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의 중국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 위험수위를 오가는 가운데, 반도체 및 스마트폰과 같은 B2C를 비롯해 5G 통신장비 전반에 거쳐 각각의 노림수가 노골적으로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두고 자국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프레임을 짰으나, 이면에는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하려는 행보가 선명해지고 있다.

전광석화 압박

미 상무부는 17일(현지시간)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의 중국 화웨이 공급을 차단한다는 제재를 발표했다. 최근까지 화웨이가 설계를 주문한 반도체만 차단했다면, 이제는 화웨이로 흘러가는 모든 반도체 공급을 막겠다는 초강수다. 대만의 TSMC가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한 상태에서 벌어진 최악의 위기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1일 발간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화웨이 반도체 수출규제 확대와 전망' 보고서를 통해 “화웨이가 사실상 모든 종류의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현지의 반발도 거세다. 실제로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입장문을 통해 “현재 규제안을 검토중이지만 반도체 거래에 대한 이와 같은 광범위한 규제는 미국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국가 안보를 달성하려는 기존의 부분적인 제한 입장에서 갑자기 선회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한 반도체 회사의 임원은 "중국이나 심지어 아시아에서도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것은 앞으로 더 어려울 수 있다"고 토로했다. “2019년 세계 반도체 소비량의 60% 이상을 중국 시장이 차지했다. 그런 이유로 미국 공급자들로부터의 중국 제품 제거는 잠재적으로 미국의 국내 사업들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 반도체 기업들도 움직이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최근 미국 상무부 고위관리자 3명이 주요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대정부 로비 업무를 맡는 것으로 나타났다. 패트릭 윌슨 전 상무부 비즈니스 연락 담당 이사가 미디어텍의 대관부서 부사장으로, 존 쿠니 국제무역국 부차관보는 스카이 워터 대관업무를, 리치 애쉬우 전 산업보안국 차관보가 반도체 공급 업체 램 리서치의 글로벌 대관업무 부문 부사장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제재 실현으로 입을 회사와 반도체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로비 활동에 적극 가담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2일 O-RAN(Open Radio Access Network)이 부상하고 있다 보도해 눈길을 끈다. 가상 및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이며, 일본 유통업체 라쿠텐이 오는 9월 관련 인프라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O-RAN은 화웨이의 5G 패권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대안이다. 중국 화웨이가 글로벌 5G 네트워크 시장을 석권한 상태에서 미국과 일본이 5G 가상화 네트워크인 O-RAN을 통해 일정정도 성과를 거둘 경우, 시장 자체의 판도가 출렁일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클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의 압박이 커지는 장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클린 캐리어(Clean Carrier) △클린 스토어(Clean Store) △클린 앱(Clean Apps) △클린 클라우드(Clean Cloud) △클린 케이블(Clean Cable)을 핵심에 걸고 이에 부합되지 않는 타국의 서비스는 미국은 물론 동맹국의 안보를 저해하기 때문에 퇴출되어야 한다는 논리인 클린 네트워크는 원천적으로 중국의 기술을 배제하고 있다.

여기서 미국이 O-RAN을 키우는 것은, 클린 네트워크 정책으로 퇴출시킬 수 없는 중국의 기술력을 걷어내기 위함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미국의 화웨이 압박은 국가안보적 측면의 위기도 존재하지만, 중국의 기술굴기를 압박하려는 쪽에 더 착안한 셈이다.

▲ 출처=틱톡

틱톡도 마찬가지?

최악의 위기에 처한 틱톡도 마찬가지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틱톡 압박 수위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중국 바이트탠스의 틱톡과 텐센트의 위챗을 사실상 퇴출시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이는 90일 이내에 틱톡의 미국 내 사업과 자산을 매각하라는 것이 골자다.

틱톡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현재 MS는 틱톡의 북미 사업 등 일부를 인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9월 15일까지 계약을 위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행정명령으로 상황은 다시 복잡해질 전망이다. 만약 MS가 틱톡 인수에 실패할 경우 미국에서 틱톡은 사실상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로 MS도 틱톡 전체 사업부 인수를 위해 속도전에 나서는 분위기다.

틱톡에 대한 압박은 국가안보적 측면의 고려도 있으나 상당부분은 기술굴기 압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전형적인 B2B 기업인 오라클이 틱톡 인수전에 뛰어든 점에 시선이 집중된다. 실제로 파이낸셜타임스는 17일(현지시간) 오라클도 틱톡 인수전에 참여한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과 영국 BBC방송는 1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오라클의 틱톡 인수 가능성을 두고 “오라클은 좋은 회사며, 틱톡을 감당할 인수자가 될 것”이라 말했다고 보도했다. 오라클 공동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인 지지자다. 이번 인수전 자체에 정치적 포석이 깔려있음을 시사하게 만든다.

틱톡에 대한 공격이 중국의 원죄에 대한 반격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 출처=오라클

중국은 2003년부터 인터넷 공간에 만리방화벽을 세운 바 있다. 인터넷 주권을 세운다는 미명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포함의 구글의 각종 서비스를 모조리 퇴출시켰습다. 덕분에 바이두(Baidu),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와 같은 중국 BAT가 크게 성장했다. 강력한 미국의 서비스들이 자취를 감춘 상황에서 중국 서비스들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까지 받아가며 단숨에 몸집을 불리는 것에 성공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트럼프 시대를 맞아 중국의 만리장화벽과 비슷한 전략을 가동하자, 중국은 마땅한 대응카드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각 ICT 기술력에 대한 두 나라의 접근 자체가 정치적이며, 미국의 최근 중국에 대한 압박은 각자의 기술 존재감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로드맵이라는 점에 힘을 실어준다.

중국 “새로운 길 모색한다”

미국의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은 러시아와의 밀월을 강화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당시에도 두 나라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항해 협력한다는 의지를 다진 바 있다.

지난달 30일 러시아 최대 이동통신사 '모바일텔레시스템즈(MTS)’가 중국 화웨이의 5G 장비를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은 점이 중요하다. 이미 미중 무역전쟁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만남으로 예견된 일이지만, 업계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이 더욱 두터워진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최근 중국이 인도와 국경분쟁을 치르는 가운데 러시아가 인도에 다량의 무기를 판매했다는 점이 알려지며 분위기가 묘해졌다. 여기에 22일(현지시간) SCMP에 따르면 두 나라는 지난달 2일 중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트위터에 게시한 블라디보스토크시 160주년 축하 영상을 두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