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LG화학의 차세대 배터리인 리튬-황 배터리를 탑재한 무인기가 국내 최고 고도 비행에 성공했다.

글로벌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1위 업체인 LG화학이 이제 항공 모빌리티 산업으로도 가능성을 타진하는 가운데,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와의 파트너십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최근 '전기 제트기' 개발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전기 자동차 및 배터리 업계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는 양 사 간 협력이 항공 모빌리티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LG화학 배터리 탑재한 무인기, 국내 최고 고도 비행 성공
▲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발한 고고도 장기 체공 태양광 무인기 EAV-3. 출처=LG화학

LG화학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에서 개발한 '고고도 장기 체공 태양광 무인기(EAV-3)'가 리튬-황 배터리를 탑재하고 성층권에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10일 밝혔다.

날개 길이 20m·동체 길이 9m의 EAV-3는 성층권에서 오랜 시간 날 수 있는 소형 비행기로, 태양 에너지를 전력원으로 한다. 낮에는 날개 위에 있는 태양 전지 판을 통해 발전·충전 한 전력으로 비행하고, 밤에는 낮에 충전된 전력을 활용하는 식이다. 

항우연에 따르면 EAV-3는 수개월씩 장기 체공하면서 실시간으로 재해·미세먼지·기상 관측과 불법 어로 감시, 통신 중계 등의 임무를 수행해 인공위성을 보완할 수 있다. 환경 친화적인 데다 운용 비용까지 상대적으로 저렴해, 이미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EAV-3 비행 테스트는 지난 30일 전남 고흥 소재 항우연 항공 센터에서 오전 8시 36분부터 오후 9시 47분까지 약 13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EAV-3는 7시간 동안 성층권에서 안정적으로 비행했으며, 최고 22km의 고도까지 올라 무인기 기준 국내 최고 고도 비행 기록을 달성했다.

고도 12~50km 사이 대기권인 성층권의 경우 기압은 지상 대비 25분의 1 수준이라 진공에 가까우며, 온도는 영하 70도에 달한다. 이 같은 환경에서 EAV-3가 장시간 비행에 성공하자, 배터리 공급사인 LG화학도 고무된 분위기다. 리튬-황 배터리도 극한의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충방전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더 큰 미래를 향한 차세대 배터리
▲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발한 고고도 장기 체공 태양광 무인기 EAV-3에 탑재된 LG화학의 리튬-황 배터리. 출처=LG화학

LG화학은 리튬-황 배터리 개발을 위해 성층권과 유사한 수준의 저온·저기압 조건을 재현, 1년 6개월 간 연구에 매진했다고 전했다.

LG화학이 기존의 리튬 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차세대 배터리로 꼽는 리튬-황 배터리는 양극재에 황탄소 복합체, 음극재에 리튬 메탈 등 경량 재료들이 사용돼 무게당 에너지 밀도가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1.5배 이상 높다. LG화학이 테슬라의 '모델 3'에 납품하는 원통형 21700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260~270와트시퍼킬로그램(Wh/kg) 정도라면, 리튬-황 배터리는 410Wh/kg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또 해당 배터리 경우 무게가 가벼운데다, 리튬 이온 배터리에 쓰이는 코발트나 니켈 등 값비싼 희귀 금속이 들어가지 않아 가격 경쟁력도 노려볼 만하다는 설명이다.

LG화학 관계자는 "리튬-황 배터리는 전기차 뿐 아니라 장기 체공 드론 및 개인용 항공기 등 미래 운송 수단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꼽히며, 개발을 두고 세계 각국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LG화학은 향후 추가적인 리튬-황 배터리 시제품을 생산해 수일 이상의 장기 체공 비행을 시연할 예정이며, 리튬-황 배터리의 본격적 양산은 오는 2025년 이후로 계획하고 있다. 또한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 대비 약 1.5배 높은 수준인 에너지 밀도를 2배 이상으로 끌어올려 전기차 위주로 공급할 방침이며, 이후 사업성을 검토해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에 적용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LG화학의 최고 기술 책임자(CTO)인 노기수 사장은 "LG화학은 이번 EAV-3 비행 테스트를 통해 차세대 배터리 분야, 특히 에너지 밀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입증했다"면서 "앞으로도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연구·개발 등에 집중해 세계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더욱 공고할 것"이라 강조했다.

한편 항우연은 지난 8월 26일 EAV-3 기술의 실용화를 추진하기 위해 앞으로도 고성능 배터리 팩 및 태양 전지를 활용해 EAV-3를 개선할 것이며, 고고도용 고성능 배터리의 국산화 개발을 앞당기도록 관련 업체들과 긴밀히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영역은 항공 모빌리티로 더욱 확장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가 아닌 '전기 모빌리티'를 꿈꾼다
▲ 영화 '아이언맨 2'에 나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맨 오른쪽). 출처=갈무리

영화 '아이언맨 2'에는 카메오로 출연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와 인사를 나누며 "전기 제트기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실제로 머스크 CEO는 전기 제트기 개발에 대한 야망을 품고 있으며, 이전부터 미래 프로젝트 중 하나로 '수직 이착륙(VTOL) 대형 장거리 초음속 전기 제트기'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언급해 왔다.

그에 따르면 VTOL 제트기는 기존 항공기처럼 석유를 연료로 쓰지 않아 친환경적이며, 소리에 비견될 속도로 비행할 경우 영국 런던에서 중국 상하이까지 현재 11시간 이상 걸리는 시간을 7시간 반 정도로 단축할 수 있다. 또 해당 비행기는 수직 이착륙 방식이라 긴 활주로가 필요 없어 대형 공항을 이용하지 않으므로 항공 요금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흐름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항공 모빌리티 또한 결국 청정 에너지를 연료로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머스크 CEO는 자동차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주 로켓을 제외한 모든 운송 수단이 전기를 이용하게 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 트위터 캡처.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 트위터 캡처.

여기에 머스크 CEO가 최근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서 전기 제트기에 대한 질문에 답해, 오는 22일 열릴 '배터리 데이' 때 전기 제트기 전략까지 공개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한 트위터리안은 지난 8월 25일(현지 시간) "예전에 머스크 CEO는 배터리 에너지 밀도가 킬로그램(kg)당 400와트시(Wh)에 달하면 전기 제트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머스크 CEO는 "400Wh/kg 수준에 수명이 긴 배터리를 3~4년 안에 양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결국 머스크 CEO는 전기 제트기의 청사진을 3~4년 내 현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공언한 셈인데, 이는 LG화학이 리튬-황 배터리 양산 시점으로 제시한 2025년과 비슷한 시기다. 

양 사가 향후 전기차 뿐 아니라 항공 모빌리티 시장에서도 협력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앞서 국내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올해 테슬라의 중국향 전기차인 모델 3에 배터리를 가장 많이 납품한 업체다. LG화학은 올해 2월부터 테슬라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해 왔는데, 7월까지 공급한 총 3500메가와트시(MWh) 규모의 물량 가운데 98% 이상이 모델 3에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 CEO가 중국 배터리 업체 CATL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LG화학의 시장 파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일각의 전망도 제기됐으나, LG화학과 테슬라는 최근까지 공고한 관계를 다져 온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테슬라의 전기 제트기 개발이 아직 가시화 되지 않은 만큼 LG화학과의 항공 모빌리티 공조를 점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으나, 충분히 가능성을 타진해 볼 만하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