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자기 전에 아파트를 몇 바퀴 산책하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태풍이 지나간 밤에 산책은 너무 상쾌했습니다.

이미 가을로 들어선 걸까요?

벌써 선선함까지 있어 반팔로 나선 걸음을 빨리하기도 했습니다.

버킷리스트에 따라 시골로 거처를 옮겨 사는 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산책하는 것 외에도 매일 해지는 서쪽 하늘을 20분 이상 바라보며

풍성한 위로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매일 아파트 도는 나와는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다른 건가요?

특히 해지는 서쪽 하늘을 매일 보며 풍성한 위로를 받고 있다는 말이

몸과 마음으로 느껴지며 부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시골살이를 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해볼 버킷리스트로 목록에 넣게 됩니다.

요즘 장마, 태풍 사이에 반짝 보이는 서쪽 하늘이 너무 좋습니다.

모처럼 펼쳐진 양털 구름도 보며 어린 시절 보았던 하늘 너머가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지방의 산자락을 찾았습니다. 등산은 아니고, 산 근처서 식사와 차를

나누었습니다. 차 한잔하러 들어간 곳이 이름과는 달리 아주 넓은 집이었습니다.

찬찬히 구석구석을 보니 국내외 여행지 등에서 구했을법한 기념품 조각이나 회화 등으로

잔뜩 채워져 있었습니다. 주인장이 어디를 여행가서 한참을 지켜보고, 고민하다

수집한 것들로, 꽤나 발품을 판 흔적들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일부는 비를 맞았고, 또 다른 것들은 햇빛에 바래고...

관리를 포기한 듯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콜렉터의 길은 자못 험난하다고 얘기됩니다.

잘 알고 있는 분 중에 골수 수집가랄까, 전문 콜렉터인 분이 있었습니다.

평생 돈만 생기면 다듬이돌과 지공예품, 자수류 등을 전문적으로 수집했습니다.

한때 그분의 집사람으로부터 수많은 다듬이돌의 무게 때문에 집이 무너지겠다고

하소연하는 걸 듣기도 했었습니다. 다듬이돌 무게 때문만이 아니라 시간이 가면서

이분도 이걸 어떻게 정리하고 갈지 고민을 했습니다.

결국 작고하기 전에 다듬이돌은 대학에 기증하고, 지공예는 박물관에 매각하고...

나는 이런 분들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지만, 그래도 어디 국내외 박물관이나 미술관, 고서점, 고미술상, 여행지 등을 가면 오랜 시간 바라보고, 망설이다 사온 그림, 조각, 기념품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눈길 한번 주기 힘들게 거의 방치된 것을 보게 됩니다.

수집할 때의 애틋한 마음이 이미 효력을 다 한 것일까요?

마치 자식 키웠으니 응당 효도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지만,

기실 자식 키울 때 효의 99프로를 이미 받은 것이라는 말과 비슷할까요?

시골 가서 살게 될 때의 버킷리스트에 이 수집은 없는 걸 보면,

나는 반대로 지금 있는 것들을 제대로 주인 찾아 가는 걸 버킷리스트에 넣어야겠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자꾸 수정하게 됩니다. 소유가 아니라 눈에, 마음에 담아두는 걸로 말이죠.

너무 요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