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갈무리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세계 전기 자동차 및 배터리 판매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5개월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의 '배터리 데이'도 20일 앞으로 다가오는 등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LG화학과 중국 CATL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당장 세계 전기차 배터리 공급 1·2위를 다투는 양사 간 '패러다임 전쟁'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온다. LG화학은 고성능 구현에, CATL은 가격 경쟁력에 무게를 싣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니켈 적용 여부다. '하이니켈(high-nickel)'과 '니켈프리(nickel-free)' 사이에서 양사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펼쳐지고 있다. 나아가 한중전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K-배터리 기술의 핵심, 하이니켈

LG화학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현재 주류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니켈의 함유량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니켈은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향상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원료로, 즉 배터리 성능과 용량은 니켈 비중에 비례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최근 폴란드 공장에서 파우치형 차세대 NCM 배터리 양산에 돌입했다.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로 주로 쓰이는 기존 NCM 622 배터리를 개선한 NCM 712 배터리로, 독일 폭스바겐에 공급된다. 니켈 함량을 60%에서 70%로 끌어올리면서, 전기차 주행 거리도 400~500km에서 500km 이상으로 늘렸다는 설명이다.

LG화학의 경우, 이미 지난 2월부터 테슬라 '모델 3'에 원통형 'NCM 811' 배터리를 납품해 왔다. 파우치 배터리의 경우 니켈이 80%를 넘으면 화학적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어지고 있지만, 소형 전지인 원통형 배터리는 니켈 비중이 80%인 NCM 811 양극재를 적용해도 문제 없다는 설명이다.

또 LG화학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공동 개발 중인 '얼티움' 배터리도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출시되는 20여종의 전기차에 탑재될 예정이다.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양극재를 통해 니켈 비중을 90% 이상으로 높이면, 해당 배터리는 600km 수준의 전기차 주행 거리를 으로 시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LG화학과 함께 국내 배터리 3사로 꼽히는 SK이노베이션도 최근 니켈을 90%까지 확대한 'NCM 구반반(9½½)' 배터리 개발 소식을 알렸다. 해당 배터리는 미국 포드에 공급될 예정으로, 2023년 양산을 시작한다는 설명이다.

삼성SDI도 하이니켈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SDI는 현재 소형 배터리에 니켈 함량 88% 이상을 구현하는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기술을 적용하고 있으며, 독일 BMW가 내년 출시하는 차세대 전기차에도 해당 기술이 접목된 '젠5(5세대)' 배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CATL은 중국을 업고 있다

CATL의 주력인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는 NCM 배터리에 비해 안전성이 높고 가격적 매력이 크다. 니켈 대신 철이 들어가 비용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무게가 무겁고 에너지 용량이 작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 이 같은 단점은 치명적이다. 최근 완성차 업체들은 차세대 전기차의 청사진으로 내연 기관 차에 버금가는 수준의 주행 거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좌우하는 조건이 바로 배터리의 에너지 용량이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를 늘리려면 에너지 용량이 낮은 배터리의 경우 더 많이 탑재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LFP 배터리는 무거워 다량을 싣기도 어렵다.

기술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정작 테슬라는 LFP 배터리를 공급 받겠다며 CATL에 러브콜을 보냈다. 원가 절감을 꾀함과 동시에 중국 시장의 마음을 사고자 하는 니즈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CATL의 LFP 배터리는 지난 7월부터 테슬라에 모델 3용으로 공급되고 있다. 모델 3는 테슬라가 중국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전기차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규모이자 충성도까지 높은 내수 시장을 뒷배경으로 둔 점도 CATL의 저력이다.

중국은 지난해까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었으나, 올해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춤하면서 유럽에 왕좌를 뺏긴 바 있다. 최근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이 기록적인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으나, 중국 역시 만만치 않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향후 중국의 경기 회복 및 미국·유럽 시장 내 중국 업체의 판매가 본격화됨에 따라, 두 시장의 형세는 다시 역전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 산하 시장 조사 업체 BNEF는 오는 2025년에도 중국이 세계 전기차 수요의 5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중국의 전기차 굴기(崛起)는 그 자체로 위협적이며, 이는 배터리 산업으로도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다. 산업연구원은 "중국은 내연 기관 분야에서 선진국의 기술에 이길 수 없었으나, 전기차 산업에서는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부터 자국 산업 보호 정책까지 전방위적 지원을 통해 자국의 전기차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국가적 지원에 힘입은 중국 배터리사들이 한국·일본 업체들과의 기술력 격차도 금방 좁힐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중국은 최근 전기차용 배터리 특허를 집중적으로 출원하면서 우리나라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LG화학이 전기차 배터리 관련 약 1만7000개의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중국이 전기차용 배터리로 쓰이는 리튬 이온 전지 관련 특허 출원량에서 올해 안에 2위인 한국의 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CATL의 임원인 멩 시앙펑은 지난 15일 중국 자동차 공업 협회(CAAM)가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CATL의 차세대 배터리와 관련해 "기존 NCM·NCA 배터리와 달리, 니켈이나 코발트 같은 고가 원료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니켈프리를 선언한 셈이다.

테슬라 배터리 데이 눈길

니켈을 둘러싼 상이한 전략이 읽히는 가운데, LG화학과 CATL 양사 모두로부터 배터리를 납품 받는 테슬라는 오는 22일 배터리 데이를 열어 차세대 배터리 비전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월 2분기 경영 실적을 발표하면서, 현재 40%에 달하는 중국산 부품의 비중을 8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머스크 CEO는 니켈 공급사들을 향해 "니켈을 더 공급하라"며 "니켈을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대량 채굴하는 업체가 있으면 장기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말했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니켈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테슬라의 배터리 납품사들이 중국 업체들 위주로 교체되거나, CATL이 주 공급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테슬라가 CATL의 배터리를 일부 적용하는 것은 원가 절감 및 중국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를 꾀하기 위한 차원이며, CATL 배터리가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대세가 되기는 힘들다는 게 국내 업계의 중론이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머스크 CEO가 밝혔듯 LFP 배터리는 300마일(약 483km)을 넘지 않는 주행 거리에 적합하다"며 "테슬라는 주행 거리 요구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중국 내수 시장에서는 LFP 배터리를 채택하겠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을 상대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니켈 비중이 높은 NCM 배터리를 주력으로 할 것"이라 예상했다.

고정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테슬라는 기존 LFP 배터리에 망간(M)을 추가해 에너지 밀도를 보완한 'LFMP' 배터리를 내놓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LFMP 배터리도 성능에 한계가 있어, 단거리 전기차 중심으로 채택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배터리 데이는 단가 협상을 위한 전략적 이벤트라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테슬라가 내놓는 차세대 배터리가 상용화는 먼 수준이더라도, 배터리 공급사들에게는 단가 인하의 압력을 넣을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CATL과의 협력 강화를 공언하는 액션에도 LG화학과은 물론 오래된 동맹인 일본 파나소닉 등 배터리 업체들끼리의 경쟁을 부추겨 궁극적으로 배터리 가격을 낮추려는 계산도 깔려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