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우주성 기자] 임대차 3법으로 전세 매물이 감소하고 있지만, 이것이 곧 전세 소멸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다만 장기적으로 결국 전세는 한국 주거유형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관점은 계속해서 존재한다. 전세가 향후 얼마나, 또 어떤 형태로 존속하건 전세 감소와 월세 증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전세 감소 대세론’, 전세 결국 멸종하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점유 형태별 가구 수를 집계한 1975년 이후, 전세의 비중은 증감을 반복했다. 197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전세의 비중은 17.3%, 월세는 15.5%인데 반해 고성장과 높은 금리로 1995년에는 전체 주택 유형에서 전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29.7%까지 상승했다. 이후 저금리 기조와 임대시장 구조 변화로 2006년에는 그 비중이 22.4%까지 줄었고 지난해에는 15.1%까지 쪼그라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월세와 기타 점유 형태는 5%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즉 전세는 현재 시점에서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나리오 1… 전세, 사금융으로 살아남을 것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를 비롯한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세가 소멸하고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진단하고 있다. 다만 이는 주택가격 안정이 지속될 때를 전제하고 있어 만약 주택시장이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전세 역시 계속해서 사금융 기능을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는 소유 주택의 점유권 대신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을 얻어 사용한다는 점에서 사금융에서의 자금 융통과 흡사한 면을 갖는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임대인의 경우 전세제도를 활용해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도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했다. 또 꾸준한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함영진 빅데이터 랩장은 “현재와 같은 대출 규제상황에서 결국 전세라는 일종의 사금융제도를 통해 주택을 매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그는 “거주의 안정성 측면과 부동산의 미래가치라는 투자자들의 시각을 감안하면, 전세시장은 축소되더라도 소멸되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내다 봤다.

단 제도권 금융과 장기 모기지 등의 발달로 전세의 사금융 기능은 점차 축소될 전망이다. KDI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 1993년 발행한 ‘전세의 경제적 효과와 개선방안’에 따르면 전세의 사금융 기능으로 인해 금융기관에 유입해야 할 재원이 임대인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금융 환경의 변화로 이런 부작용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사금융으로서 전세 비중이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나리오 2… 준전세, 전세, 보증부 월세로 다원화 재편

현재 부동산 매매 형태로 볼 때 전세가 준전세 등보다 유연한 형태로 존속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부동산 매매시장에서 전세 보증금을 낀 매매는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매수 거래 중 52.4%는 전세금을 끼고 매매한 ‘갭 투자’로 확인됐다. 특히 강남4구의 경우 전체 매매 중 72.7%가 갭 투자였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전세를 줄이고 싶어도 막대한 전세 보증금이 낀 경우가 대다수인 만큼 곧바로 월세나 준월세로 돌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경우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반전세 내지 준전세다. 막대한 전세 보증금은 차츰 줄이되, 월세로의 경착륙이 가능한 형태인 것이다.

실제 강남 등 일대의 경우 전세 보증금이 작은 소형 평수가 먼저 월세로 전환되는 모습이 목격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함영진 랩장은 “강남 등 일부에서 소형면적 중심으로 월세전환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임대인 입장에서는 보증금 반환의 부담이 적고, 임차인도 월세부담이 적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으로 보인다”면서 “소형면적이 자리잡고 나면 중형면적으로 그 현상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환 부연구위원은 “갭 투자의 특성을 고려하면 임대인이 거액의 보증금을 일시에 반환하기 어렵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월세 전환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라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향후 자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가 둔화돼 갭 투자에 대한 이익 실현을 자산가치의 상승보다 월세 수익에서 찾게 되기 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속 입법으로 월세 전환 늦추고, 바우처·공공임대 확충해야”

당분간 전세가 줄고 월세와 준월세가 증가할 것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긍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후다. 전문가들은 장·단기적으로 이런 변화를 늦추거나 변화에 대한 준비와 대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김진유 교수는 임대차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우선 보유세 등 세제와 임대차 3법에 대한 세부 입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현행 보유세 개정에 대해 “1가구 2주택이라도 보유 성격에 따라 임대 사업 목적이 있다면, 보유세를 낮춰 보유세 상승 부담이 임차인에 전가되지 않게끔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에서 민간 임대사업이 억제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유세 과세 유형을 보다 세세하게 구분해서 적정한 보유세 양도세 설계를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또 “임대차 3법의 경우 전·월세상한제보다 전·월세신고제가 먼저 도입됐어야 했다. 임대주택 수요와 공급, 계약형태 등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적절한 전·월세 상한을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주택의 질이나 시가에 따라 임대료 상승률 제한을 완화하거나 강화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상한폭을 제어하면 임대료 상승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함영진 랩장은 “민간임대시장이 향후 축소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부에서 이런 간극을 메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를 위해 함 랩장은 “우선 공공임대시장 확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외에 주거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임대료 보조나 바우처 제도 등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세와 관련한 대출에 대한 보완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함 랩장은 이어 “향후 임대차 분쟁이 늘 소지가 있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분쟁조정위)의 권한 확대나 개소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지방에도 이런 분쟁조정위의 적극적 활용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인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실제 정부는 분쟁조정위 개소를 지금의 3배인 18개로 증가시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