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코로나19로 탄력을 받던 항공업 구조조정이 길을 잃었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했고, 금호산업 또한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거래종결 의무를 불이행했다며 계약해제를 통지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업계의 생존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정부가 자체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등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항공 이어 아시아나항공도 매각 결렬… 항공업계 뒤숭숭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항공업계 인수합병(M&A)이 잇따라 불발되면서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계약 무산에 따른 법적 공방전은 물론 고강도 구조조정 등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할 때부터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관측이 나오긴 했다”면서 “하지만 실제 M&A가 다 무산되면서 항공업계 분위기는 바람앞의 등불”이라고 말했다. 

계약금 반환을 두고 금호그룹과 HDC현산-미래에셋,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간 치열한 법적 다툼이 전개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책임소재를 둘러싼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만큼 소송이 길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제주항공은 이스타홀딩스에 계약금 명목으로 115억원을 지불했으며, HDC현산도 2500억원 규모의 계약이행보증금을 선지급한 바 있다. 

특히, 규모가 적지 않은 금호산업과 HDC현산의 계약금 반환소송은 벌써부터 뜨거운 감자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HDC현산은 지난 11일 아시아나항공 측이 요구한 계약금에 대한 질권 해지 절차를 즉시 이행할 수 없다며 법적인 검토 이후 관련 대응을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사실상 계약금을 돌려받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미래에셋대우 또한 “재무적 투자자(FI)로서 진행 사항에 따라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HDC현산이 거듭 재실사 입장을 고수한 것은 과거 한화-대우조선해양 사례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당시 한화는 계약 무산의 주요인인 확인 실사를 하지 못했고 최종 계약 체결 전 필요한 자료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 100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HDC현산도 계약금 반환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나섰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매각 불발로 인해 항공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스타항공의 경우 이미 앞서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로 700명이 넘는 직원이 업계를 떠났다. 그 결과 지난 3월 운항 중단 당시 1600명을 웃돌았던 이스타항공의 임직원 수는 5개월 여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재매각을 추진 중인만큼 원매자측이 원하는 수준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또한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이 제한하는 6개월 이후부터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기안기금 지원 조건에는 ‘6개월간 고용 총량 90% 유지’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에 당장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은 없겠지만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채권단이 고정비 줄이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간 채권단의 관리를 받아온 기업들 상당수가 인력 구조조정을 포함한 자구안을 내놓은 바 있다는 점에서 인력 구조조정설에 무게가 쏠린다. 이외 기안기금 지원이 불가피한 에어부산, 에어서울은 물론이고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세이버, 금호티앤아이 등 자회사 정리 가능성도 높다. 

▲ 에어로케이(왼쪽)와 에어프레미아(오른쪽) 항공기. 출처=각사

“정부, 항공사 자체 고사 방치”… 한진해운 악몽 되풀이?

코로나19가 할퀸 항공업계의 상처가 좀처럼 낫질 않으면서 정부도 책임의 화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유동성이 경색된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업계 구조개편을 추진할 여력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정부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면서 항공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자체 고사하도록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공업은 해운, 조선, 자동차 등과 함께 7대 국가 기간산업으로 꼽힌다. 전후방 산업 영향력과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국가마다 항공사 파산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는 것은 물론, 국내에서도 정부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인허가권, 운수권 등을 배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공급 과잉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국내 항공운송사업자가 11개로 늘면서 국토면적에 비해 항공사가 너무나 많다는 지적이었다. 국적 항공사는 기존 8개사에 지난해 취항한 플라이강원과 출범, 준비하고 있는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까지 총 11개다. 당시 국토부는 면허를 남발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이에 정부가 공급 과잉의 국내 항공업 재편을 위해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항공사들의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는 1년 가까이 운항증명(AOC)을 취득하지 못해 비행기를 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화 상태인 국내선의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 국토부가 인위적으로 새 사업자의 집입시기를 늦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정부가 항공사의 임대료 감면, 고용안정 자금 등을 지원하겠다며 내놓은 두 차례 방안은 단기적일뿐 실질적인 유동성 확보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조조정 유도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유동성 확보가 절실한 저비용항공사(LCC)의 경우 올 상반기 기준 3035억원 밖에 지원 받지 못했다. 

항공업계 인수합병이 잇달아 결렬되면서 혼수상태에 놓인 항공업계는 더욱 위태롭게 됐다. 

일각에서는 2016년 경제 원칙을 앞세우며 세계 7위의 국적선사 한진해운을 부도 처리한 전례가 그대로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시 산업은행 등 한진해운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혈세지원은 불가하다는 구조조정 원칙에 따라 한진해운에 추가 지원을 하지 않았다. 결국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이후 추락한 한국의 해운업 국제경쟁력은 아직도 당시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두 건의 매각 과정에서 정부의 태도를 보면 항공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알 수 있다”며 “이스타항공에서 발생한 대량의 구조조정에서도 묵인 했으며,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지지부진할 때도 손을 놓고 있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HDC현산에 대놓고 엄포를 놓는 등 여론전에 치중했다. 항공업계 혼란이 계속되고 대규모 실직 사태가 현실화 될 경우 정부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