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가 30일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인 평택 2라인 가동에 들어갔다. 연면적 12만8900㎡(축구장 16개 크기)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전략은 물론 과감한 투자본능과, 몽골기병 전략을 연상하게 만드는 속도전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의 시대가 시작됐으나 삼성전자는 스스럼없이 ‘돌격’을 택했다.

▲ 평택 2라인. 출처=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시장 강화

삼성전자는 D램 및 낸드플래시의 강자로 군림하며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으며, 파운드리 전략까지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에게 빼앗긴 1위 타이틀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옴디아(Omdia)의 2분기 반도체 기업 매출 집계에 따르면 인텔은 17.5%의 점유율로 여전히 12.48%의 삼성전자에 앞서고 있으나, 2분기부터 그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7나노 양산을 포기하며 종합반도체기업(IDM)의 지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인텔의 상황을 고려하면 하반기 삼성전자의 극적인 1위 탈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는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 공략에 더욱 집중하는 모양새다.

평택 2라인에서 16Gb LPDDR5 모바일 D램이 출하된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메모리 양산제품으로는 처음 EUV 공정이 적용되었으며, 역대 최대 용량과 최고 속도를 동시에 구현한 업계 최초의 3세대 10나노(1z) LPDDR5 제품이다. 2월 2세대 10나노급(1y) 공정으로 역대 최대 용량의 16GB(기가바이트) LPDDR5 D램을 양산한 지 6개월 만에 차세대 1z 공정까지 프리미엄 모바일 D램 라인업 강화에 성공하는 분위기다.

이번 제품은 기존 플래그십 스마트폰용 12Gb 모바일 D램(LPDDR5, 5,500Mb/s)보다 16% 빠른 6,400Mb/s의 동작 속도를 구현했다. 16GB 제품 기준으로 1초당 풀HD급 영화(5GB) 약 10편에 해당하는 51.2GB(기가바이트)를 처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16Gb LPDDR5 모바일 D램은 8개의 칩만으로 16GB 제품을 구성할 수 있어 기존 제품(12Gb 칩 8개 + 8Gb 칩 4개)대비 30% 더 얇은 패키지를 만들 수 있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램개발실 이정배 부사장은 "이번 1z나노 16Gb LPDDR5는 역대 최고 개발 난도를 극복하고 미세공정 한계 돌파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제품"이라며 "프리미엄 D램 라인업을 지속 확대해 고객 요구에 더욱 빠르게 대응하고 메모리 시장 확대에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평택 2라인에서 사상 처음으로 EUV를 적용한 차세대 모바일 D램이 등장한 점에 높은 평가를 주고 있다. 결국 삼성전자의 평택 2라인 가동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대한 삼성전자의 공고한 영향력 유지를 전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 1z나노 기반 16GB LPDDR5 모바일D램. 출처=삼성전자

과감한 투자본능

평택 2라인에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만 양산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평택 2라인에 지난 5월 EUV 기반 최첨단 제품 수요에 대비하기 위한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착공했으며, 6월에는 첨단 V낸드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낸드플래시 생산라인도 착공했다. 추후 초미세 파운드리 제품까지 생산하는 전초기지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2018년 8월에 발표한 180조원 투자, 4만명 고용 계획의 일환으로 평택 2라인을 꾸렸다는 설명이다. 평택 1라인에 이어 이번 평택 2라인에도 총 30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집행되며, 지난 2015년부터 조성된 평택캠퍼스는 289만㎡의 부지를 가진 삼성전자 차세대 반도체 선봉으로 우뚝 설 전망이다.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변화, 나아가 미중 갈등에 따른 시장의 가변성을 고려하면 ‘쉬운 결단은 아니었다’는 말이 삼성전자 내외부에서 나온다.

그러나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여전히 강력하고, 최근 반도체 생산라인의 자국화를 꾀하는 미국의 노골적인 움직임이 보임에 따라 삼성전자가 특단의 로드맵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삼성전자가 부쩍 집중하고 있는 파운드리 전반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도 걸릴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스포드에 따르면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무려 51.5%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18.8%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7나노 공정을 앞세워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3위 글로벌파운드리, UMC, SMIC를 초기술 격차로 압도하는 중이다. 

다만 삼성전자 입장에서 보면 TSMC와의 격차는 지나치게 크다. 최근에는 점점 그 격차가 벌어지는 중이며 TSMC는 최근 2나노 공정 로드맵까지 깜짝 발표하며 업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삼성전자도 미국 IBM의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파운드리 계약을 수주하며 차근차근 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실제로 IBM은 17일(현지시간) 차세대 서버용 CPU '파워(power) 10'을 공개하며 이를 삼성전자가 생산한다고 밝혔으며, 이는 극자외선(EUV) 기반 7나노 공정에 기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는 여세를 몰아 AI 반도체 전반의 강력한 인프라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그 시작점은 파운드리 시장에 대한 공격이며, 평택 2라인 가동은 삼성전자의 미래 파운드리 로드맵에도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 전망이다.

▲ IBM의 CPU 파워10. 출처=IBM

몽골기병 속도전

삼성전자 평택 1라인은 2017년 하반기부터 가동이 시작됐고, 이번에 평택 2라인이 정식 가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벌써 평택 3라인 청사진을 그리고 있으며 4, 5, 6라인까지 거침없이 진격할 예정이다.

실제로 평택 3라인은 2023년 말 가동될 것으로 보이며 EUV 공정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모두를 생산하는 혼용팹이 될 전망이다. 최종 건축허가 면적은 70만㎡로 예상되며, 이미 지자체와의 협력이 진행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몽골기병을 연상하게 만드는 속도전인 셈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조속한 시일에 평택 3라인까지 가동하는 한편 나머지 라인 구축에도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출처=삼성전자

문제는 외부의 요인이다.

현재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하지 말아야 한다는 수사심의위원회의 판단을 두고 장고에 들어간 상태다.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검찰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가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이뤄질 경우 지루한 법정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자연스럽게 삼성전자의 큰 그림은 ‘올스톱’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략은 치밀한 시스템에 따라 가동되지만, 수 조원의 자금이 투입되는 반도체 라인과 같은 ‘대역사’는 총수의 결단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수사당국의 칼 날에 노출된다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적기에 날카로운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는 중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한 때 수감되었을 당시 굵직굵직하게 벌어지던 인수합병 전략이 모조리 멈춘 바 있다. 이후 이 부회장이 다시 삼성전자로 복귀하고 나서야 인공지능 및 5G 전반에 대한 로드맵이 선명하게 살아났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은 모든 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면서도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반도체 라인 건설 및 가동은 전문 경영인보다 총수가 내릴 수 있는 결정에 가깝기 때문에,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요동치는 현재 이 부회장의 거취를 두고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