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상 일상이 사람이 주인공인 세상을 살았는데,

최근 역대 급 장마를 겪으며 주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상도 겪게 됩니다.

저 남쪽에 홍수로 떠내려간 소가 헤엄을 쳐서 남쪽 바닷가에서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며 언론에서는 소떼가 수영을 아주 잘 한다는 얘기를 자세하게 전합니다.

또 둑이 무너져 몇 개 시군이 물에 잠기는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에서 토양, 즉 흙이 주인공이 됩니다.

계속된 비로 물을 가득 머금은 흙은 응집력이 약해서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거죠.

산사태가 나지 않더라도, 물을 머금은 흙은 비를 더 이상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강으로 빗물을 흘려보내게 되니 둑이 무너지는 원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국내 최대 기간 장마라는 이번 홍수를 겪으며 나무가 심겨진 산을 달리 보게 됩니다.

잘 가꾸어진 숲은 시간당 사백미리 집중 호우도 품을 수 있다고 하지요.

산에, 산에 나무를 심자고 노래했던 옛날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코로나에, 긴 장마로 지치다보니 하늘을 볼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저녁 7시 무렵이면 서쪽 하늘이 붉어집니다.

모처럼 저녁 하늘의 해를 바라보게 되는데 이 또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거겠지요.

그러나 사실은 이들보다 진즉 주변이 주인공이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지금 코로나 사태가 2단계로 격상되어

조심스럽게 전전긍긍하며 넘어가고 있는데,

코로나 발병 원인균 또한 난개발로 터전을 잃은 동물에서 비롯된 환경 재앙의 결과라고

얘기되며 주목받고 있으니 말이지요.

아주 훗날 시간이 되면 집중적으로 읽어 보리라 생각하고 있던 작가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있습니다.

이번 연휴와 휴가 중에 집콕을 하면서 그의 책 하나를 읽었습니다.

거기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가장 나답고 깨끗할 때는 인간이 가장 작게 보일 때이다’

자연 속에서 최소한의 간소한 생활, 자족의 즐거움을 맛보았던 19세기 사람입니다.

그는 훗날 마하트마 간디에게, 또 마틴 루터 킹에게 영감을 준 문인이자 사상가입니다.

사람이 꼭 주인공이어야 하는 일상이 이어지다

결국 기상이변과 코로나가 온 것을 생각하면

이 시대에 해주는 말로 너무 잘 어울리는 말 같고, 자세 같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주변들이 두루 주인공이 되는 시대,

그것을 꿈꾼 분이라 생각되어졌습니다.

우리 일상이 그렇게 계속 펼쳐지길 기대해봅니다.