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두고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인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회유책을 꺼내들었지만 아시아나항공이 계열사 불법지원 행위로 공정위 철퇴를 맞으면서 상황이 묘해졌다.

코로나19와 아시아나항공의 열악한 재무환경으로 추가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 회장은 까딱하면 과징금과 소송전까지 떠안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공정위 “금호아시아나 부당 내부거래… 과징금·검찰고발 결정”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요 계열사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총 320억원을 부과하고 총수인 박삼구 전 회장과 경영진,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금호산업 등 9개 계열사가 2016년 8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중 금호고속(구 금호홀딩스)에 45회에 걸쳐 총 1306억원을 낮은 금리로 무담보 신용 대여해 이자 차익 7억2000만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제공했다는 혐의다.

또한 아시아나항공이 게이트그룹 소속 게이트고메코리아(GGK)와의 기내식 독점 거래를 하는 대가로 금호고속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게이트그룹이 인수하는 일괄거래를 통해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이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이 부과 받은 과징금만 대략 82억원에 달한다. 자회사 아시아나IDT(3700만원), 아시아나세이버(800만원), 아시아나에어포트(2600만원), 아시아나개발(1700만원), 에어서울(600만원)와 종속회사 금호리조트 (1000만원), 에어부산 (900만원) 까지 포함하할 경우 83억원 규모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아시아나항공은 즉각 입장문을 통해 공정위 판결에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은 “GGK와의 기내식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은, LSGK와의 15년 계약기간 중 발생한 신뢰 훼손 및 향후 기내식 품질 개선, 비용 절감 등을 고려한 정상적인 경영판단의 결과”라며 “향후 공정위로부터 정식 의결서를 송달 받게 되면 내용을 상세히 검토 후 대응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공정위의 판정과 관련 법적 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시 아시아나항공의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전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만나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대해 논의한지 하루만이다. 

이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정몽규 HDC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인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회동 직후 산업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금번 만남은 지난 20일 산은측에서 양사 회장의 만남을 제안한 것에 따른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의 원만한 종결을 위해 양측은 인수조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했으며 HDC현산의 답변을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차후 일정은 HDC현산의 답변 내용에 따라 금호산업 등 매각주체와 협의해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후 업계에서는 다양한 추측이 흘러나왔다. 일각에서는 채권단이 HDC현산에 공동 투자를 제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채권단과 HDC현산이 각각 최대 1조5000억원씩 투입해 총 3조원을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에 투입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경우 HDC현산은 당초 제시했던 2조5000억원보다 1조원 저렴하게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게 된다. 시장에서는 영구채 추가 인수 등을 통한 자본 확충이나 유동성 추가 공급 등이 거론되고 있다. 

▲ 금호아시아나 9개 계열사들의 금호고속 자금 대여 내역. 출처=공정거래위원회

인수 대상 과징금만 83억원… 안사도 사도 부담

산은이 구체적 논의가 없었다는 해명을 내놨지만 업계에서는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가를 깎아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종결을 위해 승부수를 던졌을 것이란 관측이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해 항공업황이 최악을 달리고 있는 만큼, HDC현산의 입장을 최대한 맞춰주려고 하지 않았겠냐는 해석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은 올 2분기 항공화물 호황으로 깜짝 실적을 냈지만 재무 건전성 저하로 인수 후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새국면에 접어들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극적 매각이 성사될 것이라 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공정위로부터 철퇴를 맞으면서 상황은 또 다시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관련, 분리매각이 아닌 통매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에어서울, 에어부산, 아시아나IDT, 아시아나개발, 아시아나세이버, 아시아나에어포트 등 6개 회사를 몽땅 HDC현산에 매각했다.

공정위는 이들 7개사에 대해 모두 계열사 불법지원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들에게 부과된 과징금은 83억원 수준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소송 등 적극 대응에 나선다며 반박하고 있지만, 만약 패소할 경우 HDC현산은 과징금을 떠안아야 한다. 아울러 소송의 승패와 관계없이 소송을 준비하는 시간과 비용 등을 지불해야 한다.

즉, 산은이 매각가를 깎아준다 하더라도 부담은 늘어난다는 말이다. 매각가 자체는 낮아지겠지만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막대한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정몽규 HDC 회장 입장에서는 큰 메리트가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마냥 인수를 포기하기도 난감하다.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등 정부와의 관계가 우려된다는 점에서다. 과징금에 따라 부과되는 벌점도 달갑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선택을 위해 주어진 시간도 길지 않다. 금융권에서는 빠르면 이번주나 다음주 초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를 밝혀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이동걸 산은 회장도 “아시아나항공·쌍용차 등 문제는 시간을 오래 끌수록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며 이달 내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바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이 대면협상시 즉답하지 않았지만 산은의 추가지원 관련 회계자문 및 유동성 등 시뮬레이션으로 추가 검토에 돌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 회장이 협상에서 유리한 상황인 것은 맞지만,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관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고 한 만큼 섣불리 매각 포기를 선언하는것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