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중국 전자기업 화웨이(HUAWEI)에 대한 제품 공급을 규제하는 미국의 강화된 제재 방안이 오는 15일 실행을 앞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국내 기업들에게 넘어올 수도 있다는 득(得)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장기적 관점이다. 단기적으로 국내 기업들에게는 수요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실(失)이 크다는 평가다. 

화웨이와 거래 중인 국내 주요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의 계산은 더욱 복잡해졌다. 

미국 "우리 화났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중국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5월의 조치에 아은 두 번째 조치다. 첫 번째 조치 이후에도 중국은 미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유지했다. 그에 따라 미국 정부는 이전보다 제재의 수위를 높였다. 

지난달 17일 미국 정부는 미국의 기술이나 장비, 소프트웨어, 설계도면 등을 활용해 생산된 D램·낸드플래시 등 거의 모든 유형의 반도체를 사전 승인 없이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미국의 기술 활용도가 25% 이하인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할 수 있었던 이전의 제재보다 강도가 세졌다.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는 모든 반도체들 중 미국의 기술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제품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을 감안하면 그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다.    

여기에 ‘사전 승인’이라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표현이다. 최근 백악관 브리핑에서 “중국은 늘 우리를 등쳐먹어 왔다”라면서 중국을 맹비난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드러나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감안하면, 별도의 요청이 있더라도 미국이 이를 승인을 해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심지어 미국은 제재의 범위를 화웨이와 더불어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로 확장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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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재로 가장 큰 타격을 기업들은 단연 반도체 기업들이다. 화웨이에 자사의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해 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눈앞에서 큰 수요처를 잃게 됐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전체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삼성전자가 3.2%(약 7조3700억원), SK하이닉스가 11.4%(약 3조원)을 기록했다. 물론 두 기업은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고 화웨이에 제품을 납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못지않게 큰 수요처인 미국의 ‘심기’를 애써 건드리는 것은 현재 상황이라면 두 업체에게 전혀 도움 될 것이 없다.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막은 것의 파급효과는 반도체 기업에서 끝나지 않는다. 반도체가 들어가는 제품을 제조해 화웨이에 공급하는 기업들도 영향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디스플레이 기업인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도 이번 제재로 화웨이에 대한 제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스마트폰과 TV의 화면을 구성하는 디스플레이 패널을 구동시키는 칩 역시 반도체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화웨이 매출 비중은 전체의 8%(2조5000억원), LG디스플레이는 1%(2350억원) 수준이다.

MLCC(적층세라믹콘덴서)를 공급하고 있는 삼성전기 역시 이번 제재의 여파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반도체든, 디스플레이든, 스마트폰 부품이든 당장 국내기업들은 최소 수천억에서 조 단위 이상의 시장을 잃게 되는 위기 상황에 처한 것이다.   

기업들의 대응 

미국의 제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기업들은 각자만의 대응 방안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우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대한 특별 수출 허가를 요청했다. 가장 직접적인 제재를 받는 제품인 반도체를 생산해 화웨이에 공급하는 기업들에게 예상되는 피해는 다른 업종들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삼성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 기업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 글로벌 점유율 1위를 목표로 정하고 3년간 18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세계최대의 반도체 공장 평택2라인을 가동함으로 자사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평택2라인에는 EUV(극자외선) 공정을 적용한 3세대 10나노급 LPDDR5 모바일 D램 등 다양한 제품들이 생산된다.

▲ 삼성전자 평택2라인. 출처=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역시 반도체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상무부에 특별 수출 허가 요청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경조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전자 기업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오랫동안 우위를 점하고 있던 시장의 경쟁 구조가 변화할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급변에 대응해야 할 국내 기업들의 계산과 결단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