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 직장인 최 모(39)씨는 최근 조카의 돌 반지를 사러 금은방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순금 1돈(3.75g) 반지가 세공비를 포함해 30만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이내 돌 선물을 현금으로 할 지, 아니면 돌 반지를 살 지 고민에 빠졌다.
# 전업주부 차 모(38)씨는 최근 금값이 올랐다는 소식에 가지고 있던 자녀들의 돌 반지를 팔았다. 2014년도에 받은 돌 반지 10개(10돈)가 당시엔 140만~150만원 수준이었지만, 현재 시세로는 280만원 가량 나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안전자산 금(金)이 강한 변동성에 출렁이고 있다. 그간 급격한 경기 하방 리스크에 직면했을 때 안전자산인 금을 구매하는 수요가 일시적으로 발생했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요동치는 모습이다. 금은 시세차익을 위한 금융투자 상품으로 주목받는 한편, 과도한 변동성에 헤지 수단으로서의 특징을 잃을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금값 상승 랠리, 사상 최고점까지 돌파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 기준 국제 금값은 1트로이온스당 전일 대비 16.10달러 내린 1912.50달러로 마감했다. 이는 1개월래 최저치다. 또 지난 8월 11일에는 91.80달러(4.53%) 폭락해 7년 만에 최대 폭으로 급락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금값의 하락 원인으로 저점 매수한 시세차익 실현 매물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머니무브, 미국 국채금리 상승 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럼에도 금값은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인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금값은 대외적인 리스크 요인과 유동성,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1트로이온스당 1300달러에서 등락을 거듭한 금값은 지난해 미중무역전쟁 격화로 급등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까지 다가오자 상승 모멘텀이 더해졌다. 금값 상승은 대외적인 리스크 요인으로 실물경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안전자산인 금에 수요가 몰린 탓으로 분석된다.

올해 금값 랠리의 주목할 포인트는 3월 급락이다. 금값은 지난 3월 9일 1트로이온스당 1700달러까지 바라보다가 5일 연속 하락하며 1400달러선까지 후퇴했다. 당시 코로나19가 북미, 유럽에 강타하자 안전자산인 달러화 확보에 몰린 탓이다. 시장의 대다수 전문가들은 금값과 실질금리가 역(逆)상관관계를 가진다고 보고 있다. ICE(intercontinental exchange)에 따르면 지난 3월 19일 주요 6개국 통화가치를 비교하는 달러인덱스는 103.60으로 5년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 달러인덱스와 금값 추이. 출처=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
▲ 2019년 금값과 기준금리 변동 추이. 출처=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

하지만 미국 경제 지표가 코로나19 1차 여파에 회복이 더딘 가운데, 미중 무역 분쟁까지 겹쳤다. 당시 미국뿐만 아닌 글로벌에서 실물위기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기존 1.00~1.25%에서 0.00~0.25%로 100bp 하향 조정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를 열었다. 사실상 무제한 돈을 찍어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달러화 가치는 급락했다. 시중 유동성이 급증하자 달러인덱스는 불과 몇 일만에 100선 아래로 다시 내려왔다.

이 같은 급격한 외부 요인 변경으로 불과 몇 일 만에 금값은 극적인 반등을 이뤄내고 다시 상승 랠리를 이어갔다. 멈추지 않는 상승세에 시장에서 금값이 연내 “1트로이온스당 3000달러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지난 1~2분기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에서 봉쇄(셧다운)가 이어졌으며, 경기지표 악화가 현실화됐다. 미국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100만 건을 상회할 정도로 폭증했으며, 고용악화를 방증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각국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유동성을 더 늘렸다. 금값은 제동이 풀린 채 상승 곡선을 그렸다.

유안타증권 조병현 연구원은 “올해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 자산 중 하나가 바로 금이다”라며 “코로나 발생 직후 신용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며 달러에 대한 편집증적 집중현상이 나타났던 구간에서는 여타 자산과 마찬가지로 부진한 흐름을 보였지만, 저점을 형성한 지 불과 3~4일 만에 기존 레벨을 회복하고 8월 초 온스당 2000달러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연구원은 “조금 더 길게 보면 수년 간 박스권에 갇혀 있던 금값의 흐름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2019년) 중반”이라며 “지난해 6월 초부터 금값은 기존 흐름에서 벗어난 상승세를 시작했는데,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 때문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치료제·금리인상, 금값 상승 제동

금값은 금리와 유동성에 민감히 반응한다. 당초 시세차익 실현을 위한 매도량 증가로 ‘건강한 조정’ 전망도 흘렀지만, 유동성에 영향을 주는 금리변동 가능성이 더 주효했다. 지난 6월 통화정책회의(FOMC)를 전후로 연준의 자산은 레벨이 낮아진 상황이며, 7월 FOMC 의사록에서 유동성을 늘리는 통화정책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 바 있다. 금리가 낮아져야 상승 모멘텀을 가지는 금값은 연준의 정책 스텐스에 곧바로 하락장이 이어졌다.

7월 FOMC 의사록이 공개된 지난 8월 19일 이후 금값은 4거래일 동안 하락했다. 19일 40.70달러(2.03%), 20일 25.10달러(1.28%), 24일 7.40달러(0.38%), 25일 16.10달러(0.83%) 등 하락장을 이어오며 1트로이온스당 1800달러 진입을 앞두고 있다.

▲ 금. 출처=셔터스톡

그러나 불과 수일 만에 반등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잭슨홀 회의에서 제롬파월 연준 의장이 어떤 발언을 할 지 관심이 모인 가운데, 전일 회의를 주관하는 에스터 조지 캔자스시티 연방은행 총재가 유동성 확대에 옹호적인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되는 조지 총재는 더블딥과 높은 실업률에 당분간 2%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한다는 뜻을 내비췄다. 금값은 또다시 즉각 반응했다. 하락장을 이어온 금값은 26일(현지시간) 29.20달러(1.52%) 상승하며 다시 2000달러를 향하고 있다.

유안타증권 조병현 연구원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2000달러선을 넘었던 금값이 최근 변동성 확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라며 “금값은 실질금리와 거의 대칭적으로 움직이는 자산으로, 금값의 변동성 확대는 실질금리 여건에 대한 변화 조짐이 있다는 시그널로도 볼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이어 “현재와 같은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낮은 실질금리라는 조건이 금융시장, 특히 위험자산 퍼포먼스의 양호한 흐름을 담보해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조 연구원은 또 “금리 측면에서 보면 향후 미국 재정 악화와 자금 조달 수요 증가로 인해 상승 압력이 예상되는 반면, 연준은 정책에 있어 기존에 비해 적극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며 “금값의 변동성 확대가 실질금리의 상승 가능성을 반영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증시에 대한 시각도 기존에 비해 신중함을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또 코로나19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도 금값 하락에 일정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8월 23일(현지시간) 코로나19 혈장치료제를 긴급승인 했다.

성명을 통해 FDA는 미국에서 7만 명이 혈장치료제 처방을 받았으며, 2만 명을 상대로 분석한 결과 치료제의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11월 전에 백신의 긴급승인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효능에 대한 입증 절차가 남아있지만,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때문에 불거진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일정 상쇄돼 금값의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