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현대기아차와 같은 완성차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두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프레임이 횡행하는 한편, 반대편에서는 시장의 건전성과 고객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나옵니다.

 

논란의 전개
국내 중고차 시장은 연간 기준 약 22조원 규모로 추정될 정도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중고차 판매대수는 지난해 기준 224만대에 이르며, 이러한 수치는 178만대가 판매된 신차시장의 약 1.3배에 달합니다.

문제는 국내 중고차 시장에 대한 고객들의 반감이 극에 달했다는 점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월 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중고차 중개∙매매 관련 불만 상담건수는 총 2만783건이 접수됐을 정도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인식 조사에 따르면 무려 76.4%의 응답자가 국내 중고차 시장을 두고 불투명·혼탁·낙후됐다고 인식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중고차 시장이 왜 고객의 믿음을 전제하지 못할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중고차 시장이 전형적인 레몬마켓(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저품질의 재화,서비스만이 거래되는 시장 상황을 빗댄 표현)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기존 플레이어들이 굳이 업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장이 말 그대로 정체되어 고여있다는 뜻입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된지 6년이나 됐으나 플레이어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고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장 지난 2018년 미래한국당 원유철 전 의원은 부정한 중고차 성능점검자의처벌을 명확히 하는 ‘자동차 관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으나 사실상 큰 동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법안이 폐기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지난해 초 일몰된 상태에서 현재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고차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심의하는 중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타진하자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이 즉각 반발하는 충돌이 벌어지는 중입니다.

▲ 출처=갈무리

진출한다면?
만약 현대기아차와 같은 완성차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현행 그대로 시장이 유지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고객들의 불만은 여전히 횡행하고 시장의 혼탁함은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중고차 기존 업계는 대기업의 진출을 한 번 막아낸 상태에서 이를 관행으로 굳혀갈 것으로 보입니다. 최소한 공급자의 먹거리는 유지될 전망입니다.

물론 업계의 자정도 일부 기대할 수 있습니다. 모든 중고차 딜러들이 악당이 아닌데다, 업계 전반이 자극을 받아 자정활동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풀 및 VCNC 타다의 진격에 자극을 받은 택시업계가 최근 서비스의 질적 제고에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대목이 오버랩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단기적일 가능성이 높고, 순간의 자극은 오히려 괴랄한 정책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도 큽니다. 

잦은 파열음 후 국내 모빌리티 업계의 주도권을 택시가 가져가면서, 택시가 중심이 되는 '끼워 맞추기 모빌리티 혁명'이 일어나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완성차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 진출에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딜러로 대표되는 기존 업계 종사자들이 엄청난 타격을 받을 전망입니다. 당장의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며 이는 국내 소비경제에 암울한 나비효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시장 자체는 탄탄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장착될 경우 투명한 업종 관리가 가능해지며, 자연스럽게 고객의 만족도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기존 업체 종사자들을 대거 흡수하는 작업이 이뤄진다면 조심스럽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윈윈'도 꿈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는 가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중고차 시장이 그 규모에 비해 체계적이고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그 연장선에서 우리는 무언가 '특단의 대책'을 고민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 최태원 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 출처=각 사

새로운 모빌리티?
흥미로운 대목은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 나비효과입니다. 특히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현대기아차 측면에서 본다면, 이들은 완성차 업체입니다. 그러나 최근 모빌리티 전반에 대한 가능성 타진에 나서며 현대기아차는 단순한 완성차 이상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수소차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중요합니다. 환경오염에 따른 필수적 선택이면서도 중요하게 전개되어야 할 트렌드입니다. 이 지점에서 현대차는 배터리부터 전기완성차까지 강력한 로드맵을 힘있게 추진하는 중입니다.

이에 머물지 않습니다. 현대차는 우버와 함께 도심 모빌리티 전략을 가동하며 ▲UAM(Urban Air Mobility : 도심 항공 모빌리티) ▲PBV(Purpose Built Vehicle : 목적 기반 모빌리티) ▲Hub(모빌리티 환승 거점)의 세 가지 핵심 로드맵을 보여줘습니다. 미국의 교통정보분석기업 '인릭스(INRIX)'는 2018년 미국 운전자들이 교통정체로 도로에서 불필요하게 허비한 시간을 연평균 97시간으로 추산했으며, 금액(기회비용)으로 환산하면 1인당 1348달러(약 157만원), 미국 전체적으로는 총 870억 달러(약 100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도심 항공을 나는 큰 그림을 그리는 셈입니다.

나아가 KST모빌리티와 함께 의미있는 모빌리티 플랫폼 서클을 운영하고, 일종의 구독경제에 기반한 현대 셀력션까지 가동하는 중입니다. 다양한 국내외 모빌리티 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바탕을 통해 모빌리티 전반을 꿈꾸는 현대기아차는 중고차 시장을 통해 단순히 중고차 시장 확장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모빌리티 꿈도 꿀 수 있습니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SK와의 밀접한 관계를 맺는 대목도 눈길을 끕니다. LG화학과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서 전통적인 우애를 다지면서도, SK이노베이션과의 협력을 키우는 장면이 새롭습니다.

실제로 두 회사는 최근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리스·렌탈 등 전기차 배터리 판매 ▲배터리 관리 서비스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및 재활용 등 전기차 배터리 관련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모빌리티-배터리사 간 협력 체계를 검증해 나갈 계획이다. 나아가 ▲재활용에서 생산으로 이어지는 자원의 선순환 체계 구축 및 소재 공급 안정성 강화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전기차와 배터리 재사용을 연계한 최적 설계 및 이를 통한 부가가치 최대화 등의 시너지 효과를 도모한다는 설명입니다.

SK그룹은 모빌리티 전반에 대한 관심이 큰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1월 CES 2020에서 SK는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C 등 4개사가 총출동해 모빌리티의 미래에 방점을 찍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SK텔레콤의 T맵은 여전히 질주를 거듭하고 있으며, 쏘카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진행했습니다. SK차이나는 지난 6월 중국 BYD에 25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어요. SKC가 SK바이오랜드 지분 27.94%(약 419만주)를 모두 현대HCN에 매각한 것도 모빌리티와 반도체 사업의 성장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풀이됩니다.

결국 SK와의 만남으로 현대기아차는 종합 모빌리티 플랫폼의 꿈을 꾸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중고차 플랫폼은, 현대기아차 입장에서 최종 모빌리티의 퍼즐을 맞출 수 있는 중요한 화두가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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