 점, 아이폰 USB 연결 시 내장 음악·팟캐스트가 바로 재생된다는 것, 그리고 앞쪽 9.2인치 디스플레이가 터치가 아니라는 점은 소소한 아쉬움이다.

7시리즈·S클래스 동급에도 값은 절반

기아자동차는 지난 9일 강원도 양양 쏠비치에서 가진 ‘K9 시승 미디어데이’에서 지난 2일 ‘K9’ 발표회에 이어 재차 주 경쟁 대상으로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를 꼽고, 경쟁력을 자신했다. 이날 이 회사 고민호 부장(국내상품팀)은 K9의 성능 및 특장점 등과 관련, 경쟁 BMW ‘7시리즈’와 벤츠 ‘S클래스’와의 직접적인 비교에 주력했다. 상품성과 정숙성, 신개념 텔레매틱스 서비스인 ‘유보(UVO)’ 등 하이테크 신기술, 국내 최초 어댑티브 풀 LED 헤드램프, HUD, 주행모드 통합제어 시스템, 차량 통합제어 시스템(AVSM), 전자식 변속레버,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시스템, DIA 내비게이션, 스티어링휠 햅틱 리모컨 등 각 항목별 직접적인 비교우위를 강조했다.

회사측은 K9 풀옵션 가격이 8640만원으로, 경쟁사의 반값 내지 1/3 가격에 제공된다고 설명했다. 이 정도면 브랜드 때문에 수입차를 사겠다는 절대 수요가 아니라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이와 관련, 이날 기아차는 특히 ‘K9’이 수입차 공략을 표방하며 등장한 최초의 국내 차량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서춘관 국내마케팅실장(상무)는 “K9의 성능은 7시리즈나 S클래스에 견줘 개발됐지만, 가격은 BMW 5시리즈나 벤츠 E클래스에 맞춰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며 “수입차 대응전략을 지속적으로 구사하겠다”고 말했다.

K9 자체 상품 경쟁력에 안심하지 않고 더 많은 판매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게 회사측 판단이다. 서 상무가 앞세운 것은 세가지. 먼저 K9의 첨단 이미지를 각인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실행중이며, 기존 국내차와 달리 수입차와 정면 대응키 위해 태어난 차라는 것을 집중 홍보하고, 주 타깃인 CEO 대상 마케팅을 적극 펼쳐나간다는 방침이다.

서 상무는 “고객 서비스만큼은 수입차가 못 따라올 정도로 편의성을 제공할 방침”이라며 “아울러 광고 등을 강화, 브랜드를 더 높이 사는 소비자 인식 변화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월 2000대 판매’ 목표 달성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서 상무는 “경쟁 수입차량 한달 판매량 1000여대 중 반만 가져와도 500대이고, K7이나 기타 중대형 차 고객들까지 흡수하면 월 2000대는 충분히 판매 가능하다”며 “매일 계약대수를 집계하는데 지금 추세면 2000대를 훨씬 넘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편리한 최첨단 IT시스템 ‘서프라이즈’

첨단 기술의 집합체라고 내세우는 만큼, K9은 IT업체와의 협업사례도 많다. ‘유보(UVO)’를 SK텔레콤과 함께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보’는 신형 싼타페에 탑재된 ‘블루링크’와 유사한 기능이다. 또한 인텔과 협력해 아톰 프로세서 기반의 ‘IVI(In-Vehicle Infotainment: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제공한다. 대시보드의 터치스크린은 ‘DIS(운전자 정보시스템) 내비게이션’, ‘유보’와 연동돼 운전자가 인터넷 접속은 물론 음성 인식, 스마트폰 원격 시동, 도난 추적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뒷좌석 디스플레이에서는 MPEG1/2/4, WMV9, Divx4/5/6, Xvid, H264 등 다양한 비디오 포맷과 3D 그래픽 퍼포먼스, 블루투스 등을 지원한다. 삼성전자와는 ‘갤럭시탭 10.1 와이파이’ 기반의 K9 솔루션을 내놓았다. 이는 기아차 홍보영상, 퀵가이드, 취급설명서, 다양한 위젯 등을 통해 K9의 최첨단 기술을 쉽게 느낄 수 있게 한다.

박영주 기자 yjpa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