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한진그룹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섬유업체 경방이 한진칼이 최대주주로 있는 그룹의 물류사 한진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경방은 단순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사들였다고 밝혔지만 한진그룹이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만큼 향후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시선이 쏠린다. 

경방, 한진 2대 주주로…  조원태 적군? 아군?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날 한진은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 보고서’를 통해 경방의 지분이 기존 77만808주에서 111만7785주로 늘어났다고 공시했다. 지분율로 따지면 기존 6.44%에서 9.33%로 2.89%p(34만6977주) 늘어난 셈이다. 주식 매수 목적은 단순투자다. 경방을 포함한 특수 관계자가 지분을 사들인 금액은 총 144억원 수준이다.

경방은 한진칼에 이은 한진의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다. 현재 한진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는 1197만4656주이며 지난 6월 30일 기준 최대주주는 한진칼(23.62%), 국민연금공단(7.64%), ㈜GS홈쇼핑(6.87%) 순이다. 

경방은 특별관계자인 빌링앤네트워크솔루션즈, 이매진, 케이블앤텔레콤 등과 함께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한진의 주식을 늘려오고 있다. 앞서 4월에는 기존의 4.97%에서 1.47%p 추가로 지분을 취득하면서 KCGI 산하 엔케앤코홀딩스를 제치고 4대 주주로 올라선 바 있다. 

경방은 주식 취득 이유를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는 시장의 시선은 '의아함 또는 의구심'이다. 경방과 한진의 사업적 연결고리가 없는데다, 한진그룹이 현재 경영권 분쟁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최근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한진의 마케팅 총괄에 오르면서 경방도 경영권 분쟁에 가세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경방이 어느 쪽에 힘을 실어 줄지를 두고는 업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경방이 KCGI의 우군이라는 시각이 있다.

지난 3월 말 KCGI는 한진 지분율을 10.17%에서 5.01%로 절반 이상 줄였다. 한진칼 지분 취득을 위한 실탄 마련 차원에서였다. 그리고 경방은 이 시점 전후로 한진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지난해 말까지 경방은 한진 지분이 전무했다. 

시장에서는 경방이 한진 주식을 사들인 배후에 벽돌 1위 기업 조선내화가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조선내화는 KCGI의 주요 출자자이면서 경방의 지분 2.89%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KCGI가 경방을 한진의 우호 지분율을 방어하는 동시에 한진칼 지분을 확대하기 위한 장기말로 활용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진의 주식 121만8030주(10.17%)를 보유해 2대 주주였던 앤케이앤코홀딩스(KCGI산하)는 올 4월 한진 지분을 2% 가량 처분해 주요주주에서는 제외된 상태다. 한진에 대한 KCGI의 입김이 다소 약해진 상황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한진은 최근 택배 설비 투자 등을 이유로 20년만에 10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해 주가가 희석됐다. 업계에서는 조원태 회장이 KCGI와 경방의 실탄 확보를 막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영업현금흐름과 유형자산 매각자금으로 유동성위험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유상증자를 시행했다는 점에서다. 특히 한진칼이 대한항공, 진에어 등의 유상증자도 참여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회사에 유상증자를 하는 이유를 두고 분분한 의견이 오갔다. 

이 같은 상황에서 KCGI는 한진의 유상증자 등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주요주주로서의 입지가 필요하다. 한진이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라는 점에서 지주사의 지배력을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KCGI의 우군일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경방이 마냥 KCGI의 우군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경방이 한진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한 시점이 KCGI가 한진 주식을 처분하기 이전이라는 점에서다. 또한 김담 경방 사장은 인하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학연으로 맺어진 사이다.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오른쪽). 출처=한진그룹

조현민 한진 마케팅 총괄 임원 선임… 경영권 분쟁 대비 포석?

업계에서는 경방이 어느 편에 서던 당분간 한진의 주식을 계속해서 매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경방의 현금성 자산은 2000억원 이상으로 추가 지분 매입 여력이 충분하다. 아울러 최근 자산을 매각하는 등 유동성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면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셈법도 더욱 복잡해질 예정이다. 

한진이 발행한 전체 주식 가운데 한진칼의 우호세력은 30%가 넘는다. 한진칼 23.62%에 GS홈쇼핑 6.87%이다. 여기에 지난해 조원태 회장의 연임에 찬성했던 국민연금(7.64%)까지 더할 경우 거의 40% 수준이다. 

반면 KCGI의 한진 지분율은 3% 안팎으로 추정된다. 한진칼 주식 매수를 위해 종전 보유하던 한진 지분을 판 탓이다. 조선내화도 한진 지분율을 5% 이상까지 늘렸다가 모두 처분한 상황이다. 즉, 경방이 가세하더라도 지분율이 10% 내외에 그친다는 말이다. 

여기에 조 회장은 최근 조현민 한진칼 전무를 한진의 마케팅 총괄 임원에 신규 선임했다. 업계에서는 지주사의 지배력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경방과 KCGI 등 움직임에 사전 대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앞서 반도건설도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꾼 전례가 있는 만큼 경방의 경영권 분쟁 참여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며 “경영권 분쟁에 가세할 생각이라면 아직은 경방이 한진그룹을 위협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인 만큼 한진 지분에 대한 추가 매집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