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최근 전기 자동차 시장에서 완성차 업계의 자체 배터리 개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차 한 대 팔지 않고 나스닥 상장에 성공해 화제가 된 미국의 수소 트럭 스타트업 니콜라도 그 대열에 합류해 눈길을 끈다. 

완성차 업계가 속속 배터리를 포함한 수직계열화에 나서는 가운데 '고객'의 변심에 기존 배터리 업체들은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완성차 업체들의 수직계열화는 배터리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수소 트럭 업체도 전기 트럭은 배터리까지 함께 생산"
▲ 트레버 밀턴 니콜라 최고 경영자(CEO)의 트위터 캡처.

니콜라의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CEO)인 트레버 밀턴은 지난 21일 트위터를 통해 중형 순수 전기 트럭 '니콜라 트레'에 탑재될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했다.

밀턴 CEO는 "니콜라 트레용 배터리를 테스트·검증 중이다"며 "출력 전압이 800Vdc인 배터리로, 720킬로와트시(kWh)급 트럭에 적용된다"고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해당 배터리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울름에 있는 공장에서 내년 말부터 양산될 예정이다.

울름 공장은 니콜라가 이탈리아 상용차 업체 이베코와 설립한 합작 법인으로, 2021년 1분기 중 니콜라 트레 생산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울름에서 지어지고 있는 니콜라와 이베코의 합작 공장. 출처=니콜라

앞서 니콜라는 지난해 11월에도 직접 개발한 배터리 셀을 발표해 주목 받은 바 있다.

당시 니콜라는 신형 배터리 셀을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쓰는 리튬 이온 배터리와 비교하면서, 에너지 밀도는 2배 높은데 중량과 생산 비용은 각각 40%와 50%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항속 거리는 기존 300마일(약 483km)에서 최대 600마일(약 966km)까지 2배로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밀턴 CEO는 "수십만 마일을 주행한 것과 맞먹을 정도로 내구성 실험을 진행했고, 이 배터리 셀은 배터리 업계 사상 최대의 진화일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전기차용 배터리로서는 세계 최초로 자립 전극을 갖췄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니콜라는 배터리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관련 분야 학위를 받은 전문 인력 20여명을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 니콜라 트위터 캡처.
테슬라, 무대는 준비됐다…알맹이는?

니콜라의 경쟁사 테슬라는 이미 '로드러너'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적인 리튬 이온 배터리 설계 및 대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테슬라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소재 공장에서 1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자체적인 배터리 생산라인을 비밀리에 시범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앞서 배터리 기술 확보를 위해 지난해 말 캐나다 배터리 생산 설비 업체 하이바시스템스와 미국 배터리사 맥스웰을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테슬라는 다음 달 22일 개최하는 '배터리 데이'에서 자체 개발 중인 배터리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중국 CATL과 공동 개발하고 있는 '100만마일(160만km) 배터리' 외에도 이른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들고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모양새다. 

혹은 코발트가 아예 들어가지 않는 '코발트 프리' 배터리를 내놓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코발트는 배터리의 핵심 원료 가운데 하나로,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다만 지역 편재성과 공급 불안정 등으로 인해 값비싼 희토류라, 원가 절감을 원하는 테슬라는 코발트 비중을 낮추겠다고 누누히 강조해 왔다. 테슬라의 '2019년 임팩트 보고서'에서도 "최종적으로 코발트의 완전한 제거가 목표"라고 언급된 바 있다.

테슬라표 차세대 배터리를 두고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성능·수명·비용 등 면에서 획기적으로 개선했을 수는 있어도 정작 상용화는 먼 얘기인 배터리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테슬라가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는 맞지만, 아직 배터리 개발 및 생산에 대한 경험은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길게는 수십 년 간 배터리를 연구해 온 전문 업체들과의 역량 차이는 쉽게 좁히기 힘들며, CATL 등 협력사들과 공동 개발을 추진하더라도 결국 상업화 및 대량 생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한편, 테슬라 외에도 독일 BMW와 폭스바겐 등 여러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수직 계열화를 추진하고 있다. 

BMW는 자체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 지난 4년 동안 2억유로(약 2800억원)를 투자해왔으며, 작년 11월 독일 뮌헨에 '배터리 셀 경쟁력 센터'라는 연구·개발(R&D) 시설을 개소했다.

BMW는 최근 독일 연방 및 주 정부로부터 6000만유로를 지원 받아 뮌헨 인근에 1만4000㎡ 면적의 배터리 셀 공장을 짓고 있기도 한데, 배터리 셀 경쟁력 센터에서 개발한 배터리 셀을 이 공장에 바로 적용해 배터리 내재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폭스바겐은 2019년 9월 스웨덴 배터리 팩 제조 업체 노스볼트와 리튬 이온 배터리의 대량 생산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으며, 올해 2월에는 중국 3위 배터리 제조 업체 궈쉬안의 지분 26.5%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일본 도요타 역시 후지산 인근 연구소에 1조5000억엔(약 16조8000억원)을 투입해 자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고객님 왜 이러세요"

니콜라와 테슬라처럼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생산까지 일원화 하는 배경에는 폭발적 수요 급증이 예상되는 미래에 대비한 안정적 공급망 확보 뿐 아니라, 배터리사들에게서 업계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계산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터리는 전기차에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핵심이지만, 원가 측면에서도 전기차의 40~50%를 차지한다. 전기차 시장의 헤게모니가 배터리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배터리 업계는 조금씩 긴장하는 분위기다. 전기차 수요 급증에 따라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내 경쟁도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고객사들과도 각축전을 벌이게 됐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 전략이 당장 배터리 업계에 큰 변동을 일으키지는 않겠으나, 5년에서 10년 후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편 배터리 산업은 훗날 상위 5개 미만 업체들이 시장을 독과점 하는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도 제시되면서, 시장 파이를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