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검찰이 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이 여전히 진행중인 가운데 검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에 이어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 많은 불법행위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부회장에 대한 혐의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필요이상의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삼바서 시작된 불꽃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1일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3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공소장에 적시된 이 부회장의 범죄 사실은 모두 19개다. 이 가운데 16개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부정거래 또는 시세조종에 해당한다. 제출된 사건 수사기록은 모두 437권으로 21만4000여쪽 분량이다. 공소장 분량은 133쪽에 달한다.

해당 수사는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분식회계 혐의로 고발하며 시작됐다. 이에 검찰은 2018년 12월부터 수사에 돌입했으며 지난해 하반기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기세를 올렸다.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 일부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자료를 삭제하거나 기기를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김태한 사장을 대상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며 검찰의 수사동력은 크게 상실됐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기는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반전은 검찰이 9월 23일 삼성물산과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며 벌어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가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에 방점을 찍었고, 그 결정적 무대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순간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이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전반으로 확대됐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2012년 12월 작성한 '프로젝트 G'라는 문건에 주목하며, 삼성이 예전부터 이 부회장 승계를 염두에 둔 장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고 본다. 그 연장선에서 검찰은 지난 5월 26일엔 이 부회장을 첫 소환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냈다.

이에 이 부회장은 검찰에 수사심의위원회를 요청했으나, 검찰은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후 열린 검찰 수사심위에서 불기소 권고가 나왔고, 검찰의 수사는 재차 가로막히는 듯 했다. 다만 검찰은 이번에 다시 불구속 기소를 결정하며 이 부회장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키웠다.

역풍 부나

검찰의 불구속 기소 결정이 내려지자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강하게 반발했다.

변호인단은 “(불구속 기소는)국민들의 뜻에 어긋나고, 사법부의 합리적 판단마저 무시한 기소는 법적 형평에 반할 뿐만 아니라,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라면서 “검찰의 공정한 의사결정 절차를 믿고 그 과정에서 권리를 지키려 했던 피고인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고 승복할 수 없다. 나아가 영장 청구와 수사심의위 심의 시 전혀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업무상 배임죄를 기소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추가했으며 기소 과정에 느닷없이 이를 추가한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수사심의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불구속 기소로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제동이 걸리는 한편, 코로나19 및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국내 경제 위기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향후 몇 년간 재판에 임해야 함에 따라 제대로 된 경영을 펼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자연스럽게 삼성의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다.

무엇보다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검찰 수사심위에서 불기소 권고가 내려졌음에도 검찰이 기소를 강행했다는 점과, 지금까지의 강도 높은 수사에도 별다른 혐의점이 발견되지 못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 부회장 기소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른바 ‘타깃 기소’ ‘짜 맞추기 기소’에 나섰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도 “삼성그룹과 이재용 기소를 목표로 정해 놓고 수사를 진행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납득할 수 없으며 피고인들은 재판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검찰의 이번 기소가 왜 부당한 것인지 법정에서 하나하나 밝혀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의 이번 불구속 기소 결정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간 분쟁(ISD)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지난 2018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약 9100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한편, ISD에 중재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하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정당성을 흔들었고 이는 엘리엇의 논리에 힘을 더해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엘리엇이 법무부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기도 하는 등 부쩍 빠르게 움직이는 가운데, 이번 기소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