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현대기아차(005380)와 SK이노베이션(096770)이 8일 전기차 배터리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특허전쟁이 불을 뿜는 가운데, 현대기아차와 SK이노베이션이 공개적으로 업무협약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려 특히 시선이 집중된다.

특히 SK그룹 전체가 가동하고 있는 모빌리티의 청사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대기아차의 모빌리티 큰 그림과 일맥상통하는 한편, 여기에 두 회사의 협력 포인트가 담겨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만나서 무엇을?
두 회사는 업무협약을 통해 ▲리스·렌탈 등 전기차 배터리 판매 ▲배터리 관리 서비스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및 재활용 등 전기차 배터리 관련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모빌리티-배터리사 간 협력 체계를 검증해 나갈 계획이다. 나아가 ▲재활용에서 생산으로 이어지는 자원의 선순환 체계 구축 및 소재 공급 안정성 강화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전기차와 배터리 재사용을 연계한 최적 설계 및 이를 통한 부가가치 최대화 등의 시너지 효과를 도모한다.

첫 시작은 니로 EV에 들어가는 배터리팩을 수거해 검증하는 실증 협력과정을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차량용으로 더 이상 사용되기 어려운 배터리를 ESS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배터리 재사용’ ▲차량 배터리로부터 리튬, 니켈, 코발트 등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금속을 추출하는 ‘배터리 재활용’ 등 전기차 배터리의 부가가치와 친환경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한다.

사실상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된 대부분의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각오다. 

현대기아차는 2011년 첫 순수 전기차를 선보인 이래 현재까지 국내외 누적 27만여대 판매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핵심 플레이어로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2025년까지 총 44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일 예정이며, 이 중 절반이 넘는 23종을 순수 전기차로 출시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2025년 전기차 56만대를 판매해 수소전기차 포함 세계 3위권 업체로 올라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기아차는 글로벌 전기차 점유율을 지난해 2.1%에서 2025년 6.6%까지 끌어 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큰 그림 아래에서 전기차의 핵심 전력인 배터리 수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한편 전기차에 이르는 모빌리티 그림을 완성한다는 각오다. 그 연장선에서 LG화학은 물론 SK이노베이션과의 다양한 협력에 나서는 분위기다.

현대차 전략기술본부장 지영조 사장은 “2021년부터 적용되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의 1차 배터리 공급사인 SK이노베이션과의 협력은, 모빌리티-배터리사 협력을 통한 시너지 극대화의 첫걸음을 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이는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경쟁력 강화는 물론 친환경 전기차 보급 확대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지동섭 배터리사업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대중화를 주도하는 현대기아차와 배터리 개발과 재활용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한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생애 전 과정에서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양측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 배터리 전후방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신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등 궁극적으로 그린뉴딜과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CES 2020에 등장한 SK. 출처=SK

왜 SK인가?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최근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함께 K-배터리 동맹을 위한 정지작업에 몰두한 바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LG화학과의 오래된 협력이었다. 현대차의 경우 전기차 배터리 물량을 LG화학으로부터 수급받는 가운데, 두 회사는 합작회사 로드맵도 가동하며 지금도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갈등이 첨예하게 튀는 상황에서, 현대기아차가 SK이노베이션과의 전방위적 협력을 선언한 행간에 시선이 집중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는 LG화학에 전기차 배터리 물량을 의존하지만, 기아차의 파트너는 오랫동안 SK이노베이션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현대기아차가 상대적으로 전기차 물량이 많은 현대차는 검증된 오랜 파트너인 LG화학과 협력해 실제 매출 상승을 노리고,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은 기아차는 SK이노베이션과의 협력으로 당장의 성과보다는 실험적인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말이 나온다.

