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로 인한 세계 원유 수요 감소로 폭락한 유가가 안정성을 회복한 것은 거래자들의 옵션 거래 방식이 크게 기여했다.   출처= Dreamstim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쌍둥이 허리케인 로라와 마르코가 이번 주 루이지애나와 텍사스를 향해 다가오면서 석유 업체들이 장비와 인력을 보호하기 위해 멕시코만의 해양 석유 생산 시설의 5분의 4 이상을 폐쇄함에 따라 원유 가격이 꿈틀거렸다.

코로나 이후 끝을 모르고 추락하던 유가는 지난 두 달 동안 서서히 회복했다. 국제 에너지 시장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은 7주 연속 배럴당 1달러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2002년 이후 가장 긴 기간이다.

거래자들은 유가가 이 같이 안정세를 보인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45달러 선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은 것이고, 둘째는 미국 석유의 주 척도인 서부 텍사사 중질유(WTI)가 그보다 약간 낮은 수준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주요 석유 수출국들의 감산이 석유 수요의 둔화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자산관리자들은 이른 바 옵션으로 알려진 파생상품 계약을 이용함으로써 유가 안정에 기여했다고 월스트리크저널(WSJ)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S&P 글로벌 플라츠(S&P Global Platts)의 계량 분석가 비토 투리토에 따르면, 코로나 대유행 이후 유가가 급격한 변동을 보이자 헤지펀드 등 투자자들은 WTI와 브렌트 선물 옵션들을 매도함으로써 변동성을 진정시키려고 시도했다.

이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이 스트랭글(strangle, 옵션거래에서 통화와 만기는 동일하나 권리 행사 가격이 다른 콜 옵션과 풋 옵션을 모두 매입하거나 모두 매도하는 방식) 매도다. 여기에는 풋옵션(Put Option) 매도가 포함되는데, 이는 특정 일에 WTI 선물 등을 미리 정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를 매매하는 것이다. 투자자는 반대로 콜옵션(Call Option)을 매도하는데, 이는 옵션 소지자에게 다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스트랭글을 매도하는 펀드들은 WTI 선물이 풋옵션과 콜옵션 행사 가격 사이에서 거래될 것이라는 데에 돈을 건다. 펀드들은 가격이 그 범위를 벗어나서 구매자가 구매 또는 판매권을 행사하는 위험을 보상함으로써 이익을 챙긴다.

이런 전략을 변동성 매도(selling volatility)라고 부르는데, 지난 10년 동안 저금리가 이어져 온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수익률을 조절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유도하면서 보편화되었다.

그런데 이런 전략이 최근 몇 달 동안 석유 시장의 내재 변동성(implied volatility)을 진정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재 변동성은 향후 30일 동안 예상되는 가격 변동을 연간화한 수치로 옵션 가격에서 파생되었다.

옵션 가격 결정 툴을 제공하는 퀵스트라이크(QuikStrike)에 따르면, WTI 선물의 내재 변동성은 가격이 마이너스 영역으로 들어선 다음날인 4월 21일에 345%의 최고점에서 30% 미만으로 진정됐다. 

S&P의 투리토 분석가는 "변동성을 낮춘 것이 이후 유가 안정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유가가 바닥에 쳤기 때문에 변동성이 더 이상 높아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변동성 매도는 WTI의 기초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그 이유는 은행 같은 단기 변동성 거래와는 다른 쪽을 택하는 거래자들은 WTI 옵션을 통해 변동성과 반대의 베팅을 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hedge) 은행들은 유가가 콜 행사 가격을 쪽으로 상승하면 WTI 선물을 팔고, 풋 행사 가격 쪽으로 하락하면 선물을 산다.

마사르 캐피털 매니지먼트(Massar Capital Management)의 마완 유네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런 헤지 행위가 가격을 다시 두 행사 가격 범위 내로 밀어 넣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유네스 CIO는 역사적으로 금융시장의 장기 안정은 변동성이 폭발하면서 끝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마치 두 개의 지각판이 에너지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것이 무너지는 날이 안정이 끝나는 날이 되는 것이지요.”

노던 트레이스 캐피털(Northern Trace Capital)의 트레버 우즈 CIO는 "원유의 다음 큰 움직임의 방향을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11월 선거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 바이든이 승리할 경우 이란산 원유 제재가 해제되는 등 여러 요인들이 유가를 끌어내릴 수 있다.

"코로나 직후 급락한 가격이 서서히 회복하면서 올 여름은 눈에 띄게 안정된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 증시와 달리 유가는 4월 말 이후 회복한 뒤 7월 초 들어서부터는 상승 동력을 잃었다. WTI 선물 가격은 27일 (현지시간) 0.8%(0.35달러) 떨어진 43.04달러에 장을 마감하며 안정세를 유지했다.

2005년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보다 강한 허리케인이 걸프만 해안 지역을 강타하면서 6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정전 상태에 갇혔다.

원자재 헤지펀드 GZC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GZC Investment Management)의 빈센트 엘바르 공동창업자는 "투자자들은 석유 생산자들이 선물을 매도함으로써 가격을 단속해 WTI가격을 배럴당 45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WTI가 45달러를 넘으면 상당한 헤지가 발생할 것입니다 시장은 결코 그런 상황을 원치 않지요.”

지난 두 달 동안의 가격 안정은 올해 초 자택 격리령으로 석유 수요가 크게 줄면서 에너지 시장이 붕괴되었을 때 가격이 매우 불안정했던 것과 대비된다. WTI 선물은 2월부터 7월 초까지 19주 연속 3%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4월 말 한 주 동안에 3분의 1 가까이 폭락하면서 처음으로 마이너스 영역까지 간 적은 있지만.

27일 새벽에 텍사스-루이지아나 경계 부근의 해안가로 돌진한 허리케인 로라는 다행히 아직까지 큰 피해는 가져오지 않았지만 WTI 가격은 이번 주에 1.7% 상승했다.

그러나 일부 트레이더들은 곧 어떤 식으로든 요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의 유가 정체는 아마도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깨질 것입니다. 시장이 낮은 변동성에 익숙해지면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갑작스럽게 요동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