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지(Suzy)는 회사의 베타 테스트에서 레고의 팬인 나단 스튜어트가 만든 세상인 ‘스팀펑크 타임머신’(Steampunk Time Machine)의 주인공 캐릭터다.  출처= Nathan Stewart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블록 장난감 회사 레고(Lego)가 TV 쇼, 디지털 동영상, 장난감 세트를 위한 아이디어를 찾으면서 사람들에게 그런 목적으로 마련한 새로운 플랫폼에 그들의 상상력을 공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레고가 레고 월드 빌더(Lego World Builder)라는 플랫폼에 사용자가 컨셉 아트, 동영상, 스토리를 업로드함으로써 스토리 월드, 캐릭터, 기타 아이디어들을 제안하면, 그 중 레고가 좋아하는 아이디어를 구매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기 있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장남감을 만들고 자체 캐릭터가 등장하는 TV 시리즈와 영화를 만드는 210억 달러 규모의 완구 산업에서 엔터테인먼트는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레고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만든 ‘스타워즈’ 장난감 세트는 2000년대 초반 거의 파산 상태에 빠진 레고가 회복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고, 2014년 선보인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 ‘레고 무비’(The Lego Movie)의 성공은 신제품과 매출 증대로 이어지며 레고의 재도약을 견인했다.

그러나 이제 장난감 회사들이 비디오 게임, 유튜브, 소셜 미디어에 빼앗긴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장남감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콘텐츠가 경쟁의 중심이 되었다.

장난감 산업 컨설턴트이자 애널리스트인 크리스 번은 "레고 월드 빌더는 아이들이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레고의 열렬 팬들이 레고 월드 빌더에 꾸준히 몰려들며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며 회사는 다양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찾아내며 고객들에게 접근할 것입니다.”

레고의 엔터테인먼트 개발 책임자인 키스 말론은 회사가 최소한 향후 3년 동안, 플랫폼 사용자들이 제공한 아이디어를 채택할 경우 그들에게 지불하기 위해 연간 5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말했다. 레고가 고객의 아이디어를 개발을 ‘고려’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채택 아이디어’에는 1만 달러, 그 아이디어를 완전히 구매하기로 결정하는 경우 5만 달러를 지불한다. 플랫폼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려면 18세 이상의 성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레고의 영화개발사업부는 이 플랫폼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이미 비디오로 출시된 '닌자고'(Ninjago) 시리즈의 닌자 등 레고 캐릭터에 대한 사연이 담긴 글을 직접 올리는 사이트인 왓패드(Wattpad) 같은 플랫폼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말론은 왓패드에서 닌자고를 검색하면 "사람들이 쓴 이야기가 수백 페이지나 올라와 있다"고 설명했다.

왓패드는 사용자들이 올린 글을 책이나 각본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자들을 출판사 또는 미디어 회사와 연결해 주는데 불과하지만, 레고의 새 플랫폼 월드 빌더는 아이디어를 올린 팬들에게 직접 연락한다.

레고의 크라우드소싱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기존에도 레고 아이디어 프로그램이 있어서 사람들이 새로운 장난감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출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가 승인되면 회사는 이 장난감을 제작해 출시하고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전체 순매출액의 1%의 로열티를 지급한다.

그러나 레고 월드 빌더는 개별 장난감 세트보다는 프랜차이즈를 공급하고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말론은 "만약 우리가 고객이 제공한 '인어공주에 관한 세상’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그 개념을 바탕으로 콘텐츠, 장난감, 공원 등의 명소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고는 LA의 기술기업 통갈(Tongal)과 협력해, 창의적 인재를 콘텐츠 기업, 광고주에게 연결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새로운 노력도 시도하고 있다.

제임스 드줄리오 통갈 CEO는 "레고 월드 빌더를 통한 크라우드소싱으로 회사는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개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레고 월드 빌더에서 채택된 좋은 아이디어는 유튜브의 동영상 시리즈로 개발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개발 과정에서 회사는 고객들과 더 가까워지게 되지요.”

통갈은 2012년부터 레고와 손잡고 183개 프로젝트에서 창의적 인재와 회사를 연결해 주었다. 그들 중에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서 동영상으로 소개된 것도 많다.

레고 월드 빌더는 레고 팬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동시에 요청하지 않은 아이디어로 인한 불필요한 지적재산권 문제에 휘말리는 것도 피할 수 있다.

전 펩시코의 부사장 겸 지식재산권 담당 변호사를 지낸 베테랑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인 윌리엄 핑클스타인 "대부분의 회사들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요청하지 않은 아이디어는 수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많은 독립 창작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들을 콘텐츠 회사와 브랜드에 전달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레고는 베타 테스트(beta test, 제품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오류가 있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미리 정해진 사용자 계층들이 써 보도록 하는 테스트)를 통해 ‘닌자고’와 관련된 3분짜리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포함해 두 건의 프로젝트를 구입했다. 멜론은 "이 동영상을 만든 사람은 캐나다의 젊은 학생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