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이 최근 차남인 조현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장에게 지분을 몰아주자,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아버지 조양래 회장에 대해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침묵을 지키던 장남인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대표이사 부회장이 사실상 장녀의 의견에 무게를 실어 눈길을 끈다.

한국타이어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분위기다.

입장문 발표

조현식 부회장은 25일 “현재 회장님의 건강 상태에 대해 주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그에 따라 그룹의 장래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는 상황”이라면서 “회장님의 최근 결정들이 회장님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제공된 사실과 다른 정보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조현식 부회장은 이어 “최근 회장님의 건강상태에 대한 논란은 회장님 본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테크놀로지 그룹, 주주 및 임직원 등의 이익을 위해서도 법적인 절차 내에서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면서 “현재 진행중인 성년후견심판절차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예정”이라 밝혔다.

나아가 “이러한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또다른 분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새로운 의사결정은 유보되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아버지+차남, 장남+장녀

조양래 회장은 지난 6월 26일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전체 지분의 23.59%, 2194만주를 모두 넘겼다. 조 사장이 최대주주에 오른 직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일각에서는 형인 조 부회장이 반격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으나, 조양래 회장이 본인의 후계를 차남인 조현범 사장로 낙점한 것은 어느정도 굳어가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런 가운데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전면에 나섰다. 후계구도에서 살짝 밀려난, 장남인 조 부회장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장녀인 조희경 이사장이 아버지 조양래 회장에 대해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성년후견 신청은 나이가 많거나 질병으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성인에 대해 후견인을 정하는 제도며, 조희경 이사장이 이를 청구했다는 것은 곧 차남 조현범 사장에 막대한 지분을 몰아준 아버지 조양래 회장의 뜻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으로 읽힌다.

재계에서는 이러한 충돌을 예정된 수순이라 본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서 인적분할 된 후 사내 영향력을 키우던 조현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장은 지난해 11월 배임수재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전격 구속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은 조 사장 구속 직후 그룹의 경영과 관련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장남인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주사를 총괄하고 조현범 사장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맡는 투톱경영 체제였고, 지분율은 엇비슷한 상태였다. 이런 가운데 조 이사장은 조현범 사장이 법정 구속된 상태에서 나름의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 셈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경영환경이 불투명해지자 조 이사장의 로드맵에는 제동이 걸렸고, 이런 상황에서 조현범 사장이 3월 출소한 후 아버지 조양래 회장이 6월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몰아주자 경영권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녀인 조희경 이사장이 조양래 회장을 대상으로 성년후견 신청을 내고, 아버지 조양래 회장은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절절한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절절한 부정애가 들끓는 입장문에도 명확한 방향성은 보인다. 후계자로 조현범 사장을 낙점한 결정은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양래 회장은 “딸에게 경영권을 주겠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해 본적이 없다”면서 "(딸은) 회사의 경영에 관여해 본적이 없다. 만약 재단에 뜻이 있다면 이미 증여 받은 본인 돈으로 하면 될 것"이라 말했다. 이어 조 회장은 조 사장의 경영능력을 두고 "15년을 지켜봤다"며 합격점을 줬다.

▲ 출처=한국타이어

“해볼만하다는 판단 섰나”

아버지 조양래 회장과 장녀인 조희경 이사장의 반발로 전개되던 논란이, 침묵을 지키던 장남 조현식 부회장이 입장문을 발표하며 움직이자 출렁이고 있다.

현 상황에서 조 부회장측은 ‘한 번 해볼만 하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주총을 통한 극단적인 신경전에는 나서지 않더라도 지금이 바로 판을 뒤집을 적기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분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조양래 회장이 슬하에 2남 2녀를 둔 가운데, 그룹의 지분율은 차남인 조 사장이 42.90%를 가지고 있어 절대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장녀인 조희경 이사장이 0.83%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조현식 부회장은 19.32%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둘째 누나인 조희원씨(지분 10.82%) 지분을 모두 더하면 30.14%다.

조 부회장은 둘째 누나인 조희원 씨를 미국 법인에 위장 취업시켜 희귀병을 앓고있는 조 씨의 자녀를 도운 ‘혐의’로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면 조희원 씨는 조 부회장의 편에 설 것이 확실시 된다.

여기에 6.24%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변수다. 현재 조 사장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조사를 받는 가운데, 만약 그의 혐의가 입증될 경우 국민연금은 조 부회장의 편에 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42.09%의 지분을 가진 조 사장을 직접적으로 견제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나오지만, 그가 구속된 상황에서 제3의 주주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없는데다 그룹 내부의 기류가 일변할 가능성은 농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