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강양구·권경애·김경율·서민·진중권 지음, 천년의 상상 펴냄.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대목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저자들은 이를 반어법적으로 책 제목에 붙였다. 부제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이다.

공저자는 진보지식인 5인이다. 이들은 2019년 8월 불거진 ‘조국 사태’를 중심으로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의 허구성을 비판한다. 나아가 진보진영의 변질과 일탈을 고발하면서 집권 586정치엘리트가 이미 보수 기득권화됐다고 지적한다. 내용을 요약한다.

▲미디어 몰락·팬덤 정치=조국 사태는 사회의 중요한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청와대, 여당, 행정부는 물론 유사 매체와 어용 관변 세력까지 총동원하여 벌어진 상황에서 확인한 것은 ‘우리가 선출된 권력이니 우리 뜻대로 하는 것이 촛불정신’이라는 논리다. 집권세력은 ‘사회의 진보’란 진보를 자처하는 자기들이 모든 권력을 잡는 것이라는 강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로 인해 정의와 상식의 기준 자체가 바뀌는 언어도단과 ‘비상식의 상식화’를 체험하고 있다.

아이돌도 아닌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가 나왔다는 건 팬덤 문화와 정치가 서로 중첩되어 버렸다는 걸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팬덤이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순간, 정권에 대한 건설적 비판마저 봉쇄하는 친위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지금은 자발적으로 댓글이나 검색어를 조작하면서도 여론 조작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깨시민의 힘’을 보여주는 시민 참여라고 생각한다.

언론은 우리 편은 무조건 지킨다는 편향성을 띄고 있다. “이 권력이 지켜지지 않으면, 내가 다시 지난 9년처럼 될 수 있겠구나”하는 두려움에 기반을 둔 일종의 생존 게임이다.

▲무너진 정의와 공정의 회복=진보세력이 거의 10년 동안 집권했다. 문재인 정부도 집권 3년을 넘어간다. 진보세력은 새로운 기득권층으로 사회에 뿌리내렸다. 사실상 586정치엘리트가 새로운 보수 세력이 됐다.

과거 386은 노동자·농민을 대변한다는 자의식이 있었다. 그것 자체가 운동과 결합되어 있었다. 지금 586정치엘리트들은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조국의 반칙이 그들에게는 반칙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게들 살아왔기 때문이다. 조국을 옹호할 때 그들은 실은 자기를 옹호하고 있었던 셈이다.

586정치엘리트가 득세하는 현실 정치 속에서, 정의가 무너지고 공정이 사라지고 평등이 망가지고 있는 모습들과 대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 정치인과 지지자들에게 노무현의 꿈을 계승하겠다는 의식은 사라지고, ‘우리가 약해서 당했다’는 복수심만 남았던 것 같다. 이들은 원한 감정과 피해 의식 속에서 기득권 유지, 정권 유지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진보 정치의 새로운 리더들은 지금 한국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불평등이라는 의제로 재해석해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것을 정책으로 연결해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실천이 다수 시민의 삶과 공명할 때 비로소 진보 정치가 한국 정치판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