2021년부터 적용되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의 1차 배급사는 SK이노베이션으로 확정된 상태다. 결국 현대기아차 입장에서 오래된 동맹과의 직접적인 매출 상승도 중요하지만, SK이노베이션과의 협력으로 E-GMP를 기점으로 하는 '상상력의 확장'이 필요했다는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SK가 모빌리티에 큰 관심을 가진 기업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SK그룹은 모빌리티 전반에 대한 관심이 크다. 실제로 올해 1월 CES 2020에서 SK는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C 등 4개사가 총출동해 모빌리티의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SK이노베이션은 미래자동차로 각광받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한 최첨단 모빌리티 기술을 전시했고 SK텔레콤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차세대 라이다(LiDAR), 인공지능 기반 HD맵 라이브 업데이트 기술 등과 함께 5G 모바일에지컴퓨팅(MEC) 기반 고화질 TV, 미국 ATSC3.0 실시간 방송 등 다양한 미디어 서비스를 공개했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중심의 세상'을 주제로 미래 일상의 모습에 변화를 가져올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오토모티브,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5G 등 6개 사업분야에 사용되는 D램, 낸드플래시, 이미지센서 등 반도체 솔루션을 선보였고 SKC는 모빌리티 배터리 음극소재 동박 외에도 자동차 케이블, 배터리 버스바 등에 쓰여 미래 자동차 경량화를 가능케 할 PCT 필름을 선보였다.

SK그룹은 모빌리티 전반에 대한 투자도 강화하고 있다. SK텔레콤의 T맵은 여전히 질주를 거듭하고 있으며, 쏘카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진행했다. SK차이나는 지난 6월 중국 BYD에 25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SKC가 SK바이오랜드 지분 27.94%(약 419만주)를 모두 현대HCN에 매각한 것도 모빌리티와 반도체 사업의 성장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풀이된다.

그런 이유로 SK 전체가 모빌리티 전반에 큰 관심을 가진 상태에서, 현대기아차는 SK이노베이션과의 협력을 기점으로 모빌리티 전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확신이 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전기차 판매를 넘어, 모빌리티 전반으로 나아가려는 현대기아차의 비전이 SK이노베이션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 현대차의 도심항공전략. 사진=최진홍 기자

최근 현대기아차는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시대 종말을 예고하고, 수소차와 항공 및 전기차 등 세 개의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수소차의 경우 수소경제의 확산을 중심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으며 항공에 있어서는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 우버와도 협력한다.

우버와의 협력은 지난 CES 2020에서 청사진이 나온 바 있다. ▲UAM(Urban Air Mobility : 도심 항공 모빌리티) ▲PBV(Purpose Built Vehicle : 목적 기반 모빌리티) ▲Hub(모빌리티 환승 거점) 플랫폼을 중심에 두고 미래 모빌리티의 큰 그림을 짜는 형식이다.

UAM은 하늘을 정조준한 모빌리티 전략이며 PBV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수용 가능한 개인화 설계 기반 도심형 친환경 모빌리티로 정의된다. 또 Hub는 하늘의 UAM과 지상의 PBV를 연결하는 구심점이자 새로운 커뮤니티다. UAM과 PBV가 각각 하늘과 땅을 의미한다면, Hub는 이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는 셈이다. 

현대기아차는 단순히 전기차를 생산하며 모빌리티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다. 자율주행부터 도심항공까지 아우르는 입체적인 모빌리티 전략을 타진하고 있으며, 역시 모빌리티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며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SK와의 협력고리를 강하게 만드는 분위기다.

두 회사가 이번 업무협약으로 더 큰 꿈을 꾸고있다는 것은, 설명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기아차는 "이번 업무협약은 배터리 공급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기존의 모빌리티-배터리 기업 간 협력과는 달리, BaaS(Battery as a Service)라 일컬어지는 배터리 생애 주기를 감안한 선순환적 활용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향후 모빌리티-배터리 업계에 보다 다양한 협업 체계가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향후에는 현대차그룹 관계사 및 SK그룹 관계사가 보유한 다양한 분야의 사업 인프라와 역량을 결합시켜, 전기차 배터리 경쟁력 강화는 물론 관련 산업 확대에도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