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2016년 1월 넷플릭스가 국내에 첫 발을 내디딜 때 유료방송 업계는 글로벌 OTT(인터넷 기반 동영상 서비스) 공룡이 온다는 소식에 열띤 반응을 보이면서도 사업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한국엔 가격 경쟁력을 갖춘 IPTV(인터넷TV)가 견고한 입지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출시 약 5년을 바라보는 지금 넷플릭스는 국내 미디어 시장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내 OTT 업계는 연일 ‘넷플릭스 잡기’에 나서는 한편 ‘넷플릭스 제휴 반대’를 호소하고 나섰다.

‘코드커팅’ 이끈 넷플릭스, 한국선 ‘글쎄’

인터넷을 뜻하는 넷(Net)과 영화를 뜻하는 속어인 플릭(Flick)이 합쳐진 사명인 넷플릭스는 2007년 본격적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어 글로벌 소비자들을 매료, 그들로 하여금 유료방송을 끊어버리고 넷플릭스를 보게 만드는 이른바 ‘코드커팅’ 현상을 이끌었다.

서구권을 휩쓴 넷플릭스는 2016년 1월 한국을 포함한 130여개국 이상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넷플릭스에게도 한국은 쉽지 않은 시장이었다. 월 1만원도 안되는 IPTV가 널리 보급되어 있어 유료방송 요금이 국내 대비 3배 이상 비싼 외국과 달리 이용자가 기존 유료방송을 끊고 넷플릭스를 주력으로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출시 당시 콘텐츠 양은 영화, 드라마, 예능 전반적으로 기대 이하였다. 특히 기대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급도 원활치 않아 많은 이용자들이 ‘볼게 없다’며 실망했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국내 IPTV 사업자와의 제휴에서도 수익 배분 문제로 난항을 겪으며 스크린을 TV로 확장하는데 애를 먹었다. 넷플릭스는 첫 서비스 이후 반년간 가입자 약 6만 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넷플릭스의 브랜드가 확산되기 시작한 건 출시 1년 6개월~2년 즈음이었다. 다만 당시에도 경쟁 OTT 서비스인 국내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는 가입자 약 1000만을 확보한 막강 플랫폼이었고 지상파의 ‘푹’ 또한 유료 가입자 50만을 넘기며 글로벌 OTT 대비 승기를 잡고 있었다.

국산 콘텐츠 가능성 제시… 넷플릭스 IPTV 속으로

그러나 넷플릭스는 꾸준히 현지 제휴 전략으로 외연을 넓히며 국내 사업자들이 할 수 없는 역량에 집중했다. 넷플릭스는 IPTV와의 협상은 결렬됐지만 케이블TV인 딜라이브, CJ헬로 등과 손을 잡으며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특히 거대 자본을 기반으로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제작비 약 580억원을 투입한 ‘옥자’는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넷플릭스 독점으로 스트리밍을 제공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면 막대한 제작비와 실험적 시도 탓에 나오기 어려웠을 한국형 좀비물 ‘킹덤’은 넷플릭스가 대규모 제작비를 쾌척하며 탄생했고 흥행에 성공했다.

넷플릭스는 2018년 11월 마침내 LG유플러스와의 제휴에 성공, IPTV 셋톱박스를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가입자 확보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2016년 8월 6만 명 수준이던 앱 사용자는 2017년 7월 35만 명으로 늘었고, 2019년 2월 121만 명, 같은해 10월 200만 명을 돌파했다. 올해 4월엔 코로나19 사태 영향이 더해져 가입자는 328만 명, 월 결제금액은 43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실적에 기반하면 넷플릭스의 연간 국내 매출은 5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풀이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는 국내 주요 OTT인 웨이브, 티빙 등 대비 2~3배 높은 매출이다.

 

이어 지난 8월 넷플릭스는 IPTV 1위 KT와도 제휴에 성공했다. 당초 고개가 빳빳했던 통신사들은 넷플릭스의 커진 영향력에 차례로 손을 맞잡는 모양새다. LG유플러스에 이어 KT와도 제휴한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지상파를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방송협회는 이에 대해 “글로벌 공룡 OTT와의 제휴를 철회하라”며 호소하고 있다.

넷플릭스, 성공 키워드는

업계 일각에선 ‘넷플릭스 타도’를 외치는 실정이지만, 넷플릭스가 이용자 경험에서 혁신을 이룬 건 사실이다. 기존 VOD 시장에서 돈을 내고도 봐야했던 광고를 넷플릭스는 일절 내보내지 않았고 월 정액 요금제를 가격대별로 판매했지만, 볼 수 있는 콘텐츠에 차등을 두지 않고 화질과 동시 이용 계정수에서 차등을 뒀다. 특히 4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요금제는 각 프로필 별로 독립적인 큐레이션을 제공해 이용자 만족도가 매우 높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드라마를 공개할 때 완성된 모든 회차를 일제히 내놓는다. 이는 드라마를 몰아보려는 이용자의 니즈를 파고들어 ‘폭식시청’ 트렌드를 이끌었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추천 알고리즘 시스템도 미디어 시장에 큰 영향을 줬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콘텐츠 투자 규모도 막강하다. 넷플릭스는 지난해에만 150억달러(약 18조원)를 콘텐츠 투자에 쏟아부었다. 같은 기간 국내 OTT 투자액을 모두 합쳐도 1조원에 미치지 못한다.

 

국내 OTT도 고군분투…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활발

글로벌 OTT 사업자에 맞서는 국내 OTT의 고군분투도 이어지고 있다.

선봉에 선 건 지난해 9월 출범한 ‘웨이브’다. 본래 지상파 3사의 ‘푹’과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로 각각 존재했지만, 빠른 속도로 커지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 외산 OTT에 맞서기 위해 ‘토종 연합군’ 성격으로 힘을 합쳤다. 오는 2023년까지 가입자 500만 명 규모로 키워 연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달리고 있다. 지상파의 콘텐츠를 모두 제공하는 만큼 범용성이 강점이다. 국내 OTT 중에서는 유일하게 천억원대의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계획을 선언했다.

국내 대표 ‘콘텐츠 강자’ CJ ENM과 JTBC가 합작한 ‘티빙’도 오는 10월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인기가 높은 드라마, 예능을 많이 확보하고 있어 OTT 업계가 주시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웨이브와 적극적인 제휴를 통해 힘을 합쳐 글로벌 OTT에 대항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KT와 LG유플러스 또한 각각 ‘시즌’과 ‘U+모바일TV’을 운영 중이다. 다만 웨이브, 티빙 수준의 존재감은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오픈 플랫폼을 지향하는 한편 아이돌 예능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활용해 틈새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 영화 부문에선 토종OTT ‘왓챠플레이’도 넷플릭스 대항마로 떠올랐다. 가성비와 국내 이용자 취향에 맞춘 큐레이션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최근엔 카카오M이 ‘카카오TV’를 통해 OTT 시장 진출을 알리며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온 국민 플랫폼 카카오톡을 활용해 접근성을 확보하는 한편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