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코로나19 회복을 위한 시중 유동성이 급증하면서 자산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다. 통화의 증가로 인해 통화가치 절하가 발생하고, 실물자산 가격이 오르는 연쇄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최고경영자(CEO) 레이 달리오가 “현금은 쓰레기”라며 “물가연동채, 금, 원자재 등에 분산투자 하라”고 권할 정도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불러온 시중 유동성 급증은 특정한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유동성 팬데믹’을 부르고 있다.

실물위기 막아라… 너도 나도 막대한 ‘유동성 공급’

올해 글로벌 유동성이 급증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인은 코로나19다. 중국에서 발원한 코로나19는 쉽게 종식되지 않았고 북미와 유럽, 중남미, 인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까지 급속도로 퍼지며 장기화되고 있다. 이에 따른 유동성 공급도 멈추지 않고 오히려 확장하고 있다. 올해 각국의 중앙은행은 코로나19로 인한 실물위기로 빠져들지 않도록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신속한 조치를 택했다.

실제 지난 6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까지 내리면서 이 같은 기조를 2022년까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월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준금리 0% 동결을 결정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역시 지급준비율을 세 차례,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두 차례 인하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은행이 지난 3월 17일 50bp 인하하는 ‘빅컷’에 이어 5월 28일 25bp 추가 인하해 기준금리 0.50% 시대를 맞았다.

▲ 한국과 미국 기준금리 추이. 출처=한국은행, Fed

미 연준은 물가상승률이 기준금리를 넘어서는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로 시중에 무제한 자금 공급을 선언했다. 또 올해 상반기 사상 최초로 회사채까지 매입하며 유동성 확대에 불을 지폈다. 이런 상황에서도 추가적인 금리 인하 여력까지 남아있는 상태다. 유럽은 3900억유로(약 548조원)의 무상지원과 3500억유로(약 492조원)의 대출로 구성된 회복기금에 합의하며 경기 부양책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도 지난 8월 17일 인민은행을 통해 7000억위안(약 120조원)을 추가 공급하며 경제 회복 때까지 기준금리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광의통화(M2) 증가로 이어졌다. 전 세계 주요국의 통화공급(M2)을 나타내는 블룸버그 글로벌 통화공급지수는 지난 7월 87조달러(약 10경3269조원)를 넘어섰다. 넘치는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동성을 조이면 실물경기 후퇴 우려가 더욱 커져 각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늘어난 유동성은 백신·치료제에 대한 기대감과 경기 회복 시그널에 더해져 실물자산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

IBK투자증권 김예은 연구원은 “유동성 공급은 자산시장에 긍정적인 게 사실이지만, 경기 개선에 긍정적인 것인지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른다”라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실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만큼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펀더멘털과의 괴리는 점차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전망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통화승수가 오히려 꺾인 것을 봤을 때, 현금은 돌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동성 버블은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유동성에 힘입은 실물자산·증시 급등

실제 최근 미국 부동산 시장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미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지난 7월 미국 주택 매매 중간 가격은 30만4100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5% 상승했다. 저금리에 따른 부동자금이 미국 부동산 시장에 몰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초부터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정부가 6·17, 7·10, 8·4 등 잇따라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소비자들의 집값 상승 기대는 꺾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안전자산인 금은 유동성 증가에 따른 약(弱)달러 효과로 급상승을 나타냈다. 지난 8월 24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 기준 금값은 1트로이온스당 1928.60달러로 전일 대비 7.40달러 내렸지만 여전히 높은 시세를 유지 중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지기 전인 지난해 11월 12일 금값은 1트로이온스당 1452.10달러로 1년래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안전자산 선호로 가격이 급등했으며, 제로금리 선언과 함께 급락하는 사태를 맞았지만 이내 다시 회복하고 지난 8월 6일 사상 최고점인 2051.50달러를 찍었다.

▲ 미국 실질금리와 금 가격 추이. 출처=블룸버그

증시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효과보다 유동성 팬데믹 효과가 우세했다. 지난 8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과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물론 코로나19 혈장 치료제 승인 소식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감이 반영됐지만, 실물경기 회복 둔화 시그널이 나오는데도 상승장이 이어지고 있다. 유동성에 따른 영향이 더 컸다. 실제 8월 19일(현지시간) 미국 연준이 7월 통화정책회의(FOMC) 의사록을 공개하자 증시는 하락했다. 이 FOMC 의사록은 풍부한 유동성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이 담겼다.

IBK투자증권 안소은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 상승을 설명한 것이 유동성이었던 것처럼, 향후 증시 방향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변수도 유동성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중앙은행의 총자산이나 통화량, 기준금리 등을 통해 유동성 규모나 강도를 파악할 수 있는데, 실질금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 수준을 감안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 연구원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 수준에 머물러 있어, 증시에 우호적인 유동성 여건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해결책 마련과 완전한 경기 회복까지 글로벌 유동성 팬데믹은 지속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24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시장에 자금을 풍부히 공급해 실물경제 쇼크를 줄이고, 기업들의 자금 흐름을 원활히 하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었다”라며 “한국은행은 국내경제의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용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7월 1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밝힌 유동성 완화 정책을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지지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