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방송산업의 자율성을 제고하는 한편 시청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방송법·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IPTV) 사업법 개정안을 지난달 31일 입법 예고했다. 이미 일몰됐던 유료방송(SO) 시장 점유율 33%를 넘지 못하도록 설정했던 ‘유료방송합산규제’(합산규제)가 완전히 사라질 전망이다.

당초 국내 규제기관은 미디어 업체들의 합종연횡을 경계한 바 있다. 규모의 경제가 지나치게 부각될 경우 방송의 공공성이라는 대명제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한 때 SK브로드밴드가 당시 CJ헬로비전을 품으려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에 막히기도 했다.

그러나 글로벌 미디어 업계의 국내 시장 공습이 빨라지고, 미디어 콘텐츠가 5G 시대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파리프 라인 플랫폼이 말 그대로 융단폭격을 가하는 가운데, 자칫 국내 업체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풀리며 각 플레이어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시장 1위 사업자 KT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능성 타진이 벌어질 전망이다.

▲ 출처=갈무리

일몰의, 입법 예고의 배경

통합 방송법의 큰 그림을 타고 등장했던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사라지는 배경에는, 국내 미디어 업계의 역량 결집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는 ‘절박함’에서 기인한다. 넷플릭스 및 구글 유튜브 등 뉴미디어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며 케이블에서 IPTV로 옮겨온 유료방송 플레이어들이 큰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IPTV가 유료방송 시장의 패권을 케이블로부터 가져온 시간은 몇 년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IPTV의 앞에 강력한 콘텐츠로 무장한 미디어 글로벌 공룡들이 나타난 셈이다.

결국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폐지해 각 사업자들의 인수합병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5G 시대를 맞아 콘텐츠의 존재감이 커지는 한편, 특히 영상 콘텐츠의 활용도가 무궁무진해진 점이 눈길을 끈다. 5G 킬러 콘텐츠를 모색하려는 각 기업의 다양한 가능성 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상 콘텐츠, 즉 미디어 콘텐츠가 킬러 콘텐츠에 가장 제격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나아가 현행 요금 승인제는 신고제로 변경되며 종합유선방송사업자·중계유선방송사업자·음악유선방송사업자에게 적용하는 준공검사(설치검사, 변경검사) 규제도 폐지된다. 정부는 여기에 시청자 권익 보호를 위해 유료방송에도 시청자위원회를 설치해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고, 종합유선방송사업자와 위성방송사업자에 대한 품질평가도 공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미디어 판, 어떻게 돌아가나

유료방송 시장은 2019년 상반기 기준 IPTV 1위 사업자 KT가 위성방송 KT스카이라이프와 함께 점유율 31.31%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CJ헬로를 품은 LG유플러스가 24.72%로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티브로드와 만난 SK브로드밴드가 24.03%로 LG유플러스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CJ헬로, 티브로드를 품은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가 인수합병을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보인 바 있다. 두 사업자 모두 예정된 케이블 MSO 인수를 마쳐도 여전히 1위 KT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나, 5G 시대를 맞이해 IPTV와 ICT 전략을 연결하겠다는 뜻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SK브로드밴드는 꾸준하게 IPTV 역량을 키우는 중이다. 김종원 SK브로드밴드 플랫폼 그룹장은 "OTT 서비스는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한 반면 IPTV 월정액 가입자는 완만한 수준을 유지하는데 그쳤다"면서 "IPTV는 최신 영화는 단건으로 판매하고, 구작은 월정액으로 이용하게끔 하는 공급자 중심의 구조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약점은 채우고 국내 사용자에게 차별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을 담아 오션을 출시했다는 설명이다. 오션은 무료로 제공하는 영화 커버리지를 크게 확대한 서비스며 당초 프리미어 가입자는 제공되는 한국영화의 54%, 해외 영화의 53% 정도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반면 오션은 한국과 해외 영화의 98%, 89%를 월정액 상품만으로 볼 수 있게 했다.

▲ 사진=전현수 기자

이러한 전략은 국내 미디어 시장의 지배력 강화에 나서려는 국내 IPTV의 고군분투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에는 방송채널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KT 스카이라이프는 종합 드라마 오락 채널인 'SKY', 버라이어티 채널 'NQQ' 등 8개 PP를 보유한 상태에서 디스커버리와 전략적 투자까지 타진하는 중이다. LG유플러스도 지난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PP 등록절차를 완료한 상태에서 7월말 미디어로그를 통해 '더라이프' 채널을 개국했다.

다만 KT는 상대적으로 정중동이었다. 무엇보다 유료방송 합산규제에 근접한 점유율이 문제였다.

그러나 현대HCN을 품으며 상황은 달라졌다. 7월 27일 KT스카이라이프가 현대HCN 인수합병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현대HCN 인수에 성공할 경우 KT스카이라이프는 올해 1조원대 매출도 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경쟁사들은 KT의 미디어 공룡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강력한 반발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KT 입장에서는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의지가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풀리며 정국은 또 한 번 출렁이게 됐다. 당장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리는 작업에 족쇄가 풀린만큼, 남은 케이블 MSO 매물인 CMB와 딜라이브의 ‘운명’에 시선이 집중된다. SK브로드밴드는 물론 LG유플러스, 심지어 시장 1위 사업자인 KT도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매물로 나온 케이블 MSO의 특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도 많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선 CMB는 디지털 전환이 더딘 관계로 8VSB 가입자가 절대다수지만 수도권 및 주요 대도시를 권역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딜라이브는 디지털 전환은 대부분 완료됐으나 부채 비율이 200%에 달한다는 점이 뇌관이다. 그 연장선에서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KT가 각각 CJ헬로, 티브로드, 현대HCN를 인수하거나 인수할 예정인 가운데 또 다른 인수합병이 단행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인수합병을 막 마친 각 IPTV 사업자들이 큰 자금을 재차 인수합병에 투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일몰된 순간 새로운 가능성 타진이 더욱 적극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