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로 여행사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닌 여행이 떠나버린 시대. 코로나 블루에서 코로나 앵그리로 번지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여행업은 말 그대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섰다.

그러나 여행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호모비아토르!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늘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여행하는 인간'으로 규정한 바 있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인 우리가 호모비아토르의 삶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방법을 찾지 않았는가. 늘 그렇듯이.

▲ 출처=갈무리

코로나에도 여행은 꽃핀다
1월 20일 국내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후 지금까지. 우리는 불확실성으로 대표되는 뉴노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감염의 우려가 커지며 무엇보다 이동의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14일 공개한 2020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에 따르면, 첫 확진자 발생 후 2월 23일 감염병 위기경보가 격상되며 카카오내비 이용자는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2월 24일부터 4월 말까지 이어지며 해당기간 문화시설 및 영화, 종교시설로의 이동은 감염병 위기경보 직전 대비 40% 이상 떨어졌다.

다만 4월 30일부터 5월 5일까지의 황금연휴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정도 완화되며 이동의 흔적은 다시 많아지기 시작했다. 실내여행지의 경우 여전히 이동의 흔적이 흐릿했으나 실외여행지를 중심으로 조금씩 흔적의 나이테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에서 여행의 트렌드도 변하고 있다.

먼저 국내 여행 빈도가 극적으로 높아진 대목이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며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초여름을 기점으로 국내여행에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내비 및 카카오택시 이동 리포트를 보면, 크게 줄어들었던 여가목적의 이동이 6월을 기준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7월에는 코로나19 이전 대비 무려 50%나 증가했다. 이 역시 감염병 우려가 커지는 이유지만, 현 상황에서 여행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는 분석이다.

여기어때에 따르면 지난 5월 황금연휴 기간 해외로 나간 여행객은 전년 동기 대비 98% 감소하며, 사실상 모든 여행 수요가 국내로 집중되고 있다.

여행지를 떠나도 감염 우려가 낮은 야외를, 숙소는 독립된 곳을 원하는 장면도 연출된다. 실제로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에 따르면 코로나19 후 사람이 북적이는 전통시장의 경우 무려 42%의 이동률 하락을 겪었고, 온천 및 스파리조트는 무려 45% 이상의 이동률 하락을 경험했다. 반면 을왕리해수욕장 등 수도권 인근 야외 여행지는 극적인 이동률 회복을 보여줬다.

코로나19 여파로 여행객들의 ‘프라이빗 트레블’ 트렌드가 강해지는 것도 확인이 가능하다. 실제로 에어비앤비가 미국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게스트 네 명 중 세 명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 없이, 오로지 가족들과 머물 수 있는 전용 숙소를 원한다고 답했다.

여행객들이 펜션을 선호하는 것도 프라이빗 트레블 트렌드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야놀자가 여름 성수기 예약 데이터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숙소 유형 조사에서는 펜션(43.8%)이 1위를 차지했다. 타인과의 접촉 가능성이 낮은 독채형 숙소에 대한 선호도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호캉스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도 독립된 공간에서의 여행을 즐기는 패턴과 관련이 있다. 결은 약간 다르지만, 최근 호텔 업계의 큰 손인 힐튼도 '대실 서비스'를 시작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야외에서 휴식을 취하며 '불멍' '랜턴멍'이 가능한 캠핑족들의 숫자도 크게 늘었다. G마켓에 따르면 지난 5월 1일부터 9월 7일까지 타프 (64%), 캠핑 의자(48%), 텐트(47%), 캠핑 테이블(43%),  등 캠핑 주요 품목은 모두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국내 캠핑카 등록 대수는 지난 2014년에 비해 5배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차에서 여행을 즐기는 차박도 트렌드가 됐다. 덕분에 매트 판매량은 위메프 기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624%나 증가했고 차박 전용 텐트 매출은 280% 수직상승했다. 로드트립 현상의 일부로 보여진다.

자동차와 여행이 만나며 렌트카 시장도 웃었다. 한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렌터카로 등록된 차량은 101만대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겼다. 해외 여행객이 급감해 단기 렌트카 수요가 줄었으나 코로나19 이후 소비자들이 대중교통 사용을 꺼리게 되면서 장기 렌트카를 택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여기에는 단순한 출퇴근은 물론 여행을 위해 장기 렌트카를 택하는 비중도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쏘카가 업계 최초로 회원수 600만명을 돌파한 배경에도 이러한 트렌드가 주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를 맞아 감염 청정지역을 찾으려는 여행객들도 있다. 다만 이들은 청정지역에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유보적이다.

이 과정에서 비대면 트렌드를 염두에 둔 여행 플랫폼의 새로운 시도가 벌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클룩이다.

▲ 출처=클록

클룩은 15일 국내 대표적 관광지 남이섬을 더욱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비대면 입장 솔루션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클룩이 제공한 디지털 솔루션으로 남이섬에 방문한 고객들은 매표소에서 종이 티켓으로 교환하는 불편함 없이 모바일로 간편하게 비대면 입장이 가능하다. 입국심사대에서 클룩 모바일 바우처를 간편하게 스캔한 후 바로 페리를 탑승하면 된다. 또한 입장권은 물론 내부 카페나 레스토랑과 같은 식음료, 전기자전거나 액티비티 이용까지 클룩 모바일로 예약 및 구매가 가능해 ‘나미나라공화국’의 새로운 디지털화폐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대면 트렌드를 플랫폼과 여행 현지의 디지털화폐로 연결하는 이색적인 시도다. 클룩 이철웅 한국 사업개발팀(BD) 디렉터는 “클룩의 모바일 솔루션으로 ‘나미나라공화국’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기여하게 되여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며 “사계절의 색다른 매력을 즐길 수 있는14만평의 드넓은 자연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더욱 안전하게 힐링의 시간을 즐기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 출처=갈무리

이건..조금 기상천외한걸?
코로나19를 맞아 집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물론 많다. 당장 롯데홈쇼핑이 추석을 앞두고 지난 7월 3∼5일과 13∼15일 당시 우수고객 500명을 대상으로 추석 계획을 설문 조사한 결과‘집에서 휴식하겠다’는 응답이 47%로 지난해 추석 때 조사보다 10%포인트 늘어났다. 최근 홈시어터 판매량이 급증한 것도 코로나19 집콕족이 많아진 결과 중 하나다.

그러나 집에만 있는다고 여행에 대한 본능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SNS에서는 코로나19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이나 사무실 창가에서 바라보는 외부 풍경을 찍어 공유하는 서비스가 각광을 받았다. 윈도스와프라는 서비스다. 전 세계의 풍경을 서로 공유하며 코로나19로 오는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내는 방식이다.

직접 여행지로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콘텐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비행기에 탑승해 좌석에 앉아 실제 비행시간만큼 아무런 화면변화가 없는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고, 유튜브에서는 항공기 탑승 체감을 위해 승무원의 안내방송을 ASMR로 들려주는 방송이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집에서 모든 불을 끄고 PC 화면만 켜놓은 뒤 마치 실제 비행기에 탑승한 것처럼 즐기는 방식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제자리 비행'도 인기다. 여행을 위해 비행기에 실제 탑승하고 비행기는 실제 여행지 근처로 날아가지만, 땅에는 도착하지 않는 서비스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라 제주도 항공을 구경하고 바로 대만으로 돌아가는 서비스가 완판행진을 기록해 모두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침체된 항공업계의 새로운 사업 모델이자 '이렇게라도 어디론가 떠나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감정의 연장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