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아트센터 전시전경, 2005년

정현숙은 원과 사각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추상을 30년 이상 탐구해온 흔치않은 작가이다. 그녀는 1980년대 미국 유학 시절, 당시 주류 회화의 물결을 타던 포스트모더니즘 구상회화 양식을 잠깐 스쳐 간 후 구체적 형상이 사라지는 서정 추상으로 이행했다.

그녀의 작업에서 원은 1990년경 주된 조형요소로 부상하는데 붓으로 그리거나 물감을 흘린 느낌을 살린 비정형적 형태를 떴다. 이 시기의 작업에서 어두운 색조에 두리뭉실하게 번진 커다란 원의 형상이 화면 중심에 위치하고 그 주변으로 사각형 모양이 나타난다. 원과 사각은 향후 그녀 작업의 주된 요소로 자리 잡는다.

▲ Before and After, 지름150㎝ Acrylic, Mother of Pearl on Canvas, 2005

2000년 들어 원과 사각이라는 구성요소를 가지고 정현숙은 다양한 실험을 했으며 작업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 전반적으로 원과 사각의 형상은 뚜렷해지고 복수로 나타난다. 붓 자국이 살아있는 회화적 수더분함보다는 깔끔하게 분할된 한 면 한 면을 달리 채색하여 배치하는 등 전체적으로 구성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디자인 개념이 지배한다.

물감을 흘리거나 번질 때 오는 우연적 요소를 배제하고 선과 형상이 명료한 구성적 요소를 추구하되, 깊이 있는 느낌을 위해 곳곳에 부드러움과 번짐 효과를 숨겨놓았다. 조각판을 하나하나 만들어 캔버스 천으로 싸고 밑 색을 칠한 뒤, 일일이 조합하여 구축하는 아상블라주 작업을 시도했다.

그 위에 원이나 반원 모양을 그려 넣었는데 스티커를 붙여 깔끔하게 색칠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색채는 이전의 칙칙함을 벗고 화사해지는데 이로써 정현숙의 작업은 더 화려하고 장식적으로 변한다. 새로운 재료의 사용에 관심을 보인 것도 이즈음이다. 그녀는 금분 같은 번쩍이는 재료를 쓰기 시작하는데 이는 이후 신비하고 오묘한 빛을 발하는 한국의 자개나 화려하게 빛나는 크리스털과 스와로브스키의 사용을 예견케 한다.

이 시기 정현숙(크리스털&자개 미니멀 컬러 아티스트 정현숙,서양화가 정현숙,Dansaek abstract art of crystal and Mother of Pearl,JEONG HYUN SOOK,미니멀컬러 아티스트 정현숙,정현숙 작가,Minimal Color Artist JEONG HYUN SOOK)은 마치 이전의 작업이 본인의 본래 모습이 아니었다는 듯이 열정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여 작가로서 자신의 자아를 찾고 자신에게 맞는 작업 방식을 찾아 나간다. 그 가운데 눈여겨볼 시도는 부조형 지지체의 사용이다.

△글=이필, 홍익대학교 교수, 미술평단 2019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